84. 네 오른쪽 눈이 너를 실족케 한다면, 그것을 빼어라. 그리고 네게서 던져라. 네 신체들 중 하나가 멸하고, 네 온 몸이 지옥으로 던져지지 않는 것이 네게 유익하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84절 말씀입니다.
'네 오른쪽 눈이 너를 실족케 한다면' 지금 간음죄에 대한 말씀의 연속 선상에 있습니다. '여자를 탐냄으로 바라보는 모든 자가, 너희 마음에 간음하였다'하면서 예수님께서는, '이성적인 음욕'에 대해서 정죄하신 내용입니다. 우리가 몸으로 죄를 지어도 지옥에 들어갈 뿐만 아니라, 마음으로 죄를 지어도 지옥에 들어갑니다. 그것을 음란이라고 부릅니다. 음란은 몸으로 짓는 간음죄와 달리 마음으로 짓는 죄를 말합니다. 그래서 음란을 끊지 않으면 우리는 지옥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 방법론이 오늘 내용입니다.
'네 오른쪽 눈'이, 재미있어요. 우리가 누구를 쳐다 볼 때에, 양 눈으로 보는 것이지 어떻게 한 쪽 눈으로 봅니까? 여러분! 지금 신기하지 않습니까? 눈은 항상 복수로 쓰여져야 하는데, '오른쪽 눈'이, 아주 재미있습니다. 여러분! 여자를 볼 때, 동영상을 볼 때, 오른쪽 눈으로만 봅니까? 그렇지 않은데, 여기서 보니까, '오른쪽 눈'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우리 영도 눈이 있는데, '음란 죄'의 시작은 한쪽 눈으로 시작됩니다. 한쪽 눈으로 음란에 빠진 경우가 있습니다. '영적인 세계'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한 쪽 눈만 멀어도 위험한 것입니다. 우리가 '돈'에 눈이 멀기도 하고, '이성'에 눈이 멀기도 하고, '음란'에 눈이 멀어질 수 있습니다. 한 쪽 눈만 멀면 어떻게 됩니까? 지옥 갑니까? 아닙니다. 위험 선상입니다. 우리가 동영상을 바라본다? 여러분! 지옥 갈까요? 지옥 갈 확률이 높습니다.
'오른쪽 눈'이라는 것은, 부인이랑 길을 걸을 때, 다른 여자가 옆에 지나갈 때, 살짝 쳐다봅니다. 그렇죠. 그러면 부인이 화를 냅니다. 그때, 살짝 쳐다보는 것 그것이 '오른쪽 눈'입니다. '오른쪽 눈' '살짝 쳐다 보는 것', 마음은 가 있는데 양쪽 눈으로 바라볼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살짝 쳐다보는 것, '오른쪽 눈'입니다.
하나님께서 본문에서 '오른쪽 눈'이라고 설명하신 것은 왜일까요? 마음은 가 있는데, 겉으로는 못하니까, 여러분! 동영상을 낮에 남들과 봅니까? 밤에 봅니다. '야한 잡지'를 낮에 봅니까? 밤에 봅니다. 지금 시대는 심각한 시대입니다. '네 오른쪽 눈'은 무엇이냐 하면, 무엇을 시청하려고 하면 '양쪽 눈'이 필요한데, '오른쪽 눈'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은밀한 것을 말합니다. 은밀하게 음란에 빠지는 것, 이것이 바로 '오른쪽 눈'인 것입니다.
그 다음 단어가 중요합니다. '너를 실족케 한다면' 자! 우리가 음란물을 보면, 음란물을 봄으로서, 마음에 죄를 짓게 한다면, 실족된다는 것입니다. '실족'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에게서 끊어진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은 생각할 것입니다. '내가 간음죄를 짓지 않았는데', 간음죄를 안 지어도 마음에 '음란'이 들어오면, 100% 실족됩니다. 실족은 하나님에게서 떨어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난 예수를 믿습니다. 내 맘속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착각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물질의 탐심이 있는 한, 여러분 마음속에 음란에 대한 탐심이 있는 한, 하나님은 여러분을 버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하나님은 죄가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 위해서 죄를 버리는 것이 회개'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서 죄를 버리는 일을 해야 하는데 그것을 회개라고 부릅니다.
반대로 하나님과 내가 함께 있을 때, '예수 안'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이 '실족'되느냐구요? 여기서 실족이라는 얘기는 '예수 안'에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할 때는 '의'가운데 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죄에 빠지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밖으로 밀어내 버리십니다. 더 이상 우리를 상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본인은, 실컷 밤에 야한 동영상을 시청하고서, 다음날 예배시간에 설교를 듣고, 기도를 하고 찬양을 부르면, '예수 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죄가 있는 한, 하나님이 함께 할 수는 없습니다. 죄도 짓고, 하나님도 믿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여러분! 믿음이라는 것은, 항상 '의'가운데 거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밤에 실컷 동영상을 시청하고, '낮'에는 교회 가서 말씀에 은혜 받는다'고 하지요. '은혜 같은 말'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감동이 은혜입니까? 은혜는 내가 '죄를 벗어버리는 실제 행동이 은혜'입니다. 마음속에는 '음란'이 있으면, '여체가 왔다 갔다'합니다. '야한 동영상'이 왔다 갔다 합니다. 머릿속에서 그런 '동영상'이 왔다 갔다 합니다. 여러분! 물질적인 탐심에 빠지면, '돈이 왔다 갔다'합니다. 월 100만원에 구원을 파는 사람 엄청 많습니다. 그것이 '탐심'입니다. 한심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이 음란에 구원을 팔아버립니다.
'하나님이 질투하시는 것이 우상'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질투하게 하는 것, 하나님이 우리에게 질투심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우리의 '영의 눈'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믿음'이라고 부릅니다. 믿음은, 내 영의 눈이 하나님만 바라보는 상태를 '믿음'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내 영'이 하나님 이외에 물질을 바라본다든가, 음란을 바라본다면, 또는 마약을 바라본다면 지옥 갑니다. 마약류에 탐닉되면, 마음속에 하나님이 아니라 마약이 앞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약 중독'된 사람, 100% 지옥입니다.
여러분! 우상 숭배는 지옥의 요소입니다. 우리가 '돌과 나무' 앞에 절하면 안 됩니다. 자연계에 절하면 안 됩니다. 동시에 '음란'에 절하면 안 됩니다. '돈'에 절하면 안 됩니다. '마약'에, '술'에, 절하면 안 됩니다. '술'중독된 사람은, 술이 왔다 갔다 합니다. 그래서 지옥 가는 것입니다. 술에 쩔어서 술 없이 못 사는 사람이, 천국 간다고 생각합니까? 100% 지옥입니다.
'실족케 된다면'
무엇입니까? '그것을 빼어라' '눈을 빼어라'입니다. '하나님 처방'입니다. 여러분! '영의 눈'이 물론 음란을 바라보지요. 우리 '육의 눈을 빼어라!'입니다. '그리고 네게서 던져라'처방인데, 우리의 마음에 음란이 들어왔다, 내 마음에 '음란이라 불리는 관능'에 빠져들면, 이미 내 영혼이 거기에 빠져든 것입니다. 그럼 뭐해야 할까요? '네 눈을 빼라'는 말입니다.
'눈을 빼는 것', '끊으라는 얘기'입니다. 끊어야 합니다. 여러분 '동영상을 보는 것' 끊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럴 것입니다. '다 보는데요?' 다 지옥입니다!' 여러분! 지금 시대가 왜? 천국 가기 어려운 줄 아십니까? 예전에 숨어서 은밀하게 거래되던 비디오들이 지금은 자유롭게 방송이나, 인터넷, 스마트폰을 통해서 누구나 볼 수 있습니다. 모두 지옥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당연히 보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 여러분! '롯 시대'에는 '롯'만 구원 받았습니다. '노아 시대'때에, '노아와 그의 가족'만 구원 받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죄악이 관영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죄악이 관영하니까, '죄'를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것이 말세입니다. 죄를 죄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무뎌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는 믿음이 식어집니다. 거듭남도 어려운데 거듭난 사람이 쉽게 구원을 잃어버립니다. 여러분! 동영상에 물들면 끝난 것입니다. 구원 없습니다. '네게서 던져라!' 여러분! 처방이 뭐냐하면, '여러분! 눈 빼기 쉽습니까? 눈을 빼서 던질 정도의 각오를 하고 끊어야 합니다.
'네 신체들 중 하나가 멸하고' '네 온몸이' 눈을 빼면, 우리의 영의 눈이 없어질까요? 아닙니다. 눈은 있습니다. '네 온 몸이 지옥으로 던져지지 않는 것이' 여러분! 지옥 갈 때, 눈을 빼도 온 몸으로 갑니다. 나중에 주님 재림하시면 육이 부활하고 불의 연못으로 온몸이 던져집니다.
여러분들은 성경을 어떻게 보냐하면, 저처럼 보질 않고, 신학교에서 발췌한 것을, 다시 인간의 지혜로 변형된 것을, 다시 설교자의 지혜로 가미된 것을 듣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믿는 신앙은, 성경의 내용을 뽑아서 발췌해서 모아서 교리로 변형시키고, 변형된 것을 설교자가 다시 각색해서, 여러분에게 주기 때문에, 여러분은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변형된 신앙을 믿기 때문에 여러분은 지옥 가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말하는 대상은 누구입니까? 대상은 고라신이나, 벳데다나, 가버나움에서 설교한 내용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예수님께서 설교한 내용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믿어야 하는데, 여러분이 지금 듣는 내용은 과거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듣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눈알 하나를 잃어버리고, 이것은 내 마음의 결단이며 손해이며 피해입니다. 여러분! 그런 각오가 없이, 예수님을 따른다구요? 하늘이 웃습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가족과 배들을 버렸다고 하는데, 여러분은 뭘 버리십니까? 여러분! 예수 믿는다고 개수작 떨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 지금 '신체 중 하나를 버려라!' 예수님 말씀입니다.
'동성애'한다구요? 100% 지옥입니다. 여러분을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달렸다는 그런 속죄만 맨날 듣고 평생 지낼 것입니까? 어떻게 여러분들이 믿는 내용들이 그렇게 천박합니까? 여러분들이 믿는 내용들이 얼마나 죄악스러운지 모릅니다.
여러분! 결혼했는데, 외도의 마음이 있습니까? 그것을 끊어 버려야 합니다. '음행' 하려는 마음을 끊어 버려야 합니다. 그 자체가 음란입니다. 여러분께서 그런 것을 끊으려는 마음조차 없이, 이 시대 풍조 따라서 살아간다면, 여러분은 지옥에서 혀가 나오고, 찢기고, 눈이 패이고, 구더기가 먹으며, 여러분의 성기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여러분의온 몸이 불에 태워지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을 영원히 당할 것입니다. 여러분! 지옥을 두려워 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여러분과 제가 지옥에 들어가지 않고, 천국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값을 지불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 한해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지, 단순히 믿는다는 사변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사변'은 '자기 스스로 믿거나 여기는 것'입니다. '몽상'입니다. 여러분! '몽상가'가 되지 마십시오! 여러분! '믿음'은 '몽상'이 아닙니다.
여러분! 제발 부탁드립니다! 지옥에 가서, 영원히 탄식하시지 마십시오! 저는 여러분들이 지옥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 이 일을 하는 것입니다. 마치겠습니다!
51. 그리고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에 해변, 가버나움으로 가서 사셨는데,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 요단 건너 바다 길, 이방의 갈릴리, 어두움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으며, 죽음의 나라와 그늘에 앉은, 그들에게 빛이 비취었다”라고 말하며 선포된 것이 성취되기 위함입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51절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으신 다음에 유대 광야에 가셔서 마귀의 세 가지 시험을 이기시고, 유대 예루살렘에 가지 않으시고, 갈릴리로 가셨는데, 나사렛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떠나신 것입니다. 떠나서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의 해변’ 갈릴리 호수 좌편이 납달리고, 납달리 바로 아래 지역이 스불론입니다. ‘가버나움으로 가서 사셨는데’ 가버나움은 갈릴리 호수 인접 지역, 바로 옆에 있는 동네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이사야가 예수님을 가장 많이 묘사했다고 말씀 드렸었죠.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 요단 건너 바다 길, 이방의 갈릴리’ 이방의 갈릴리, 지금 여기서 갈릴리를 이방이라 부릅니다. 누가? ‘이사야’가, 굉장히 심각한 것입니다. 지금 ‘갈릴리’를 ‘이방이다’라고 부르는 것은 굉장히 심각함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범죄할 때, 그들을 쫓아내시고, 여전히 구전된 말씀을 통해서, 말씀이 증거 되는데, 아벨은 대표적인 사람이죠. 제사를 드린 사람이고, 아벨이 가인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다시, 셋을 통해서 하나님 백성이 이어지는데, 그 때는 1,000살을 한계로 해서 900세 이상을 다 산 사람들이죠. 근데 하나님의 백성의 수가 자꾸 줄어 드는 것이예요. 사람 숫자는 늘어나는데, 하나님의 백성은 줄어드는 거예요. 심지어 노아 때에 와서는 아무도 없어요. 하나님께서 이제 방법을 쓰셨는데, 노아 가족만 남겨두고 자기 백성이 아닌 사람들을 다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 홍수가 일어 납니다. 노아 가족만 살아남고 전 지구의 모든 것이 다 죽었습니다. 만
6. 그런즉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의 세대가 모두 14세대이며, 다윗부터 바벨론 이주까지 14세대이며, 바벨론 이주부터 그리스도까지 14세대입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6절입니다. 이 14세대가 세 번 반복되는데 이것은 다윗의 숫자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로 오셨는데 이 그리스도를 묘사한 가장 완벽한 사람이 다윗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히브리어로 '메시아'인데, 메시아 통치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다윗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약은 계속 메시아를 기다리죠. '나중에 여자의 후손이 올거야! 나중에 그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는 그 누군가가 올거야! 나중에 어떤 아들이 태어나서 우리를 다스리는데, 우리는 꿈같은 삶을 살거야' 하고 구약 내내 기다립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다윗에 대한 그리움과 갈망이 항상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출생 하셨을 때 다윗의 후손이라고 부르죠. 이 다윗의 후손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이것은 왕의 출생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기다립니다. '메시아가 오면 우리를 잘 통치해 잘 먹고 잘 살거야! 우리는 행복할 거야!'라는 기다림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이해 못합니다. 왜냐하면 기존 관념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이 오면, 정치적으로 왕이 되어서 로마에서 해방시켜 주고 우리는 한 자리 할거야!' 그래서 다툼도 일어납니다. 자기들끼리 '자. 너는 오른편에 앉아 왼편에 앉아!'라고 자리다툼이 일어납니다. 메시아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 때문이었습니다. 자, 이제 중요합니다. '그리스도가 누구냐? 메시아가 누구냐?'에 대한 그 이해와 사고가 중요한데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다음에 모든 수난과 고난을 겪으시고 십자가에서 값을 치루시고 부활 하시죠. 그리고 40일 동안 신령한 몸을 입고 부활체로써 이 땅에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10일 뒤에 승천하시고 10일 뒤에 오순절
106. 몸의 등불은 눈이다. 그런즉 만약 네 눈이 성하다면 네 온 몸이 밝을 것이다. 만약 네 눈이 악하다면, 네 온 몸은 어두울 것이다. 마태복음 106절 말씀입니다. '몸의 등불은 눈이다' 맞지요. 눈이 감기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 않습니까? 당연히 몸의 등불은 눈입니다. 여러분! 깜깜한 밤에 횃불이 있으면 그 불 때문에 밤이 환하게 밝은 것처럼, 눈으로 보는 것을 보게 되고 눈이 감긴 소경이 가장 비참한 것입니다. '그런즉 만약 네 눈이 성하다면 네 온몸이 밝을 것이다' 그렇죠. 눈이 멀쩡하면 밝음을 느낍니다. 왜? 태양광선을 통해서 사물을 볼 수 있으니까, 밝음을 느낍니다. '만약 네 눈이 악하다면' 눈이 좋지 않다면 '네 온 몸은 어두울 것이다' 여러분! 눈만 감으면 어두움입니다. 눈만 뜨면 밝음이고, 이 눈이라는 조그마한 기관 때문에 우리 온몸이 좌우되는 것입니다. 똑같이 이것은 육의 세계만이 아니라, 영의 세계인데, 왜? 영의 세계이냐? 표현할 때, 네 눈이 약하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악하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눈은 '육의 눈'이 아니고 '영의 눈'입니다. 동시에 '성하다'는 표현은 '영, 육'에 같이 쓰이는 표현인데, 이 '악하다'는 표현은 영에 쓰이는 표현이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눈은 몸의 눈이 아니라 영의 눈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 구절을 이해하실 때, '아! 이 구절은 영적인 것이구나!'하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우리 '영의 눈'이 감긴 상태, 그것이 '악한 것'입니다. '영의 눈'이 감기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믿는 자의 악이 어디서 들어올까요? 영의 눈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영의 눈이 닫힌 상태, 뭐가 들어올까요? 하나님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우리 '영의 눈'
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마태복음 145 절 강해 오늘은 마태복음 145절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 주변에 많은 군중들을 보시고 건너편으로 갈 것을 명하셨습니다 . 지금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연약함들을, 다 고쳐주시고, 질병들을 낫게한, 그 사안,저녁에 많은 군중들이 모여서 고침받는 것입니다 . 많은 군중들을 보시고 건너편으로 갈 것을 명하셨습니다 . 아이러니 합니다 . 예수님 지금 군중들을 보시고 고쳐주시며 같이 잠을 자고 거기서 하루밤을 지내야 되는데 건너편으로 가자는 것입니다 . 그런데 이 사안도 제의가 아니라 , 명하다 ! 쉽게 말하면 명령입니다 . 우리가 말할 때 그냥 여기가 좋지 않겠니 제의도 아닙니다 . 예수님은 명하신것입니다 . 병이 나은 군중들에게 자 ! 너희들 이제 건너편으로 가자 ! 명령합니다 . 제가 볼때는 황당했을 거예요 , 고침받고, 지금 좋은 말씀듣고, 상태가 좋은데 곧바로 이어진 액션을 뭐냐면 전혀 예측하지 않은 건너편으로 가라고 명하는 것입니다 . 어쩌면 이것은 지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도 말씀하신 것은 물론이고 군중들도 있을 수 가있겠죠 이것은 지금 예수님께서 건너편으로 가자고 확신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 여러분 ! 이게 바로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 어려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 우리가 주님을 통해서 문제가 해결되고 또는 내 어떤 병이 낫고 쉽게 말하면 살만한데 주님께서는 다른걸 우리에게 명령하십니다 . 여러분 ! 이런 당황함이 우리 삶에 있습니다 . 지금 주님께서는 산상수훈을 말씀하시고 문둥병자와 중풍병자를 고치시고 그리고 베드로 장모를 열병으로 고쳐주시고 귀신들린 사람들을 고쳐주셨는데 곧바로 주님께서는 액션이 이제 사역이 완성되었다 . 자 ! 나 봤지 ! 사역하자 ! 가 아니라 어디입니까 ? 건너편으로 가자 ! 입니다 . 여러분 ! 건너편이 어디입니까 ? 호수 건너편 갈릴리 호수 지금 때가 몇시입니까 ? 때가 낯이 아닙니...
오늘은 마태복음 143 절 말씀입니다 .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으로 오셔서 그의 장모가 누워 열병 앓는 것을 보셨으며,그녀의 손을 만지셨으며, 열병이 그녀를 떠났으며, 그녀는 일어났으며, 그들을 섬겼습니다. 지금 스토리는 전향되서 문둥병 스토리가 끝나고 중풍병든 하인을 둔 백부장의 스토리가 끝나고 새로운 스토리가 시작되는데 짧습니다 . 오늘 한 절의 스토리입니다 . 한 절의 스토리가 다 있는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으로 오셔서" 지금 베드로는 예수님의 가버나움 있는 집에서 멀지 않는 곳이었고 ,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집에 자주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베드로의 집에 자주 갈 확률이 크죠 , 왜냐하면 예수님과 베드로는 밀접한 관계에 있었습니다 . 예수님과 요한도 밀접한 관계에 있었고 , 그래서 베드로의 집에 오셔서 , 아마 오신 것이 우연은 아니겠죠 , 우연은 아니고 , 예수님의 모든 사역은 다 필연입니다 . 여러분 ! 우리가 살면서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면 하나님의 사역 가운데라면 모든게 다 필연임을 알게됩니다 . 왜냐면 하나님께서는 다 계획 가운데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 "집으로 오셔서" 그의 장모가 쉽지 않는 장면입니다 . 사위의 집에 있는거 쉽지 않은 장면이죠 베드로가 지금 아내가 있는지 자식이 있는지 성경에 묘사가 안됐습니다 . 성경에 묘사가 안됐다 해서 없는거 아닙니다 .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 묘사가 안돼면 없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 여러분 ! 그런 것은 아닙니다 . 성경에는 꼭 필요한 것만 묘사합니다 . 나머지는 뭡니까 ? 그냥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서술을 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 구약에 많...
박경호목사님의 헬라어번역성경 마태복음 139 절말씀 139 절 (개역개정 8장10절) : 그러자 예수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기셨으며 따르는 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 “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 이스라엘에서 이만한 믿음을 발견하지 못했다 .” “ 그러자 ” 지금 백부장이 예수님께 예수님 ! 저두 시키면 다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 중심적인 고백을 할 때 예수님께서 들으시고, 여러분 ! 성경은 한자 한자가 다 감동으로 쓰인것입니다 .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기도를 들으신 것입니다 . 백부장이 기도한겁니다 . 여러분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 예수님은 만나는 존재가 아닙니다 . 예수님은 보좌에서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 기도를 들으십니다 . 그래서 들으셨습니다 . “ 들으시고 ” 기이히 여기히 여기셨습니다 . 놀라다는 아닙니다 . 이상하게 여기는 것도 아닙니다 . 기이히 여기다라는 것은 높이 평가하는 흥분된 그런 고양된 감성상태입니다 . 기이히 여겼다는 것은 뭐냐면 ? 있을 수 없는 일인데 하면서 그런 느낌 을 주는 표현이 기이히 여기는 것입니다 . 이상히 여겼다는 것은 아닙니다 . 놀라는 것도 아닙니다 . 굉장히 대단하다! 라는 느낌을 주는 감성 상태를 말합니다 . “ 기이히 여기셨으며 ” 쉽게 말하면 칭찬하면서 높이 평가하는 그런 감성을 예수님께서 가지신 것입니다 . “ 따르는 자들에게 ” 따르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 예수님 제자들이죠 , 예수님의 옆에는 제자들이 있었고 70 명이 있었죠 물론 여기서 제자들이 70 명 상태인지 모르겠지만 , 제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 여러분 ! 따르는 자들에게 말할 땐 뭡니까 ? 교훈입니다 . 가르침입니다 . 예수님께서는 항상 어떤 사건을 나타낸 다음에 그 사건을 축약해 가지구 한 마디로 드디어 말씀하십니다 . 독후감 쓰는 겁니다 . 우리 입장에서는 하나님께서는 교훈입니다 . 교훈을 말씀하십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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