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음교회 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마태복음 2장(산상수훈) 7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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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너희는 땅의 소금이다. 그러나 만약 소금이 맛잃는다면, 무엇으로 짜게되겠느냐? 더 이상 아무데도 필요없어, 밖에 던져져 사람들에게서 밟힐 뿐이다.
마태복음 71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너희는 천국에 들어가는 내 자녀들을 말합니다. ‘땅에’ 이 땅에는 세상을 말합니다. 현재 사는 우리의 모든 삶을 말하기도 합니다. ‘소금이다’ 이것은 부패를 방지하는 것이죠. 다시 말하면 땅은 세상은 부패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 세상은 부패되어 있습니다. 원래 그래 왔습니다.
어릴 때, 아이가 학교에 가면 엄마가 학교 선생님에게 촌지를 줍니다. 촌지 문화가 대중화 된 것 아시죠. 촌지를 다 주지는 않지요. 한 반에 3/1정도 있고, 그러면 촌지를 받은 선생님이 아무래도 그 학생을 더 봐주게 되죠. 보호해 주게 되고 더 후한 점수를 주게 되죠. 어쩔 수 없지요. 그래서 그렇게 성장하다가 이제 대학을 가고, 대학원을 가고, 대학원에 가면 교수가 절대적이죠. 여자들일 경우에 교수님으로부터 오는 성추행을 감당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대학교의 교수는 인생의 절대적입니다. 교수가 잘 보면 나중에 교수로 연결이 되는 것이고, 안되면 잘 되지 않는 인생이 되니, 극과 극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이제 대학원을 졸업하면 직장에 취직을 하게 되지요. 남자들은 이제 군대를 가게 되고, 남자들은 군대 가기 싫으면 아주 옛날에는 돈으로 면제가 되는 경우가 있고, 직장에 취직을 하면, 회식 문화가 다 있어서, 상무나, 이사나, 전무가 술을 권하기도 합니다. 그 때, 거절하면 곤란해집니다. 그래서 주는 대로 마시게 되면 술에 취하게 되지요. 술에 취하지 말라는 말씀이 성경에 있지만, 취하게 되고, 그 술취함에서 음란이 오고, 부도덕이 어쩔 수 없는 현상들이 각계각층에 존재합니다.
사회 구조라는 것이 우리가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이 세상은 부패가 가득 차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 인간에게는 생존이라는 본능과, 번영과 번성이라는 욕망 때문입니다. 이것 때문에 이 세상은 당연히 부패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사회 가운데 부패되어 있지 않은 곳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그래서 부패를 경험하느니, 내가 세상을 떠나겠다. 그래서 속세를 떠납니다. 속세를 떠나서 산으로 가는 것이 불교입니다. 불교나 힌두교인들은 거기를 떠나서 고행이나, 또 종교적인 심취, 광신적으로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땅의 소금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부패가 없는 곳이 없다는 전제입니다. 예수님 말씀은, ‘너희가 땅을 떠나라’가 아닙니다. ‘땅의 소금이다’입니다. 너희가 사는 세상은 부패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무엇이냐? ‘너희는 부패를 방지 할 수 있어!’ 이것이 가능할까요? 가능한 시대가 있었습니다. ‘일제 시대때’입니다. 여러분! 일제 때, 크리스쳔들이 ‘1%’였습니다. 이들이 우리나라의 정서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일제 때, 나온 ‘찬송가’나, 일제 때 나온 ‘영성 책’을 읽으면 알 수가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크리스쳔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었고, 부패를 방지시키는 으뜸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은? 지금은 크리스쳔들이 부패의 원조가 됩니다. 제가 아는 사람 중에 아주 크게 성공한 친구가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는데, 이 친구가 주가 조작으로 연루되어서 재판 받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돈이 어마어마하게 많지요. 주가 조작으로 생긴 돈을 가지고, 교회에다가 십일조로 바치고, 교회는 성전 건축으로 또 커집니다.
여러분! 교회가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서, 조폭을 회유시켜서 조폭을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조폭을 고용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정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부패된 세상에서도 가장 부패된 조직을 고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보호해줘! 교회를 보호해 줘!’ 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조폭들을 끼고, 모든 교회의 위기들을 막는 것입니다.
지금은 성스러워할 교회가 지금은 땅의 일부가 되었고, 크리스쳔들도 땅의 부패의 온상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사람들이 크리스쳔을 믿지 않습니다. 왜? 크리스쳔들이 더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부패를 방지해야 할 소금인 크리스쳔, 물론 지옥에 들어가는 크리스쳔입니다. 소금으로써 감당을 하고 천국 가야 할 크리스쳔들이 욕심과 욕망으로 오염이 되고 부패가 되었습니다.
교회가 정치 당을 만들었어요. ‘기독당’입니까? 여러분! 그런 것, 성경에 하지 말라고 되어 있지요. 성경에서는 교회가 정치에 관여하면 안됩니다. 그런데 어떤 세력을 만들고, 이익 단체를 만듭니다.
부패에 참여하지 않기 위해서는 불이익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것이 ‘소금’인 것입니다. ‘땅의 소금’이다! 이것은, 생존 모드와 번영 모드를 버리고, 불이익과 수모와 왕따를 감당해야 합니다.
크리스쳔들이 배제해야 할 문화는 ‘번영의 문화’입니다. ‘번성의 문화’입니다. 만약 이것이 바뀌어지지 않으면, 이 땅은 여전히 부패 가운데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부패를 바꾸는 유일한 방법은, 근본적으로 욕심을 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잘 살아야지!’ ‘고생하지 않고 살아야지!’, ‘내가 더 잘 되어야지!’ 이런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여러분도 동일하게 같은 부패된 삶을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대학생들도 신입생이 들어오면 술을 먹이는 문화가 있습니다. 여러분 감당 하겠습니까? 너희는 땅에 소금이라는 것은, 감당하느냐? 안 하느냐의 실전에 우리가 돌입되는 것입니다. 자! 예수를 믿고, ‘말씀대로 살아야지!, 뜻대로 살아야지!’ 하지만, 실제로는 땅입니다. 부패와의 싸움이 기다리는 것입니다.
‘만약에 소금이 맛 잃는다면’, 너의 역할은 소금인데, ‘네가 땅의 부패와 싸워야 하는데, 맛을 잃어 버리고, 부패를 방지 못하면?’ ‘무엇으로 짜게 되겠느냐’ ‘더 이상 아무데도 필요없어’ 크리스쳔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밖에 던져져’, 네가 지금 이 사회의 만연된 부패 속에 살아가는데, 네가 만약에 소금 역할을 못한다면 너는 밖에 던져져 밖은 어디입니까? 지옥입니다. 세상입니다.
‘사람들에게서 밟힐 뿐이다’ 맛을 잃어버린 소금, 또는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뜻대로 살지 못하는 소금이 결국은 이 땅에서도 버림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 어렵다는 것입니다. 어렵습니다. 하지만 어렵더라도 가야지, 말씀대로 살지 아니하고, 뜻대로 살지 아니하고, 세상의 부패와 함께 맞물려서 살아가면, 결국은 버려 집니다. 명심하십시오! 결국은 하나님에게도 버려지고, 세상에서도 버려지는 것입니다.
가장 비참한 운명은, ‘지옥에 들어가는 크리스쳔’ 운명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예 크리스쳔이 안되었으면, 지옥 갑니다. 그런데 크리스쳔이 되었는데, 땅의 부패를 막는 역할을 못하면, 땅에서도 버려지고, 천국도 못 가고, 지옥에 들어가는 이 이중고를 겪게 되기 때문에, 크리스쳔으로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반대로 소금 역할을 하면, 땅에서도 버려지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도 소금 역할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나중에 높일 때가 옵니다. 그리고 천국에도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산상수훈에서 너희가 지금 ‘팔복’을 행하느냐, 날 위해 살아가느냐, 선지자처럼 영적인 높은 삶을 살아가느냐, 그렇다면 너희가 사는 삶은, 세상의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의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싱가폴에서는 국가 공무원이 부정을 하면 사형입니다. 그래서 거기에는 부정부패가 없습니다. 국가 가운데 후진국일수록, 공무원들이 부정부패가 많고, 선진국일수록 손가락 빨고 살아갑니다. 왜? 부정을 행할 수가 없습니다.
소금 3%만 뿌리면 절대 썩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생선도 소금으로 절이면 썩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생선도 소금으로 절이면 썩지 않습니다. 세상이 썩는 것은, 누구 책임입니까? 세상 책임이 아닌 것입니다. ‘나’ 때문입니다. ‘크리스쳔’ 책임입니다. 여러분 세상을 욕하지 마십시오! 모든 부패의 원인은 ‘크리스쳔’ 책임입니다.
인도의 간디가 ‘무저항 비폭력 운동’을 합니다. 영국과 싸울 때, 간디 한명이 아주 깨끗한 저항 운동을 했을 때, 깨끗한 극소수의 사람, 극소수의 사람이지만, 그 극소수의 바른 사상이 그 국가를 해방 시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땅에 살아갈 때, 극소수의 사람이지만, 바른 생각 가지고 바른 마음 가지고 또 바른 깨끗한 마음으로 이 땅에서 살아간다면, 결국은 세상은 변화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세상은 절대 부패되지 않는 장소가 될 것입니다. 마치겠습니다.
마태복음 71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너희는 천국에 들어가는 내 자녀들을 말합니다. ‘땅에’ 이 땅에는 세상을 말합니다. 현재 사는 우리의 모든 삶을 말하기도 합니다. ‘소금이다’ 이것은 부패를 방지하는 것이죠. 다시 말하면 땅은 세상은 부패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 세상은 부패되어 있습니다. 원래 그래 왔습니다.
어릴 때, 아이가 학교에 가면 엄마가 학교 선생님에게 촌지를 줍니다. 촌지 문화가 대중화 된 것 아시죠. 촌지를 다 주지는 않지요. 한 반에 3/1정도 있고, 그러면 촌지를 받은 선생님이 아무래도 그 학생을 더 봐주게 되죠. 보호해 주게 되고 더 후한 점수를 주게 되죠. 어쩔 수 없지요. 그래서 그렇게 성장하다가 이제 대학을 가고, 대학원을 가고, 대학원에 가면 교수가 절대적이죠. 여자들일 경우에 교수님으로부터 오는 성추행을 감당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대학교의 교수는 인생의 절대적입니다. 교수가 잘 보면 나중에 교수로 연결이 되는 것이고, 안되면 잘 되지 않는 인생이 되니, 극과 극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이제 대학원을 졸업하면 직장에 취직을 하게 되지요. 남자들은 이제 군대를 가게 되고, 남자들은 군대 가기 싫으면 아주 옛날에는 돈으로 면제가 되는 경우가 있고, 직장에 취직을 하면, 회식 문화가 다 있어서, 상무나, 이사나, 전무가 술을 권하기도 합니다. 그 때, 거절하면 곤란해집니다. 그래서 주는 대로 마시게 되면 술에 취하게 되지요. 술에 취하지 말라는 말씀이 성경에 있지만, 취하게 되고, 그 술취함에서 음란이 오고, 부도덕이 어쩔 수 없는 현상들이 각계각층에 존재합니다.
사회 구조라는 것이 우리가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이 세상은 부패가 가득 차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 인간에게는 생존이라는 본능과, 번영과 번성이라는 욕망 때문입니다. 이것 때문에 이 세상은 당연히 부패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사회 가운데 부패되어 있지 않은 곳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그래서 부패를 경험하느니, 내가 세상을 떠나겠다. 그래서 속세를 떠납니다. 속세를 떠나서 산으로 가는 것이 불교입니다. 불교나 힌두교인들은 거기를 떠나서 고행이나, 또 종교적인 심취, 광신적으로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땅의 소금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부패가 없는 곳이 없다는 전제입니다. 예수님 말씀은, ‘너희가 땅을 떠나라’가 아닙니다. ‘땅의 소금이다’입니다. 너희가 사는 세상은 부패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무엇이냐? ‘너희는 부패를 방지 할 수 있어!’ 이것이 가능할까요? 가능한 시대가 있었습니다. ‘일제 시대때’입니다. 여러분! 일제 때, 크리스쳔들이 ‘1%’였습니다. 이들이 우리나라의 정서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일제 때, 나온 ‘찬송가’나, 일제 때 나온 ‘영성 책’을 읽으면 알 수가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크리스쳔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었고, 부패를 방지시키는 으뜸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은? 지금은 크리스쳔들이 부패의 원조가 됩니다. 제가 아는 사람 중에 아주 크게 성공한 친구가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는데, 이 친구가 주가 조작으로 연루되어서 재판 받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돈이 어마어마하게 많지요. 주가 조작으로 생긴 돈을 가지고, 교회에다가 십일조로 바치고, 교회는 성전 건축으로 또 커집니다.
여러분! 교회가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서, 조폭을 회유시켜서 조폭을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조폭을 고용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정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부패된 세상에서도 가장 부패된 조직을 고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보호해줘! 교회를 보호해 줘!’ 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조폭들을 끼고, 모든 교회의 위기들을 막는 것입니다.
지금은 성스러워할 교회가 지금은 땅의 일부가 되었고, 크리스쳔들도 땅의 부패의 온상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사람들이 크리스쳔을 믿지 않습니다. 왜? 크리스쳔들이 더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부패를 방지해야 할 소금인 크리스쳔, 물론 지옥에 들어가는 크리스쳔입니다. 소금으로써 감당을 하고 천국 가야 할 크리스쳔들이 욕심과 욕망으로 오염이 되고 부패가 되었습니다.
교회가 정치 당을 만들었어요. ‘기독당’입니까? 여러분! 그런 것, 성경에 하지 말라고 되어 있지요. 성경에서는 교회가 정치에 관여하면 안됩니다. 그런데 어떤 세력을 만들고, 이익 단체를 만듭니다.
부패에 참여하지 않기 위해서는 불이익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것이 ‘소금’인 것입니다. ‘땅의 소금’이다! 이것은, 생존 모드와 번영 모드를 버리고, 불이익과 수모와 왕따를 감당해야 합니다.
크리스쳔들이 배제해야 할 문화는 ‘번영의 문화’입니다. ‘번성의 문화’입니다. 만약 이것이 바뀌어지지 않으면, 이 땅은 여전히 부패 가운데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부패를 바꾸는 유일한 방법은, 근본적으로 욕심을 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잘 살아야지!’ ‘고생하지 않고 살아야지!’, ‘내가 더 잘 되어야지!’ 이런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여러분도 동일하게 같은 부패된 삶을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대학생들도 신입생이 들어오면 술을 먹이는 문화가 있습니다. 여러분 감당 하겠습니까? 너희는 땅에 소금이라는 것은, 감당하느냐? 안 하느냐의 실전에 우리가 돌입되는 것입니다. 자! 예수를 믿고, ‘말씀대로 살아야지!, 뜻대로 살아야지!’ 하지만, 실제로는 땅입니다. 부패와의 싸움이 기다리는 것입니다.
‘만약에 소금이 맛 잃는다면’, 너의 역할은 소금인데, ‘네가 땅의 부패와 싸워야 하는데, 맛을 잃어 버리고, 부패를 방지 못하면?’ ‘무엇으로 짜게 되겠느냐’ ‘더 이상 아무데도 필요없어’ 크리스쳔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밖에 던져져’, 네가 지금 이 사회의 만연된 부패 속에 살아가는데, 네가 만약에 소금 역할을 못한다면 너는 밖에 던져져 밖은 어디입니까? 지옥입니다. 세상입니다.
‘사람들에게서 밟힐 뿐이다’ 맛을 잃어버린 소금, 또는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뜻대로 살지 못하는 소금이 결국은 이 땅에서도 버림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 어렵다는 것입니다. 어렵습니다. 하지만 어렵더라도 가야지, 말씀대로 살지 아니하고, 뜻대로 살지 아니하고, 세상의 부패와 함께 맞물려서 살아가면, 결국은 버려 집니다. 명심하십시오! 결국은 하나님에게도 버려지고, 세상에서도 버려지는 것입니다.
가장 비참한 운명은, ‘지옥에 들어가는 크리스쳔’ 운명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예 크리스쳔이 안되었으면, 지옥 갑니다. 그런데 크리스쳔이 되었는데, 땅의 부패를 막는 역할을 못하면, 땅에서도 버려지고, 천국도 못 가고, 지옥에 들어가는 이 이중고를 겪게 되기 때문에, 크리스쳔으로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반대로 소금 역할을 하면, 땅에서도 버려지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도 소금 역할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나중에 높일 때가 옵니다. 그리고 천국에도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산상수훈에서 너희가 지금 ‘팔복’을 행하느냐, 날 위해 살아가느냐, 선지자처럼 영적인 높은 삶을 살아가느냐, 그렇다면 너희가 사는 삶은, 세상의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의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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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간디가 ‘무저항 비폭력 운동’을 합니다. 영국과 싸울 때, 간디 한명이 아주 깨끗한 저항 운동을 했을 때, 깨끗한 극소수의 사람, 극소수의 사람이지만, 그 극소수의 바른 사상이 그 국가를 해방 시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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