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마태복음 1장 (거듭남, 성령세례, 마귀시험) 3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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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나는 회개를 나타내게 너희에게 물로 세례 준다. 그러나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강하시며, 나는 신발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는데, 그분은 너희에게 거룩한 영과 불로 세례주실 것이다.
오늘은 마태복음 34절 말씀입니다. ‘나는 회개를 나타내게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이 회개라는 단어 앞에 전치사가 있는데 우리 성경에는 이제 회개를 일으키도록 또는 일어나도록 이렇게 번역을 하였습니다. 사실은 그것은 오번역입니다.
과연 내가 거듭 났을까? 내가 구원 받았을까? 예수 안에 있을까? 헷갈리시죠? 성령으로 세례를 구하십시오! 구하면 주십니다.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약속된 말씀입니다. 방언을 구하지 마십시오! ‘방언을 구하라’는 말씀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냥 성령의 세례를 구하십시오! 성령 세례를 구하는 이유는 내가 천국 가는지를 확인하는 확인 작업입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거의 대부분 지옥 간다고 하는데 궁금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정말로 천국 가는가를 알기를 원한다면 오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성령으로 세례를 구하십시오.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다면 여러분이 천국 가는 하나님의 백성이 확실합니다. 하지만 성령 세례가 임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다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저는 ‘85년도에 성령세례를 받았습니다. 대학에 다닐 때였는데 그 때 성령세례를 받고 천국 간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물론 성령세례가 앞으로의 구원을 확정 짓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지금 너는 내 자녀라는 징표입니다.
2번째 성령 세례를 구하는 이유는 방언 때문입니다. 방언을 받는 방법으로써 성령 세례를 구하는 것입니다. 성령 세례가 임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방언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성령 세례를 받지 않고 방언만 받거나 예언을 받은 분이 계십니다. 그런 분들은 성령 세례를 다시 구하십시오! 성령 세례를 주실 것입니다.
성령 세례와 방언 은사는 별개입니다. 성령 세례를 받으면 능력이 부어집니다. ‘너희가 능력이 덧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누가복음에 있는 말씀입니다. 동시에 사도행전 초반에 있는 말씀입니다. 능력은 원수를 제어하는 능력이며 사단을 결박하는 능력이며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 능력이라는 것은 영적인 힘을 말합니다. 이 능력은 성령 세례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그래서 성령 세례를 받으면 3번째로 다섯 가지 능력이 임하게 됩니다.
성령 세례를 왜 받아야 하는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명해 주고 또 방언의 은사를 받게 하며 또한 능력 다섯 가지가 주어집니다. 그래서 이 능력을 받게 하기 위해서 성령 세례를 받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 세례는 새로운 성령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내주하십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면 그 성령님이 우리에게 자신의 능력을 얻게 하십니다.
첫 번째로는 바로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고 은사를 받아도 왜 사람들이 지옥에 가느냐 하면 중요합니다! 우리 사람은 항상 타락이 가능합니다. 타락의 주 요인이 귀신입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 귀신이 다 있습니다. 이 귀신은 많은 병들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많은 죄를 일으킵니다. 축사는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성령의 세례가 임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는 새 방언입니다. 왜 새 방언일까요? 제가 증명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원래 하던 방언은 지금의 방언은 아니었습니다. 앞서 받은 방언이 두 가지였으며 저는 그 두 개의 방언을 번갈아 가면서 사용했습니다. 그 다음에 얼마 지나서 다른 방언을 또 받았습니다. 그 때 방언이 지금 하는 방언입니다. 저는 이 새 방언이라는 말이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 새 방언일까? 그것은 성령세례를 받으면 방언이 하나가 아니라 계속 새 방언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이 방언이라는 것은 고대 언어일 수도 있고 현재 언어일 수도 있고 하늘의 언어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모릅니다. 새 방언을 왜 주실까요? 기도의 은사입니다. 방언은 은사적 기도입니다. 혼의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통에 한계가 있고 힘이 약합니다. 그러나 방언기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강한 기도를 할 수가 있습니다.
세 번째로는 ‘뱀을 집으며’입니다. 뱀은 사단을 상징합니다. 여러분 뱀을 집어야만 우리는 시험에 휩싸이지 않습니다. 뱀을 집어야만 죄의 전단계인 시험에 빠지지 않습니다.
네 번째로는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이 독은 정신적인 것과 영적인 모든 독을 말합니다. 정신세계를 혼돈스럽게 하면 인간은 우울해집니다. 성령 세례 받으면 우울함에 빠지지 않습니다. 자살은 우울함의 결과입니다. 정신세계가 맑게 되는 방법은 성령 세례입니다.
다섯 번째로는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입니다. 성령세례를 받으면 다 ‘신유자’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다른 사람들의 병을 고친 사례는 한도 끝도 없습니다. 저는 한 번도 실패가 없습니다. 여러분! 재미있지요. 은사적인 신유는 실패가 많지만 성령 세례를 받으면 다섯 가지 능력이 임하기 때문에 실패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서 지금 세례 요한이 ‘그 분은 나보다 더 강하며’ 중요합니다! 세례 요한이 ‘그 분은 나보다 더 강하며’ ‘나는 그의 신발을 들 수가 없다.’무엇이냐면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앞으로 성령 세례 받을 사람은 ‘더 강한 것’입니다. 신약은 구약보다 더 강한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한 번도 축사가 없었습니다. 다윗이 사울 앞에서 찬양 할 때 악신이 떠나갔다고 했지요. 신약에는 축사가 가득 차 있습니다.
왜 여러분은 성령세례를 구하지 않습니까? 성령을 구하지 않습니까? 산상수훈에서도 더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약속하셨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약속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지금 그 분을 통하여서 여러분이 성령 세례 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불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물과 성령’ 씻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물세례를 줍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신 세례는 불입니다. 죄의 근원인 귀신을 쫓아 버립니다. 불입니다. 불은 영적인 세계에서의 불입니다. 밤에 불을 피우면 동물들이 못 덤벼듭니다. 불을 무서워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제는 성령세례를 간구하십시오! 10분, 20분, 30분, 1시간, 2시간, 8시간 안에는 다 받게 되어 있습니다. 과거에 오순절 운동이 일어날 때의 책들을 읽어 본 적이 있습니다. 성령세례를 구하고 받는데 까지 최대 시간이 8시간이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들으시고 무릎을 꿇고 간구하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은 거짓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거듭난 크리스천이며 하나님의 자녀이며 여러분이 지금 죽어 천국 간다면 반드시 성령의 세례를 주십니다. 그러면 여러분도 성령의 능력자가 되는 것입니다. 마치겠습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34절 말씀입니다. ‘나는 회개를 나타내게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이 회개라는 단어 앞에 전치사가 있는데 우리 성경에는 이제 회개를 일으키도록 또는 일어나도록 이렇게 번역을 하였습니다. 사실은 그것은 오번역입니다.
과연 내가 거듭 났을까? 내가 구원 받았을까? 예수 안에 있을까? 헷갈리시죠? 성령으로 세례를 구하십시오! 구하면 주십니다.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약속된 말씀입니다. 방언을 구하지 마십시오! ‘방언을 구하라’는 말씀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냥 성령의 세례를 구하십시오! 성령 세례를 구하는 이유는 내가 천국 가는지를 확인하는 확인 작업입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거의 대부분 지옥 간다고 하는데 궁금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정말로 천국 가는가를 알기를 원한다면 오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성령으로 세례를 구하십시오.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다면 여러분이 천국 가는 하나님의 백성이 확실합니다. 하지만 성령 세례가 임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다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저는 ‘85년도에 성령세례를 받았습니다. 대학에 다닐 때였는데 그 때 성령세례를 받고 천국 간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물론 성령세례가 앞으로의 구원을 확정 짓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지금 너는 내 자녀라는 징표입니다.
2번째 성령 세례를 구하는 이유는 방언 때문입니다. 방언을 받는 방법으로써 성령 세례를 구하는 것입니다. 성령 세례가 임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방언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성령 세례를 받지 않고 방언만 받거나 예언을 받은 분이 계십니다. 그런 분들은 성령 세례를 다시 구하십시오! 성령 세례를 주실 것입니다.
성령 세례와 방언 은사는 별개입니다. 성령 세례를 받으면 능력이 부어집니다. ‘너희가 능력이 덧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누가복음에 있는 말씀입니다. 동시에 사도행전 초반에 있는 말씀입니다. 능력은 원수를 제어하는 능력이며 사단을 결박하는 능력이며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 능력이라는 것은 영적인 힘을 말합니다. 이 능력은 성령 세례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그래서 성령 세례를 받으면 3번째로 다섯 가지 능력이 임하게 됩니다.
성령 세례를 왜 받아야 하는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명해 주고 또 방언의 은사를 받게 하며 또한 능력 다섯 가지가 주어집니다. 그래서 이 능력을 받게 하기 위해서 성령 세례를 받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 세례는 새로운 성령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내주하십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면 그 성령님이 우리에게 자신의 능력을 얻게 하십니다.
첫 번째로는 바로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고 은사를 받아도 왜 사람들이 지옥에 가느냐 하면 중요합니다! 우리 사람은 항상 타락이 가능합니다. 타락의 주 요인이 귀신입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 귀신이 다 있습니다. 이 귀신은 많은 병들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많은 죄를 일으킵니다. 축사는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성령의 세례가 임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는 새 방언입니다. 왜 새 방언일까요? 제가 증명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원래 하던 방언은 지금의 방언은 아니었습니다. 앞서 받은 방언이 두 가지였으며 저는 그 두 개의 방언을 번갈아 가면서 사용했습니다. 그 다음에 얼마 지나서 다른 방언을 또 받았습니다. 그 때 방언이 지금 하는 방언입니다. 저는 이 새 방언이라는 말이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 새 방언일까? 그것은 성령세례를 받으면 방언이 하나가 아니라 계속 새 방언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이 방언이라는 것은 고대 언어일 수도 있고 현재 언어일 수도 있고 하늘의 언어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모릅니다. 새 방언을 왜 주실까요? 기도의 은사입니다. 방언은 은사적 기도입니다. 혼의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통에 한계가 있고 힘이 약합니다. 그러나 방언기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강한 기도를 할 수가 있습니다.
세 번째로는 ‘뱀을 집으며’입니다. 뱀은 사단을 상징합니다. 여러분 뱀을 집어야만 우리는 시험에 휩싸이지 않습니다. 뱀을 집어야만 죄의 전단계인 시험에 빠지지 않습니다.
네 번째로는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이 독은 정신적인 것과 영적인 모든 독을 말합니다. 정신세계를 혼돈스럽게 하면 인간은 우울해집니다. 성령 세례 받으면 우울함에 빠지지 않습니다. 자살은 우울함의 결과입니다. 정신세계가 맑게 되는 방법은 성령 세례입니다.
다섯 번째로는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입니다. 성령세례를 받으면 다 ‘신유자’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다른 사람들의 병을 고친 사례는 한도 끝도 없습니다. 저는 한 번도 실패가 없습니다. 여러분! 재미있지요. 은사적인 신유는 실패가 많지만 성령 세례를 받으면 다섯 가지 능력이 임하기 때문에 실패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서 지금 세례 요한이 ‘그 분은 나보다 더 강하며’ 중요합니다! 세례 요한이 ‘그 분은 나보다 더 강하며’ ‘나는 그의 신발을 들 수가 없다.’무엇이냐면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앞으로 성령 세례 받을 사람은 ‘더 강한 것’입니다. 신약은 구약보다 더 강한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한 번도 축사가 없었습니다. 다윗이 사울 앞에서 찬양 할 때 악신이 떠나갔다고 했지요. 신약에는 축사가 가득 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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