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마태복음 1장(거듭남, 성령세례, 마귀시험) 2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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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장(거듭남, 성령세례, 마귀시험) 25절
6월 23, 2020
25. 헤롯이 죽자, 오호, 주님의 천사가, “일어나 아기와 그 분의 어머니를 데려가라. 그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영혼을 찾던 자들이 죽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애굽에서 요셉에게 꿈으로 나타납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25절입니다. ‘헤롯이 죽자’ 헤롯은 실제 역사적으로는 죽었죠. 여기 성경에서 죽었다는 것은 우리 안에 원 귀신이 죽었다는 것이 아니고 원 귀신의 힘이 약화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안에 원 귀신이 우리 안에 성령님을 몰아내는데 실패한 면에서 죽었다는 것이고, 이것은 통치권의 이양을 말합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바로 우리를 통치하지 못하십니다. 헤롯이 힘이 약해지지 않는 한 통치가 불가능합니다. 지금 남한 지역은 대한민국이 다 통치합니다. 섬들도 바다도 하늘도 땅도 다 통치합니다. 정부의 통치가 있는 남한, 하지만 북한은 우리가 통치하지 못합니다. 북한은 우리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늘의 백성이 되는 것은 단순한 거듭남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거듭나서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셨다 할지라도 우리를 통치하지 못하는 이유가 헤롯 때문인데 헤롯이 지금 성령님을 몰아내기 위해서 구원을 방해합니다. 영이 어릴 때나 미숙할 때는 우리에 대한 성령님의 통치력이 우리에게 약하게 있습니다. 신학적인 표현으로는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이라 부릅니다. 개념적으로 볼 때 헤롯이 죽었다는 것은 나를 통치해 왔던 통치력이 상실되고 이제부터는 성령님의 통치력이 나를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헤롯이 죽었다는 것은 영적인 성장과 함께 더불어 지금 헤롯의 통치력이 상당히 약화되고 대신 성령님의 통치력이 나를 다스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 주님의 천사가’ 꿈이라는 얘기겠죠. '일어나' 꿈에서 일어났겠죠. '아기와 그분의 어머니를 데려가라' 많이 들어보았던 얘기죠. 베들레헴에 있을 때 똑같이 꿈을 꾸었죠. 거기서도 ‘애굽으로 가라.’ 똑같은 꿈이죠. 지금은 다시 또 애굽 땅인데 새롭게 또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헤롯의 죽음은 영적인 파워게임에서 이긴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땅은 무엇을 말할까요? 상황적으로 육신적으로 현실적으로 이스라엘 땅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땅은 하나님이 통치하는 영역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땅에 있어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천국 가는 길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스라엘 안에 들어가야 하는데 통치권 문제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을 아버지라 믿고 있지만 성령님의 통치가 임하지 않으면 그것은 거짓입니다. 지옥 들어갑니다.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오셨는데 헤롯 때문에 통치가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헤롯의 모든 계획이 묵살되고 성령님을 통한 주님의 통치가 나를 다스리게 되는 상황이 오게 된 것입니다. 주님의 통치권에 있는 사람은 영적으로는 이스라엘에서 사는 것이고, 그 사람에게 실제 구원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통치하지 않는 한 구원은 불가능합니다.
볼링을 칠 때 저 뒤에 있는 핀을 맞춘다고 볼을 굴리지만 다 옆으로 새어버립니다. 핀을 맞출 것이라는 생각은 여러분 각자의 믿음입니다. 그 믿음으로 맞출 수 없습니다. 볼링공이 앞에 있는 화살표를 따라가야만 핀을 맞추는 것처럼, 하나님이 나를 통치해야만 그 사람에 한해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실제적인 주님의 통치가 여러분에게 임하지 않으면 천국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영접기도 했다든가 믿음이라든가 교리라든가 계시나 환상 또는 나름대로 어떤 신령한 예배에 참석하는 자체가 구원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그런 것들은 성령님을 통한 통치를 받도록 도움을 주는 것들이지 종교적인 내용자체가 통치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통치는 실제적으로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실제적으로 나를 통치하셔야 합니다. 그 통치의 법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율법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대한민국 헌법이 있습니다. 헌법에 의해서 국가는 통치됩니다. 우리나라 헌법을 무시하고 지키지 않는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헌법에 저촉을 받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땅이라는 것, 곧 주님의 통치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법, 곧 율법의 저촉을 받는 상황이며 율법으로 다스림을 받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땅이라는 것은 여러분이 이제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들어온 것이며, 실제적으로는 율법의 주장 가운데 있게 됨을 의미합니다. 율법의 주장 가운데 있게 되는 시작이 뭡니까? 헤롯의 죽음입니다. 믿음을 방해하는
첫 번째 원인, 헤롯의 죽음이 아니고서는 우리는 율법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율법대로 살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주는 것이 신앙생활의 시작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영혼을 찾던 자들이’ 누구입니까? 아기의 영혼은 예수님뿐만 아니라 지금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고 구원 받은 모든 사람들을 말하는데, 그 구원을 방해하는 헤롯, 원 귀신, 마귀입니다. 마귀는 자기의 말단이며 쫄개들인 귀신을 통하여서 구원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는 말씀은 이제 실제적인 구원의 시작임을 말하며 구원의 안정권을 말합니다. 물론 이것이 구원의 확증은 아닙니다. 구원의 시작단계입니다.
거듭남은 구원의 원초적인 시작입니다. 지금처럼 이스라엘 땅으로 가는 것은 구원의 안정적인 시작을 말합니다. 마태복음 25절 말씀은 거듭난 사람이 구원을 방해하는 헤롯을 물리치고 드디어 법대로 살아가는 삶의 첫 걸음을 의미하며 그 다음에도 많은 영적인 싸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확정된 것이 아닙니다. 천국을 얻을 때까지 계속 진행하고 진행해서 얻어낼 최종 산물이지, 그냥 홍해를 건넜다고 해서 구원이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시작에 불과합니다.
여러분께서 이제까지 가지고 있던 구원의 확신들을 모두 버리셔야 합니다. 구원은 우리 생명이 멈추는 날까지 마귀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승리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영적인 유산이기 때문입니다. 마치겠습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25절입니다. ‘헤롯이 죽자’ 헤롯은 실제 역사적으로는 죽었죠. 여기 성경에서 죽었다는 것은 우리 안에 원 귀신이 죽었다는 것이 아니고 원 귀신의 힘이 약화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안에 원 귀신이 우리 안에 성령님을 몰아내는데 실패한 면에서 죽었다는 것이고, 이것은 통치권의 이양을 말합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바로 우리를 통치하지 못하십니다. 헤롯이 힘이 약해지지 않는 한 통치가 불가능합니다. 지금 남한 지역은 대한민국이 다 통치합니다. 섬들도 바다도 하늘도 땅도 다 통치합니다. 정부의 통치가 있는 남한, 하지만 북한은 우리가 통치하지 못합니다. 북한은 우리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늘의 백성이 되는 것은 단순한 거듭남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거듭나서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셨다 할지라도 우리를 통치하지 못하는 이유가 헤롯 때문인데 헤롯이 지금 성령님을 몰아내기 위해서 구원을 방해합니다. 영이 어릴 때나 미숙할 때는 우리에 대한 성령님의 통치력이 우리에게 약하게 있습니다. 신학적인 표현으로는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이라 부릅니다. 개념적으로 볼 때 헤롯이 죽었다는 것은 나를 통치해 왔던 통치력이 상실되고 이제부터는 성령님의 통치력이 나를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헤롯이 죽었다는 것은 영적인 성장과 함께 더불어 지금 헤롯의 통치력이 상당히 약화되고 대신 성령님의 통치력이 나를 다스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 주님의 천사가’ 꿈이라는 얘기겠죠. '일어나' 꿈에서 일어났겠죠. '아기와 그분의 어머니를 데려가라' 많이 들어보았던 얘기죠. 베들레헴에 있을 때 똑같이 꿈을 꾸었죠. 거기서도 ‘애굽으로 가라.’ 똑같은 꿈이죠. 지금은 다시 또 애굽 땅인데 새롭게 또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헤롯의 죽음은 영적인 파워게임에서 이긴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땅은 무엇을 말할까요? 상황적으로 육신적으로 현실적으로 이스라엘 땅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땅은 하나님이 통치하는 영역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땅에 있어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천국 가는 길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스라엘 안에 들어가야 하는데 통치권 문제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을 아버지라 믿고 있지만 성령님의 통치가 임하지 않으면 그것은 거짓입니다. 지옥 들어갑니다.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오셨는데 헤롯 때문에 통치가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헤롯의 모든 계획이 묵살되고 성령님을 통한 주님의 통치가 나를 다스리게 되는 상황이 오게 된 것입니다. 주님의 통치권에 있는 사람은 영적으로는 이스라엘에서 사는 것이고, 그 사람에게 실제 구원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통치하지 않는 한 구원은 불가능합니다.
볼링을 칠 때 저 뒤에 있는 핀을 맞춘다고 볼을 굴리지만 다 옆으로 새어버립니다. 핀을 맞출 것이라는 생각은 여러분 각자의 믿음입니다. 그 믿음으로 맞출 수 없습니다. 볼링공이 앞에 있는 화살표를 따라가야만 핀을 맞추는 것처럼, 하나님이 나를 통치해야만 그 사람에 한해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실제적인 주님의 통치가 여러분에게 임하지 않으면 천국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영접기도 했다든가 믿음이라든가 교리라든가 계시나 환상 또는 나름대로 어떤 신령한 예배에 참석하는 자체가 구원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그런 것들은 성령님을 통한 통치를 받도록 도움을 주는 것들이지 종교적인 내용자체가 통치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통치는 실제적으로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실제적으로 나를 통치하셔야 합니다. 그 통치의 법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율법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대한민국 헌법이 있습니다. 헌법에 의해서 국가는 통치됩니다. 우리나라 헌법을 무시하고 지키지 않는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헌법에 저촉을 받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땅이라는 것, 곧 주님의 통치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법, 곧 율법의 저촉을 받는 상황이며 율법으로 다스림을 받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땅이라는 것은 여러분이 이제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들어온 것이며, 실제적으로는 율법의 주장 가운데 있게 됨을 의미합니다. 율법의 주장 가운데 있게 되는 시작이 뭡니까? 헤롯의 죽음입니다. 믿음을 방해하는
첫 번째 원인, 헤롯의 죽음이 아니고서는 우리는 율법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율법대로 살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주는 것이 신앙생활의 시작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영혼을 찾던 자들이’ 누구입니까? 아기의 영혼은 예수님뿐만 아니라 지금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고 구원 받은 모든 사람들을 말하는데, 그 구원을 방해하는 헤롯, 원 귀신, 마귀입니다. 마귀는 자기의 말단이며 쫄개들인 귀신을 통하여서 구원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는 말씀은 이제 실제적인 구원의 시작임을 말하며 구원의 안정권을 말합니다. 물론 이것이 구원의 확증은 아닙니다. 구원의 시작단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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