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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음교회 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마태복음 1장(거듭남, 성령세례, 마귀시험) 60절

60. 그러자 군중들을 보시고, 그 분이 산으로 올라가셨으며, 그 분이 앉으시자 그 분의 제자들이 그 분께 나아왔습니다.

마태복음 60절입니다. ‘그러자’ 이 그러자는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유대와 요단 동편 예루살렘 전까지 가나안, 약속의 땅에서 몰려온, ‘군중들을 보시고’ 사람들이 지금 몰려오는 것입니다. 거리가 멀지요. 갈릴리에서부터 유대까지는 길게는 200km, 짧게는 100km, 데가볼리는 한 50km 되지요. 그러니까 짧게는 10km부터 멀리는 200km 전 지역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소문 듣고 몰려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장관이지 않습니까? 멋있습니다. 다 도보로 오는 것입니다.


‘보시고 그 분이 산으로 올라가셨으며’ 그 산이 어디일까요? 갈릴리 호수는 주변에 벳세다, 가버나움, 구릉들이 좀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런 높은 산이 없습니다. 그냥 언덕, 언덕이 적당합니다. 이런 숲이 아니라 잔디가 깔린 초지가 있는 언덕입니다.

‘그 분이 앉으시자 그 분의 제자들이 그 분께 나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언덕 위에 앉으시고 제자들이 그 분 앞에 나오고 군중이 뒤에서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 영화에도 보면 예수님께 나아오는 장면들이 있지 않습니까? 지금이야 마이크가 있고 앰프가 있어서 소리가 퍼지지만 그 당시에는 말을 전 할 때, 언덕에 올라가야지만, 말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한 200m까지도 잘 들립니다.

로마경기장 콜로세움 같은 곳도, 소리가 아주 잘 울립니다. 그리고 공명이 되어서 작은 소리도 꽤 잘 들립니다. 군중들이 몰려 들면서, 예수님이 언덕 위에 앉으시고, 제자들이 가까이 나아오는 장면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장면입니다. 그리고 이제 산상수훈이 시작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모세가 산에 올라가죠. 비슷하지 않습니까? 산에 올라가서 40일 금식 한 다음에, 십계명을 가지고 옵니다. 모세가 산에 올라갔을 때, 하나님이 모세를 보고 ‘너 내가 누군지 아느냐?’그래서 모세가 ‘하나님! 내가 하나님을 체험하고 싶어요!’하고, ‘입신’을 하고, ‘진동’이 오는 현상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오해하는데, 이렇게 오해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해요. 그래서 ‘하나님을 만난다’는 개념을, 인간의 욕구, 욕망의 해결이나 신비한 현상으로 보기를 원합니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모세에게 하나님이 주신 것은, 천사를 통해서, 율법을 주시고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그것을 받고 내려온 모세에게, 사람들은 실망을 합니다. 왜냐하면 모세가 홍해 가르고서, 광야를 만나고 40일 동안 산에 가서 하나님을 만나고 무엇을 했나? 궁금했지요. 그런데 위에 가서 내려온, 모세에게는 양쪽에 돌판 밖에 없었던 거에요. 하나님을 만났다고 하는데, 그 전에 이집트에서는 열 가지 재앙으로 하나님을 보여 주셨는데, 홍해 건너서 기껏 가지고 온 것이, 돌판 밖에는 없는 거에요. 얼마나 실망되겠어요.

물론 그 때, ‘웅성 웅성 하며 금송아지를 섬겼기 때문에’, 모세가 열 받아서 돌판을 깨버리지만, 여러분이 하나님을 이해하실 때, 하나님을 잘 못 이해해서, 마치 그런 현상이나, 감각적인 치유나, 문제 해결이라든가, 돈이 생기는 횡재, 이런 쪽으로 자꾸 만나고 싶어 합니다. 여러분들은, 그래서 그것이 이루어지면 하나님이고, 아니면 아닌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미혹되는 이유는, 내가 기대하는 바, 내가 기대하는 바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 기대하는 바가 아니면 실망하는 것입니다.

기껏해야, ‘저 두 돌판이야!’ ‘모세가 40일 동안에 뭐했냐?’그럽니다. 여러분은, ‘가자 마자, 받을 수도 있는데 40일 동안을 무엇을 했느냐?’이럽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의 양심을 콕콕 쑤시는 십계명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하나님을 만나면, 뭔가 짜릿하고 경이로움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아니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십계명을 받아도 긴가 민가 합니다. ‘홍해 건넜는데! 뭐! 우리 구원 얻었는데! 뭐! 거듭났는데! 뭐!’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홍해를 건널 때, 다 구원의 확신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집트에 열 재앙을 통과시키고, 어린 양의 보혈로 문설주에 바르고, 그리고서 홍해를 건넜는데, 구원이 아닙니까?

여러분! 구원이 아닌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을 다 지났는데, 모세가 죽습니다. 느보산에서 가나안 땅이 쭈욱 보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상징 하느냐 하면, 십계명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길인데, 그것이 기본적인 성결을 주는 것입니다. 이 기본적인 성결을 통해서, 요단 강만 건너면 가나안 천국입니다.

요단 강부터 누가 나옵니까? 모세는 요단강 못 건넙니다. 여호수아가 드디어 뜹니다. 예수님의 히브리말은 ‘예슈아’이고, 헬라어로 ‘예수’입니다. 자! 여호수아는 ‘예수님’의 예표입니다. 십계명은 광야를 건너는데 필요합니다. 이것이 성결입니다. 그래서 ‘십계명을 어기면 지옥입니다!’ 십계명과 율법을 다 모으면 모세가 이미지화됩니다. 구약은 전부 다 십계명을 중심으로 조명됩니다. 모세오경은 물론 역사서나, 시가서나, 선지서나 십계명을 중심으로 다 써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군중들이 이렇게 많이 모인 것은 처음입니다. 상황이 비슷합니다. 예수님이 이미 산에 올라 가셨습니다. 여러분! 구약에서 시내산에 모세가 올라가죠. 언덕 위에 예수님이 앉으십니다. 이때, 군중들이 왔을 때, 1500년 전에 모세가 산에 있을 때에 아무 현상이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지금도 예수님이 ‘너희들 하나님 만나러 왔지?’ ‘잘됐다!’하고, 여러분이 고대하는 그런 현상을 주시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이런 ‘신사도’나, ‘성령운동’들이 다 미혹임을 아셔야 합니다. 이유는? 성령님은 구약 때는 십계명을 주셨고, 신약때는 ‘산상수훈’을 주셨습니다. 산상수훈은 기본성결에 해당하는 십계명+완전한 성결입니다. “십계명을 어기면 지옥 갑니다!” 십계명을 준수하는 상태에서, 온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성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제자로서의 완전함에 이르는 길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산상 수훈’ 속에는 기본적인 십계명을 깔고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산상 수훈에서 ‘옛사람들에게 말했거니와’라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십계명입니다. 산상수훈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성부 하나님의 법이 십계명이라고 한다면, 산상수훈은 예수님의 법인 것입니다. 자!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면서 동시에 예수님의 영입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을 지키도록 가르쳐 주시고, 십계명대로 살게 해 주시고, 동시에 산상 수훈을 주시며 산상수훈을 지키도록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성령님을 단순한 ‘표적’이나, ‘기사’나, ‘현상’이나 ‘황홀경’, ‘입신’쪽으로 몰아가지 마십시오! 저질입니다. 한 번 반짝해서 쇼부를 보려고 합니다. 여러분! 그런 것 없습니다. 로마는 하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신앙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신앙은 다 차근차근 쌓이는 것입니다.

모세는 느보산에서 요단강을 바라보고 죽습니다. 여기까지 모세의 역할입니다. 그래서 이 모세는 몽학선생이라고 부르지요. 모세가 있는 것은 몽학 선생으로써 율법을 준수하게 하는 것입니다. ‘몽학’ 선생은, ‘유치원 교사’입니다. 정식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훈련하는 곳’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께서 십계명을 통해서 자꾸 훈련받는 것입니다. 훈련 받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산 위에 올라가 앉으시고, 제자들이 가까이 그 분께 나아갔습니다. 그럼 제자들은 모두 구원 받습니까? 아닙니다. 여러분! 착각하지 마십시오. 제자들 가운데도 구원은 얼마 못 받았습니다. 요한 복음에서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때 많은 제자들이 그 분을 떠나갔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기분이 상했어요. 그 전에는 제자들이 많이 있었는데, 다 떠나간 것입니다. 이제 베드로가 ‘예수님! 우리 밖에 안 남았어요’.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라는 설교를 하니까, 제자들이 다 떠나고, ‘다시는 따르지 아니 하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우리 교세가 약해졌네’하고, 걱정되었나 봅니다.

여러분! 표적이나, 기사는 모이게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뭡니까? 그것이 구원이 아니기 때문에 ‘진리의 말씀’을 가르침으로 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표적에 구원이 있지 않습니다. 표적은 모이게 하는 방법입니다. 옛날에는 지금처럼 광고를 하지 못하잖아요. 인터넷도 없잖아요. 그러니까 ‘표적’을 광고로 쓴 것입니다. 그 다음에 모이면 뭐합니까? 모세 때 똑같이, 예수님께서는 ‘산상 수훈’을 통해서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말씀의 역사’입니다. 매우 중요합니다!!! 기억 하십시오! 말씀이 가면 무엇이 일어납니까? 회개가 일어납니다. 애통이 일어납니다. 죄에서 돌아서고 지은 죄를 하나님 앞에 용서받고, 이것이 성령의 ‘주 역사’입니다. 죠나단에드워드, 챨스피니, 요한웨슬레, 많은 성령의 사람들이 ‘성결’을 외친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되는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여러분! 성령님은 거룩한 영(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인기 최고의 정점에서 ‘산상수훈’을 왜 하냐구요? 예수님께서는 이 많은 군중들이 천국가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산상수훈을 지키고 행해야 합니다. 제 말이 아니라, 예수님 말씀입니다. 저는 오직 예수님의 말씀을 증거합니다. 산상수훈을 아는 것이나 듣는 것이 구원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직 ‘행하는 자’에게 구원이 주어집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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