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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음교회 박경호 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마태복음 2장 114절 강해-산상수훈-내 안에 박힌 들보를 빼내지 않으면 모든 가르침들은 다 미혹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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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마태복음 강해글 114. 왜 너는 네 형제의 눈에 있는 티는 바라보지만 네 눈에 있는 들보는 생각지 못하느냐? 또는 어떻게 네 형제에게 '네 눈에서 티를 빼내도록 허락하라' 라고 말하겠느냐? 오호, 네 눈에 들보,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라. 그 땐 네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내도록 밝히볼 것이다. 마태복음 114절입니다. '왜 너는' 앞에 왜가 있습니다. '왜 너는 네 형제의 눈에 있는 티는 바라보지만' 눈에 있는 티, 이것은 '작은 죄'를 상징합니다. '눈에 티'니까 얼마나 작겠습니까? '네 눈에 있는 들보'는, '들보'는 무엇입니까? 이건 '큰 목재'입니다. 가장 큰 나무로서 집 지을 때 기둥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그것을 '대들보'라고 합니다. 이런 말들 하지요. '얘는 집안에 대들보야!' 들보는 '큰 죄'를 상징합니다. 티는 감지하기 어려운 '작은 죄'를 말하고, 들보는 '큰 죄'를 상징합니다. 내 안에는 눈에 들보가 있습니다. 내가 가리키는 상태는 '티'가 있습니다. '또는 어떻게 네 형제에게 네 눈에서 티를 빼도록 허락하라!' 이런 것입니다. '죄 짓지마! 왜 죄를 짓고 있어!' 하고 죄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오호! 네 눈에 들보!' 오호는 감탄사로 쓰인 것입니다. 그 다음 말이 중요합니다. '위선자야!' 성경에서 위선자란 지옥에 들어가면서 천국에 들어간다고 확신 할 뿐만 아니라, 남들을 가르치는 종교지도자들을 쓸 때 하는 표현입니다. 위선자들이 엄청 많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대부분이 지옥에 들어갔습니다. 지옥 가는 사람들은 죄를 한 개라도 숨길 수가 없고, 그 죄목에 따라서 모든 형벌이 주어집니다.

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마태복음 2장 113절 강해-산상수훈-우리의 모든 메세지는 오직 성령을 통해서 나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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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음교회 박경호 목사의 마태복음  강해글 113. 판단하지 말라, 판단받지 않기 위함이다. 판단하는 판단으로 너희가 판단받을 것이며 측량하는 측량으로 너희에게 측량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113절 말씀입니다. 마태복음이 우리 성경으로 5장6장7장으로 되어 있는데, 7장의 스타트에 해당되며, 가르치는 사람들에 대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오늘부터의 말씀을 들으실 때는 가르치려고 하는 사람에 대한 말씀으로 이해하면 쉽습니다. '판단하지 말라' 첫 마디가 '판단하지 말라'입니다. 여기서 판단은 육적인 판단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네가 사람을 가르치려 하느냐? 그러면 '육적인 것에서 벗어나라!' 이 말입니다. 우리의 사역은 다 '영적인 판단'입니다. 구약은 율법으로 시작하였죠. 그리고 선지서로 이어지죠. 이 선지서는 '영적인 판단'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너 잘못했어!' 이것이 '선지서'입니다. '너 잘못했어!' '하나님께서 이렇게 생각하셔!' 영적인 판단을 합니다. 그래서 '영적인 판단'을 성경에서는 '예언'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여기서 '육적인 판단'이란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가 육적으로 하는 견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가르치려 하느냐? '너! 개인 견해 이야기 하지 마!' 이런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은 다 개인 견해로 가득 차 있습니다. 지도자에 대해서 판단합니다. "아~ 대통령 맘에 안 들어!" 또는 세계적인 지도자 미국 대통령에 대해서 비난합니다. "그 대통령 맘에 안 들어~" 또 가정에서 판단합니다. "너희 아버지 맘에 안 들지?" 이렇게 맘에 들고 안 든다는 그런 개인 견해들, 육적인 판단입니다. 육의 판단들은 무용지물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판단은 아주 정확합니다

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 마태복음 2장 112절 강해-산상수훈-내일을 염려한다는 얘기는 오늘 충실하지 않다는 반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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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음교회 박경호 목사의 헬라어번역마태복음 강해글 112. 그런즉 내일로 염려하지 말 것이다. 내일은 당일 염려할 것이기 때문이다.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충분하다. 마태복음 112절 말씀입니다. '그런즉' 오늘 말씀으로 규례뿐 아니라 돈의 문제가 마쳐지는 날입니다. 내일부터는 '가르치는 자의 삶의 내용'에 관한 말씀이고, 오늘까지는 일반적인 그리고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말씀을 주셨고, '모든 것을 더해 주리라' 하고, 그 다음 '그런즉'입니다. 여기서의 '그런즉'은 염려에 대한 마무리 내지 후렴구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제 말씀으로 끝을 내야 하는데 주님께서 '후렴구'를 주신 것은 "그래도 염려를 못 잡느냐?"라는 말씀입니다. 그 '염려'에서 그런즉입니다. 그런즉 '내일로 염려하지 말 것이다' 우리의 염려는 어떤 것입니까? '내일을' 염려하지요! '내일로', '내일을', '내일을 향하여'입니다. 염려는 '내일'이나 '일주일 뒤', '한달 뒤' '1년 뒤', 아주 '나중 일'을 염려하지요! 그래서 염려의 가는 방향은 사실은, 대부분 내일입니다. 오늘 염려할 것 있습니까? 많지 않습니다. 오늘 염려에 대해서는 거의 없습니다. 오늘 염려의 양보다는 내일의 염려가 훨씬 많습니다. 더 나아가서 과연 내일 그 염려된 일이 일어날까요? 우리가 고민하는, 염려의 97%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염려는 당기는 생각인데, 결핍을 당겨서 하는 것인데, 이 당기는 것이 내일이나, 일주일 뒤나, 한 달 뒤나, 1년 뒤, 또는 몇 년 뒤의 것을 당기는데, 실제로 염려하는 것이 발생할 확률이 3%가 안됩니다. 사람들은 염려할

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 마태복음 2장 111절 강해-산상수훈-어려울 때 간구하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이 내게 뭘 원하시는가 찾아야 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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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음교회 박경호 목사의 마태복음 강해 111. 그러나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로 던져지는 들의 풀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신다면, 너희에게 더욱 많이 않겠느냐? 믿음적은자들아! 그런즉 '무엇을 먹을까?' 또는 '무엇을 마실까?' 또는 '무엇을 입을까?'라고 말하며 염려하지 말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이방인들이 간구하기 때문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먼저 하나님의 왕국과 그 분의 의를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들이 너희에게 더하여질 것이다. 마태복음 111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지금 '새들도 먹이시고 백합도 입히시는 하나님' 드디어 더 진보됩니다. 그러나 '오늘 있다가 아궁이로 던져지는' 그 다음은 무엇입니까? '들의 풀' 잡초, 잡초입니다. '을 입히시거늘' 즉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시며'의 준말이죠! 그러니까 새들도 먹이시고, 백합을 입히시는 것은 물론 '들의 풀' 곧 '잡초'들을 먹이시고 입히신다면, '너희에게'는 우리를 말하지요. '더욱 많이 않겠느냐!' 쉽게 말하면 잡초랑 비교해 볼 때, '너희가 얼마나 귀하냐!'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지금 온 우주를 먹이고 입히시는 하나님'이란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가운데 '너희가 염려한다면', 그 다음 표현입니다. '믿음 적은 자들아!' 염려하는 사람에게, '지옥가는 자들아!' 그것이 아닙니다. '화 있는 자들아!'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이 있기는 있는데, 적다는 얘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염려하는 말입니다. '믿음 적은 자들아!' 염려로 지옥가지는 않습니다. 염려는'작은 죄'입니다. 염려를 하면 예수님께서 '믿음이

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 헬라어번역성경 마태복음 2장 110절 강해-산상수훈-우리는 모든 염려를 비우고 하나님이 나를 기르시고 입히신다는 이 약속으로 우리 마음을 채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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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마태복음 강해 110. 영혼이 음식보다, 몸이 옷보다 더중하지 않느냐? 하늘의 새들을 쳐다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로 모으지도 않는데,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그들을 기르신다. 너희는 그들보다 더욱 귀하지 않느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하여 그의 키에 한 자를 더할 수 있겠느냐? 옷에 대하여 왜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지 생각해보아라. 수고도 않고 실짜지도 않는다. 그러나 너희에게 말하는데, 모든 영광 안에 솔로몬도 이들 중 하나 같이도 입지 못했다. 마태복음 110절 말씀입니다.  ‘영혼이 음식보다’  영혼은 ‘소울’ ‘목숨’인데, ‘목숨이 음식보다’  그렇죠! 먹고 입으로 들어가는 이 음식보다 무엇이 중요합니까? 음식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생명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음식 때문에 걱정하면 그 생명이 단축됩니다. 굉장히 아이러니 합니다. 우리는 먹고 사는 것 때문에 염려 하는데, 먹고 사는 것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면 할수록 스트레스가 되어서 심장이 약화가 됩니다. 우리의 모든 염려는 스트레스가 되고 스트레스는 혈관을 수축하며 스트레스는 심장을 조여 옵니다. 심장에는 관상 동맥이 있는데 그 관상동맥이 수축됩니다. 그러면 심장에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해서 심장을 뛰게 하는데 스트레스 때문에 관상동맥이 좁아지고 결국은 심장이 약화되어서 죽는 것입니다. 생명을 잘 연장시키려고 먹고 사는 것인데, 실제 목적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영혼이 음식보다 더 중하지 않느냐?’라고 예수님께서 반론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먹고 마시는 필수적인 문제 때문에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많은 수명 단축은 염세적이거나, 비관적인 것에서 비롯됩니다.  여러분! 낙천적이면 오래 삽니다. 낙천적이면 스트레스가 없기 때문에 혈관 수축이 안 일어납니다. 교감신경은 긴장하지요. 그리고 몸이 굳어 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스트레스입니다. 반대로 교감 옆에 부교감이 있습니다. 그 부교감은 아주 ‘룰루랄라!’ 휘파람 불고 다닙니다. 부교감 만

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마태복음 2장 109절 강해-산상수훈-염려한다는 것은 지금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었다는 것이며, 염려는 성결의 회개를 하면 끊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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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마태복음 강해글 109. 이러므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너희 영혼을 염려하지 말라. ‘무엇을 입을까?’ 너희 몸도 염려하지 말라. 마태복음 109절 말씀입니다. ‘이러므로’는 ‘하나님과 돈을 섬길 수 없다’는 말씀에 이어지는 ‘이러므로’죠‘. 너희에게 말하는데’ 무엇입니까?  강조사항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센 것! ‘진실로’ 약간 센 것! ‘너희에게 말하는데’ 강조사항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먹는 것, ‘빵’ ‘고기’ ‘음식’이지요. 마시는 것, ‘물’이지요. 이스라엘은 중동지역이기에 물이 귀합니다. 우리는 ‘뭐 마실까?’가 없지요. 우리 나라는 계곡마다 물이 있지 않습니까? 이스라엘은 물이 없습니다.  과거 이스라엘은 원래 물이 많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2백만명이 가나안에 도착했을 때, 이스라엘은 산림이 굉장히 울창한 나라였습니다. 얼마나 울창했으면 포도송이 하나를 둘이 메고 갈 정도로 풍요로운 땅이었습니다. 다윗때도 마찬가지로 풍요의 땅입니다. 사자와 곰이 싸웁니다.  여러분! 울창해야 사자와 곰이 있습니다. 다윗이 양을 지키면서 사자와 곰을 막아냈고 다윗 때만 하더라도 이스라엘은 상당히 울창했습니다. 점점 이스라엘이 사막화가 진행 되고, 예수님 당시에는 물이 없는 황량한 땅이 된 것입니다. BC1500년 전이 모세 때인데 그 모세 때의 울창함이 1500년이 지나면서 아주 황폐하게 된 것립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모든 땅들은 사람의 영이 지배합니다. 지금 중동도 황폐하고 북아프리카도 황폐하지요. 그리고 중국도 황폐해 갑니다. 또 중미도 거의 사막입니다. 지금 전 세계가 사막화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 사막화는 우리 영에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당장에 우리 남한과 북한을 보더라도 북한은 황량하지 않습니까? 물론 북한이 나무를 베어서 황폐해졌고 그 결과 북한은 비가 덜 옵니다. 남한은 비가 자주 옵니다. 같은 대한민국 가운데서도

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마태복음 2장 108절 강해-산상수훈-대부분의 경우에는 하나님의 뜻은 우리에게 험난함과 고통을 예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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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마태복음 강해글 108. 너희는 하나님과 돈을 섬길 수 없다 마태복음 108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너희는 누굴까요? 너희는 하나님의 자녀이지요. ‘돈을’ 보물이라고 표현한 돈이지요. ‘섬길 수 없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면서 돈을 섬기는 두 가지를 다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불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돈을 섬기면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있을까요? 전 여기에 대해서 굉장히 회의적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이제까지 많은 사람을 기도해 주고 인도해 본 결과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합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실제로는 돈을 섬겼습니다. 저도 어려운 적이 있었는데, 작은 지하교회 기도실 가서 기도를 하는데 “ 하나님 돈이 없얻요!” 하니까 하나님께서 “넌 왜 나에게 우상을 구하느냐?”하셨습니다. 저는 그 때 너무 놀랐습니다. 저는 돈을 구하는 것이 우상인 줄 몰랐습니다. “너 뿐 아니라, 내 자녀들이 우상을 구하기 때문에, 내가 응답할 수 럾다!”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필요를 구하고 돈을 구하지만 이것은 우상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런 것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것이 아니란 얘기입니다. 하나님은 진정된 예배를 받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만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자녀들이 하나님만 섬기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가는 것이 정말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어떤 청년에게 손을 얹었는데, “네가 나를 따른다면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실 때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면, 돈이 들어오는 것보다, 오히려 모든 것을 잃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결국 그 청년은 아직도 순종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따르면 잃게 되어 있습니다. 얻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 우리가 볼 때, ‘나는 하나님을 따른다’고

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마태복음 2장 107절 강해-산상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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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 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마태복음 2장 107절(산상수훈) 107. 그런즉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라면, 그 어둠은 어떠하겠느냐?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는데, 한 명을 미워하고 또다른 한 명을 사랑할 것이다. 또는 한 명을 중히여기고 또다른 한 명을 경히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107절 말씀입니다.  '그런즉'은 106절 말씀에 이어지는 것이죠. '그런즉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라면' 이제는 안에 있는 빛이 어두움입니다. 눈이 악해져서 영이 눈이 감겨져서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고, 빛을 볼 수 없는 상태, 드디어 안에 있는 빛마저 어두움에 있는 상태, '그 어둠은 어떠하겠느냐'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하나님 외에 보물 때문이며, 하나님 이외에 내 소원 때문이며, 하나님 이외에 추구하는 것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성공이 아주 위험합니다. 여러분들은 성공을 좋아할지 모르지만, 성공이 나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미혹되었는가 하면, 성공을 하면 하나님을 향하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성공을 좋아하지 마십시오! 부흥을 꿈꾸지 마십시오! 이런 것입니다. 집에다가 천만원짜리 전등을 해놓고, 오천만원 짜리 차를 사고, 옷을 입었는데, 태양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여러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태양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 때, 얼마나 비참함을 느끼겠습니까? 우리가 성공하는 것은 엄밀한 면에서 좋은 차나, 좋은 옷이나, 좋은 문화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다 소용없습니다. 태양만 떠오르면 초막이나 궁궐이나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태양만 떠오른다면 행복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햇빛만 오면 항상 행복합니다. 여러분! 중세 때,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버렸습니다. 소유를 버립니다. 예수님 따라갈 때, 예수님이 늘 말씀하시지요! "소유를 나눠주어라!" 왜? 인줄 아십니까? 내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