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마태복음 1장 ( 거듭남, 성령세례, 마귀시험) 2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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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장 (거듭남, 성령세례, 마귀시험) 27절
27. 그는 아켈라오가 그의 아버지 헤롯 대신 유대에 왕 되었다고 듣고, 거기 가는 것을 두려워하였으며, 꿈으로 지시받고 갈릴리 지방으로 물러갔으며, 나사렛이라 하는 성으로 와서 살았음으로, 그 분이 나사렛인이라 불려질 것이라고 선지자들을 통해 선포된 것이 성취되었습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27절입니다. ‘그는’ 요셉입니다. 요셉은 ‘아켈라오가’ 아켈라오는 헤롯의 아들입니다. 헤롯은 아들이 셋이 있는데, 그 중 헤롯 아켈라오는 이스라엘 남쪽을 다스립니다. 빌라도가 다스리는 지역이 원래는 아켈라오가 다스리는 지역입니다. 아켈라오는 빨리 죽습니다. 6년 뒤에 폭동에 진압 당하고 죽게 되는데 아켈라오가 폭정을 하기 때문에 민중에게 너무 지지를 못 받아 로마에서 다시 총독을 파견한 사람이 빌라도입니다. 빌라도가 다스리는 지역이 바로 아켈라오가 다스리는 유대지역입니다.
갈릴리 지역은 여러분이 알고 있는 헤롯 안디바,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헤롯입니다. 그 안디바가 갈릴리 지역을 다스립니다. 그리고 북쪽은 가이사랴 빌립보를 수도로 정한 로마에 충성을 다한 빌립, 헤롯 빌립이 위쪽을 다스리게 되는데 이렇게 헤롯이 죽은 다음에 남쪽을 다스리는 헤롯 아켈라오, 갈릴리를 다스리는 헤롯 안디바, 그리고 북쪽을 다스리는 헤롯 빌립, 이 세 아들이 분봉왕이 되어서 나누어 다스리게 됩니다.
‘아켈라오가 그의 아버지 헤롯 대신 유대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약간 애매한 부분이 뭐냐? 요셉은 원래 갈릴리 사람입니다. 희한하게 지금 아켈라오가 갈릴리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제 생각엔 어쩌면 요셉이 유대로 갈 마음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요셉이 유대로 갈 마음이 없었다면 이 내용이 아켈라오가 아니고 '안디바가 왕 되었다고 듣고'라고 되어야 합니다. 분명히 요셉의 맘속에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했을 때 유대로 갈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왕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에 가는 것을 두려워했으며 유대로 갈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였으며 꿈으로 지시를 받아’ 어디로 지시 받느냐? ‘갈릴리 지방으로’입니다. 지금 요셉이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는 말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또 꿈으로 꾸었겠죠. '어디 가야 합니까?' 했을 때 꿈에 갈릴리로 가라고 지시 받았을 것입니다.
‘갈릴리 지방으로 물러갔으며 나사렛이라는 성으로 가서 살았으며’ 갈릴리 지방 가운데 나사렛은 아주 작은 촌 동네입니다. 나중에 예수님이 나사렛 사람으로 알려지죠. 사람들은 예수님의 출생지를 아무도 모릅니다. 이 나사렛으로 알려지는 자체가 사실은 인간적으로는 이 지역 자체 이름만 들어도 천시 받는 곳입니다.
지금 나사렛에서 12세 이상 살게 되었는데 이 나사렛으로 가서 살게 된 것은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의미가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요셉은 유대에 가고 싶었습니다. 유대 땅은 종교적인 곳인데, 쉽게 말하면 좋은 곳이었습니다. 반면 갈릴리는 지금 유대 사람들이 볼 때는 이방 사람과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이사야에 기록되었는데 ‘이방의 갈릴리야’ 그래서 갈릴리 지역이 유대 사람들이 볼 때 이방지역과 다름없는 곳입니다. 그 사이에 있는 사마리아는 완전한 이방으로 취급 받았죠. 유대가 남쪽입니다. 가운데가 사마리아입니다. 그리고 그 위가 갈릴리입니다. 갈릴리 위가 빌립보 지역입니다.
나사렛이 왜 중요할까요? 나사렛은 멸시와 천대를 받는 대명사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보실 때 나온 모든 내용들과 한 절, 한 절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땅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어떻게 만날까요?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만나는 과정이라는 것이 화려하지 않다는 것은 여러분은 아셔야 합니다. 이 나사렛, 그 당시 정치인들에게서나 종교지도자들에게서나 모두에게서 가장 멸시 받는 지역입니다.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느냐? 쉽게 말하면 아주 촌 동네라는 뜻입니다. 과거나 현재나 사람들이 멸시하고 천대하는 지역이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모셔 들이셨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당연히 멸시와 천대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정상입니다. 유대는 종교적인 곳이며 예루살렘은 종교의 최고봉이죠. 우리는 생각하기를 ‘이제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가 되셨으니 우리를 가장 종교적인 곳으로 보낼거야!’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으면 남들에게 인정받는 과정이 기다릴 것이라는 믿음을 갖습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으셔서 자기 아들 예수님을 나사렛으로 보냈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있으시지만 여러분이 하나님과 만남을 갖게 하기 위해서 여러분을 멸시와 천대를 받게 하십니다. 그것이 당연합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으셔서 예수님의 출생과 성장과정을 가장 미천한 곳으로 던지셨겠습니까?
고린도서에 ‘너희 가운데 지혜로운 자가 없고 부한 자도 없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삶을 말합니다. 우리 예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우리가 믿음을 결정하면 우리 삶에 화려함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을 꿈꾸는 것, 자체가 미혹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살면서 멸시와 천대를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허망한 꿈을 꾸지 마십시오. 인생에서 허망한 비전을 가지지 마십시오. 여러분 멸시를 받아야 되며 천대를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마땅합니다. 왜 축복에 미혹이 됩니까? 창세기 6장에서 하늘나라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땅에서 특별히 잘난 부분들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옥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 각 분야의 전문가가 됩니다.
‘그 분이 나사렛인이라고 불려질 것이라고 선지자들을 통해’ 한 명의 선지자가 아닙니다. 선지자들을 통해 선포된 것이 성취되었습니다. 선지자들은 그 당시 유대에서도 배척을 받았습니다. 구원을 받으면 배척 받습니다. '이 나사렛은 무엇을 의미 하느냐?' 이것은 배척 받는 삶을 의미합니다. 왜냐고요? 헤롯 때문입니다. 지금 남쪽 유다는 아켈라오가 다스리고 갈릴리 지역은 안디바가 다스리고 북쪽은 빌립이 다스립니다. 어디든 헤롯이 주장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다닌다 할지라도 항상 천국에 가는 사람들은 배척을 받습니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12세 때 유월절을 보내고 돌아오는 과정에서 율법사들이 예수님에 대해 놀라워합니다. 말씀에 너무나 정통합니다. 멸시와 천대를 받는 곳에서 말씀을 공부한 것입니다. 말씀을 공부하지 않는다면 그는 천국 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말씀의 정도가 율법사와 대등했습니다. 말씀을 연구하지 않고 단순하게 '나는 나사렛 사람이야, 난 천대받으며 살아'라고만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나사렛이란 말은 영적으로 ‘거룩’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배우지도 않으면서 '나사렛은 천대받는 장소야! 난 천대받고 살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상이 아닙니다. 지옥 갑니다! 나사렛은 말씀을 연구한 장소이고 거룩하게 된 장소입니다. 여러분! 거룩을 목적으로 천대받는 것이지, 천대 자체가 목적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나사렛 원어가 ‘거룩’입니다. 거룩하게 되는 과정에서 멸시와 천대와 핍박과 배척이 필요한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나사렛에 살았습니까? 말씀을 연구하기 위해서입니다. 멸시 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변화됩니다. 우리도 말씀을 공부해야 합니다. 계시에 미혹되지 마십시오! 교리에 미혹되지 마십시오! 은사에, 현상이나 표적에 미혹되지 마십시오! 천국은 말씀을 공부해야 가는 곳입니다. 여러분 거룩합니까? 여러분 마음이 깨끗해졌습니까? 그러면 여러분 마음속에 평화가 넘쳐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마음에 평화가 넘치지 않는 것은 아직 거룩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거룩은 단계가 있습니다. 1차 단계는 말씀을 통해 회개가 일어나는 단계입니다. 환경이 멸시와 천대를 받는 환경일지라도 행복해지는 이유는 거룩 때문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고 누리고 얻어도 행복은 오지 않습니다. 거룩 없는 행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조금 지나면 애통의 기도로 거룩해지는 단계입니다. 이것이 2단계입니다. 애통이 나를 막 몰아갑니다. 그러면 더 행복해집니다. 그리고 더 지나서 드디어 하나님과 직접적인 계시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과 친구가 됩니다. 하나님과 대화합니다. 3단계입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지요. 거룩의 3단계는 대화하는 단계입니다.
이 나사렛이라 불려진다는 것은 1차 거룩에 해당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멸시와 천대를 받으면서 말씀을 연구하셨을 것입니다. 율법사와 대등할 정도로 말할 정도면 말씀을 연구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드디어 나사렛 예수가 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나사렛 사람이 되어 말씀과 회개의 사람이 된다면, 이 말씀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마치겠습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27절입니다. ‘그는’ 요셉입니다. 요셉은 ‘아켈라오가’ 아켈라오는 헤롯의 아들입니다. 헤롯은 아들이 셋이 있는데, 그 중 헤롯 아켈라오는 이스라엘 남쪽을 다스립니다. 빌라도가 다스리는 지역이 원래는 아켈라오가 다스리는 지역입니다. 아켈라오는 빨리 죽습니다. 6년 뒤에 폭동에 진압 당하고 죽게 되는데 아켈라오가 폭정을 하기 때문에 민중에게 너무 지지를 못 받아 로마에서 다시 총독을 파견한 사람이 빌라도입니다. 빌라도가 다스리는 지역이 바로 아켈라오가 다스리는 유대지역입니다.
갈릴리 지역은 여러분이 알고 있는 헤롯 안디바,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헤롯입니다. 그 안디바가 갈릴리 지역을 다스립니다. 그리고 북쪽은 가이사랴 빌립보를 수도로 정한 로마에 충성을 다한 빌립, 헤롯 빌립이 위쪽을 다스리게 되는데 이렇게 헤롯이 죽은 다음에 남쪽을 다스리는 헤롯 아켈라오, 갈릴리를 다스리는 헤롯 안디바, 그리고 북쪽을 다스리는 헤롯 빌립, 이 세 아들이 분봉왕이 되어서 나누어 다스리게 됩니다.
‘아켈라오가 그의 아버지 헤롯 대신 유대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약간 애매한 부분이 뭐냐? 요셉은 원래 갈릴리 사람입니다. 희한하게 지금 아켈라오가 갈릴리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제 생각엔 어쩌면 요셉이 유대로 갈 마음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요셉이 유대로 갈 마음이 없었다면 이 내용이 아켈라오가 아니고 '안디바가 왕 되었다고 듣고'라고 되어야 합니다. 분명히 요셉의 맘속에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했을 때 유대로 갈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왕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에 가는 것을 두려워했으며 유대로 갈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였으며 꿈으로 지시를 받아’ 어디로 지시 받느냐? ‘갈릴리 지방으로’입니다. 지금 요셉이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는 말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또 꿈으로 꾸었겠죠. '어디 가야 합니까?' 했을 때 꿈에 갈릴리로 가라고 지시 받았을 것입니다.
‘갈릴리 지방으로 물러갔으며 나사렛이라는 성으로 가서 살았으며’ 갈릴리 지방 가운데 나사렛은 아주 작은 촌 동네입니다. 나중에 예수님이 나사렛 사람으로 알려지죠. 사람들은 예수님의 출생지를 아무도 모릅니다. 이 나사렛으로 알려지는 자체가 사실은 인간적으로는 이 지역 자체 이름만 들어도 천시 받는 곳입니다.
지금 나사렛에서 12세 이상 살게 되었는데 이 나사렛으로 가서 살게 된 것은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의미가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요셉은 유대에 가고 싶었습니다. 유대 땅은 종교적인 곳인데, 쉽게 말하면 좋은 곳이었습니다. 반면 갈릴리는 지금 유대 사람들이 볼 때는 이방 사람과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이사야에 기록되었는데 ‘이방의 갈릴리야’ 그래서 갈릴리 지역이 유대 사람들이 볼 때 이방지역과 다름없는 곳입니다. 그 사이에 있는 사마리아는 완전한 이방으로 취급 받았죠. 유대가 남쪽입니다. 가운데가 사마리아입니다. 그리고 그 위가 갈릴리입니다. 갈릴리 위가 빌립보 지역입니다.
나사렛이 왜 중요할까요? 나사렛은 멸시와 천대를 받는 대명사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보실 때 나온 모든 내용들과 한 절, 한 절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땅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어떻게 만날까요?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만나는 과정이라는 것이 화려하지 않다는 것은 여러분은 아셔야 합니다. 이 나사렛, 그 당시 정치인들에게서나 종교지도자들에게서나 모두에게서 가장 멸시 받는 지역입니다.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느냐? 쉽게 말하면 아주 촌 동네라는 뜻입니다. 과거나 현재나 사람들이 멸시하고 천대하는 지역이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모셔 들이셨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당연히 멸시와 천대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정상입니다. 유대는 종교적인 곳이며 예루살렘은 종교의 최고봉이죠. 우리는 생각하기를 ‘이제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가 되셨으니 우리를 가장 종교적인 곳으로 보낼거야!’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으면 남들에게 인정받는 과정이 기다릴 것이라는 믿음을 갖습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으셔서 자기 아들 예수님을 나사렛으로 보냈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있으시지만 여러분이 하나님과 만남을 갖게 하기 위해서 여러분을 멸시와 천대를 받게 하십니다. 그것이 당연합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으셔서 예수님의 출생과 성장과정을 가장 미천한 곳으로 던지셨겠습니까?
고린도서에 ‘너희 가운데 지혜로운 자가 없고 부한 자도 없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삶을 말합니다. 우리 예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우리가 믿음을 결정하면 우리 삶에 화려함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을 꿈꾸는 것, 자체가 미혹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살면서 멸시와 천대를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허망한 꿈을 꾸지 마십시오. 인생에서 허망한 비전을 가지지 마십시오. 여러분 멸시를 받아야 되며 천대를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마땅합니다. 왜 축복에 미혹이 됩니까? 창세기 6장에서 하늘나라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땅에서 특별히 잘난 부분들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옥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 각 분야의 전문가가 됩니다.
‘그 분이 나사렛인이라고 불려질 것이라고 선지자들을 통해’ 한 명의 선지자가 아닙니다. 선지자들을 통해 선포된 것이 성취되었습니다. 선지자들은 그 당시 유대에서도 배척을 받았습니다. 구원을 받으면 배척 받습니다. '이 나사렛은 무엇을 의미 하느냐?' 이것은 배척 받는 삶을 의미합니다. 왜냐고요? 헤롯 때문입니다. 지금 남쪽 유다는 아켈라오가 다스리고 갈릴리 지역은 안디바가 다스리고 북쪽은 빌립이 다스립니다. 어디든 헤롯이 주장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다닌다 할지라도 항상 천국에 가는 사람들은 배척을 받습니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12세 때 유월절을 보내고 돌아오는 과정에서 율법사들이 예수님에 대해 놀라워합니다. 말씀에 너무나 정통합니다. 멸시와 천대를 받는 곳에서 말씀을 공부한 것입니다. 말씀을 공부하지 않는다면 그는 천국 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말씀의 정도가 율법사와 대등했습니다. 말씀을 연구하지 않고 단순하게 '나는 나사렛 사람이야, 난 천대받으며 살아'라고만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나사렛이란 말은 영적으로 ‘거룩’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배우지도 않으면서 '나사렛은 천대받는 장소야! 난 천대받고 살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상이 아닙니다. 지옥 갑니다! 나사렛은 말씀을 연구한 장소이고 거룩하게 된 장소입니다. 여러분! 거룩을 목적으로 천대받는 것이지, 천대 자체가 목적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나사렛 원어가 ‘거룩’입니다. 거룩하게 되는 과정에서 멸시와 천대와 핍박과 배척이 필요한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나사렛에 살았습니까? 말씀을 연구하기 위해서입니다. 멸시 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변화됩니다. 우리도 말씀을 공부해야 합니다. 계시에 미혹되지 마십시오! 교리에 미혹되지 마십시오! 은사에, 현상이나 표적에 미혹되지 마십시오! 천국은 말씀을 공부해야 가는 곳입니다. 여러분 거룩합니까? 여러분 마음이 깨끗해졌습니까? 그러면 여러분 마음속에 평화가 넘쳐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마음에 평화가 넘치지 않는 것은 아직 거룩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거룩은 단계가 있습니다. 1차 단계는 말씀을 통해 회개가 일어나는 단계입니다. 환경이 멸시와 천대를 받는 환경일지라도 행복해지는 이유는 거룩 때문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고 누리고 얻어도 행복은 오지 않습니다. 거룩 없는 행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조금 지나면 애통의 기도로 거룩해지는 단계입니다. 이것이 2단계입니다. 애통이 나를 막 몰아갑니다. 그러면 더 행복해집니다. 그리고 더 지나서 드디어 하나님과 직접적인 계시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과 친구가 됩니다. 하나님과 대화합니다. 3단계입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지요. 거룩의 3단계는 대화하는 단계입니다.
이 나사렛이라 불려진다는 것은 1차 거룩에 해당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멸시와 천대를 받으면서 말씀을 연구하셨을 것입니다. 율법사와 대등할 정도로 말할 정도면 말씀을 연구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드디어 나사렛 예수가 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나사렛 사람이 되어 말씀과 회개의 사람이 된다면, 이 말씀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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