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음교회 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마태복음 2장(산상수훈) 6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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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마음에 청결한 자들은 복있으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
마태복음 66절 말씀입니다. ‘마음에’ 원래 여격이죠. ‘마음에 청결한 자’, ‘영에 가난한 자들’, 이렇게 여격을 여격 그대로 번역했는데, 원래 원어가 맞는 것입니다. ‘청결한 자들은 복 있으니’ 청결이 마음에 있다는 것이죠.
몸으로 짓는 죄가 있습니다. 폭력, 음행, 절도, 몸으로 짓는 죄는 100% 지옥갑니다. 몸으로 짓는 죄는 형량이 가장 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영의 세계에도 다 형량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이해 할 때, 5만 파운드에 해당하는 형량이 있고, 1만 파운드에 해당하는 형량이 있습니다. 몸으로 짓는 죄, 여러분 몸으로 짓는 죄를 무서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몸으로 짓는 죄는 가장 큰 형량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입으로 짓는 죄입니다. 입으로 짓는 죄는 갖은 욕설이나, 엄청난 ‘사기’라든가, 거짓 증인, 이런 사기적인, 입으로 짓는 죄, 이런 죄도 지옥 갑니다. 몸으로 짓는 죄는 그 형량이 크기 때문에, 한 번만 지어도 가는 것입니다. 입으로 짓는 죄는 한 번이 아닙니다. 이것은 좀 형량이 작기 때문에 무게가 좀 덜합니다. 죄가 쌓이면 지옥이라는 판결을 내립니다.
세 번째 짓는 죄는 머리로 짓는 죄입니다. 악한 생각, 음란한 생각, 거짓된 생각, 미워하는 생각, 생각으로 짓는 죄입니다. 이런 생각으로 짓는 죄는 많이 쌓이면, 물론 이것도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오늘은 몸으로 짓는 죄, 입술로 짓는 죄, 생각으로 짓는 죄, 그 전단계가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 같이 나눌 말씀입니다.
‘마음에’ 여러분! 마음으로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 이것입니다. 여러분! 생각은 ‘뇌’죠. 그런데 ‘마음’이 어디 있느냐? 마음이 어디 있는지는 잘 모릅니다. 여러 학자가 있는데, ‘심장 주변에 있다’라고 말하는 학자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심장 이식을 하면, 재미있게도 뇌를 이식하지 않았는데, 심장을 이식하면 심장을 떼어낸 사람의 성향이 심장을 이식받은 사람에게 그대로 나타납니다. 정말 신기한 일입니다.
다른 장기의 이식들은, ‘콩팥’을 이식하거나, ‘간’을 이식하거나, ‘피부’를 이식해도, 심장 이외의 장기이식은 전혀 변화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심장을 이식하면, 그 사람의 성향이 정확하게나타납니다. 그래서 마음이 어디 있느냐? 아마 ‘심장에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마음에서 무엇이 나오느냐 하면, 악한 생각 곧 불의, 추악, 교만, 음란, 그리고 모든 신성모독들 등, 많은 죄악들이, 마음에서 나와서 우리를 더럽힌다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를 더럽힌다?’쉽게 말하면, ‘죄’라는 것입니다. 행동의 죄도, 그리고 입술의 죄도, 생각의 죄도 뿌리가 있는데, 뿌리는 마음에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에 있는 죄가 ‘생각’으로 오지 않을 수 있을까요? 있습니다. 마음에서는 죄가 일어나는데, 생각으로 오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음에서는 죄가 일어나는데, 입으로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악한 것들을 다 말합니까? 여러분! 도 닦는 분들 있죠. 이런 분들은 생각도 많이 차단합니다. 생각 자체를 많이 정화를 시키죠. 마음에서 생각으로의 죄를 차단합니다.
문제는 마음의 죄는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마음에는 내 영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음에는 성령님이 거하십니다. 우리 육체에는 ‘악한 영 곧 귀신’이 있지요. 귀신은 생각으로 죄를 짓게 합니다. 내 영은 마음으로 죄를 짓게 합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마음으로 늘 죄를 짓고 삽니다. 그래서 마음에 죄가 쌓입니다. 우리는 잠을 자면서도 죄를 짓습니다, 우리는 무시로 죄를 짓습니다. 설교하면서도 죄를 짓고, 기도하면서도 죄를 짓고, 찬양하면서도 죄를 짓습니다. 우리는 무시로 죄를 짓습니다. 설교하면서도 죄를 짓고, 기도하면서도 죄를 짓고, 찬양하면서도 죄를 짓고, 죄는 끊임없이 짓습니다. 다윗이 고백하지요.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마음에 청결한 자들은 복 있으니’, 우리가 얻어야 할 청결은, 마음의 청결입니다. 마음으로 죄를 짓지 않는 것입니다. 어려운 것입니다. 마음으로 죄를 안 지으면 당연히 생각, 말, 행동의 죄를 짓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 ‘너는 거룩해!’라는, ‘거룩’이라는 것의 결정판은 마음에서의 청결입니다.
여러분! 성공 따로 없습니다. 죄 안 짓는 것이 성공입니다. 인생에서 성공은 죄만 안 지으면 됩니다. 여러분이 이런 결단의 마음이 있어야만 오늘 말씀이 이어집니다. 마음으로 짓는 죄를 벗어버리는 스타트는, ‘죄를 짓지 말아야지’라고 굳은 결단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는 마음으로 죄를 짓지 않는 놀라운 길이 있습니다. 내 마음엔 내 영 곧 carnal nature 만 있는 것이 아니고, 성령 곧 거룩한 영이 거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성령님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그런데 내가 주인의 자리를 양보하여, 내 욕망의 자리를 내어드려, 성령님이 내 마음을 주장하면, 비로서 우린 마음의 죄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성령님이 마음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마음에 죄를 짓지 않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거하시는 저와 여러분의 마음에 성령님이 거하시기 때문에, 성령님이 우리의 마음을 주관하는 동안은, 마음의 죄를 짓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욕망이든, 소원이든, 내가 내 마음의 주인인 이상 여전히 마음으로 죄를 짓게 됩니다.
동시에,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에게 인식되진 않았지만, 마음의 죄를 사함받음으로써 마음의 청결 곧 양심의 청결이 가능하게 됩니다. 마음이 깨끗케 되면 심장이 편안해지며, 마음이 깨끗케 되면, 찬양이 넘쳐나게 됩니다. 마음이 깨끗케 되면, 하나님의 음성도 들려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깨끗하게 되면, 반드시 따라오는 증거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우리가 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마음이 청결해지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현상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들려오는데, 그 때 비로소 우리가 들었던 그리고 우리가 배웠던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살아계시기에, 더 이상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실존에 대하여 의심이 생기지 않습니다. 항상 우리 마음에 살아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청결은 유지하십시오! 그러면 그 분의 음성도 우리 마음에 항상 살아있게 됩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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