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마태복음 1장(거듭남, 성령세례, 마귀시험) 3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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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이미 도끼가 나무의 뿌리에 놓였으니, 그런즉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모든 나무는 잘려져 불로 던져진다.
마태복음 33절 말씀입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의 뿌리에 놓였으니’ 쉽게 말하면 심판의 메시지이며 심판이 임박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즉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모든 나무는 잘려져 불로 던져진다.’가 오늘 말씀입니다. 세례요한이 굉장한 사람입니다. 구약에서는 한 번도 지옥 묘사가 없습니다. 여러분 신기하죠. 지옥이란 단어가 구약에는 안 나옵니다. 구약에서는 천국에 대한 묘사는 있지만 천국이라는 단어가 안 나옵니다. 그런데 지금 너무 정확하게 세례 요한이 지옥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불’불로 던져진다. 이것은 무엇이냐 하면 심판에 관한 메시지이며 지옥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옥이 어떤 곳입니까? 우리가 주님 재림하시면 가는 곳이 불의 연못입니다. 지옥의 모습은 불이 타는 곳입니다. 불타는 곳 게엔나, 쓰레기장입니다. 힌놈의 골짜기라고도 부르는데 예수님의 제자 배반자 가롯 유다가 목메어 죽은 힌놈의 골짜기입니다. 나중에는 피의 밭이라고 불리는 장소이죠. 심판의 장소 그곳은 쓰레기장이며 불이 타는 곳입니다.
지금 죽어도 역시 불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죽으면 그런 불에 갑니다. 거기는 꺼지지 않는 불이 있습니다. 거기서 이를 갈며 슬피 울며 통곡하는 장소입니다. 그런 장소에 여러분이 들어갑니다. 여러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그럴 것입니다. ‘내가 지옥 간다고?’ 네. 여러분 지옥 들어갑니다. 왜냐하면 여기 말씀에 쓰여 있습니다. ‘잘려져’ 여러분이 죽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면 ‘잘려져, 왜 갑니까?’가 오늘 내용입니다.
왜 갑니까? 왜 지옥 갑니까? 너희 바리새인들과 그리고 사두개인들은 종교심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지금 세례 요한은 간다는 것입니다. 나무는 사람을 상징합니다. 열매는 최종 산물입니다.
어떤 사람이 간음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면 그 죄를 짓기까지는 많은 과정이 있습니다. 나무가 있는데 간음죄를 지었어요. 그러면 뿌리가 무엇을 흡수해서 올라갈까요? 음란이나 호색이 흡수해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동영상을 시청해야 되죠. 여러분 죄를 지으려면 그냥 죄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호색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색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뿌리에서 호색이 올라옵니다. 음란이 올라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음란을 굉장히 미워하십니다.
이미 죄는 시작된 것입니다. 어떤 죄가 열매가 맺혀지기 까지는 죄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밑에서 음란이 시작되어야 하고 호색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잎새가 광합성을 내야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죄를 지을 때까지 많은 행동이 필요합니다. 행동이 무엇입니까? 음행입니다. 여러분 죄가 하나 열매를 맺혀지기까지는 아주 많은 과정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그 죄의 열매를 맺기까지 1년이 필요하기도 하고 5년이 필요하기도 하고 그러므로 ‘누가 죄를 지었다’ 그러면 그 배후에 어마어마한 양의 죄가 필요한 것입니다.
‘누가 싸웠다’ 여러분 싸우려고 해도 혈기가 필요하고 이기심이 필요하고 남을 무시하는 마음이 필요하고 이런 많은 과정들의 죄가 이미 내부적으로 있는 것입니다. 횡령을 했다. 횡령을 하려고 해도 탐심이 필요합니다. 많은 죄들은 탐심이 꼭 필요합니다. 탐심이 있어야만 그것 때문에 발동이 됩니다. 소유욕이 있어야 합니다. 물건을 훔치려는 마음도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그 죄 하나까지는 많은 과정이 있습니다.
왜 나무라고 했을까요? 나무에서 열매는 최종 산물입니다. 그 나무에는 잎사귀가 있고 줄기가 있고 뿌리가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총동원 된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려면 죄라는 열매 배후에 아주 많은 것들이 총동원 되어서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지금 세례 요한은 나무로 비유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죄를 지었습니까? 여러분! 간과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이 그 죄를 지을때까지 아주 많은 죄악들이 뿌리박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나는 신앙생활을 오래 했어. 나는 열심히 해. 소용없습니다. 죄를 짓는 자마다 마귀에게 속한 것입니다. 여러분 죄를 지으면 절대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죄가 있으면 못 갑니다.
천국은 죄의 열매가 없고 의의 열매가 나타나야 합니다. 회개의 마땅한 열매는 의의 열매입니다. 여러분 의의 열매가 맺혀지기까지도 많은 것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들어야 하고 기도를 해야 하며 회개해야 하며 많은 과정이 총동원되어서 의의 열매가 맺혀지는 것입니다.
사이비 교주들을 보십시오! 대부분 죄를 짓습니다. 그 교주들이 죄를 지을때까지 많은 과정이 있습니다. 마음에 탐심 죄가 있고 야망이 있고 불륜이 있고 돈에 대한 탐심이 있고 그런 과정 때문에 교회가 건축되고 교주가 되고 나중에는 지옥 들어갑니다. 그때 여러분은 그럽니다. ‘정말 그럴 줄 몰랐어.’ 그럴 것입니다. 여러분도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왜 여러분들이 그들과 똑같은 것을 모르십니까?
주안에 있는 목사가 300명 되는 교회를 인수했는데 불과 3년 만에 3,000명으로 부흥을 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목사님의 횡령이 드러납니다. 그 교회 교인들이 나중에 이런 말을 합니다. ‘목사님에게 실망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같은 사람입니다. 다 유유상종입니다. 갑자기 부흥하는 교회 좋아하지 마십시오. 유유상종입니다. 죄인은 죄인의 설교를 좋아하고 의인은 의인의 설교를 좋아합니다. 다 유유상종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지으면 총체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어떤 죄를 지으면 눈물 조금 흘리고 ‘아! 죄 짓지 말아야지’ 그럽니다. 아닙니다. 그 죄에 이를 때까지 수반되는 많은 죄를 지은 것입니다. 잎사귀도 문제입니다. 줄기도 문제입니다. 뿌리도 문제입니다. 열매가 문제인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죄를 지으면 그 죄 때문에 과정상 있는 많은 수반되는 죄가 있습니다. 적어도 생각의 죄가 많습니다. 마음의 죄가 많습니다.
‘성추행한다고요?’ 얼마나 많이 생각했으면 그렇습니까? 여러분 죄는 그냥 못 짓습니다. 그것이 머리에 가득 차야 짓는 것이 죄입니다. 죄가 쉽게 지어지지 않습니다. 죄는 쉽게 자행되지 않습니다. 그것을 많이 생각합니다. 그리고 많이 연구합니다. 여러분! 죄는 연구가 많이 되어져야 짓는 것이 죄입니다. 살인죄를 지어서 교도소에 있는 사람을 보고 그럽니다. 그 분 착하던데요. 아닙니다. 그 사람이 그렇게 살인죄를 지을 때까지는 잘못된 부모교육과 잘못된 마음, 복수에 불타는 마음, 혈기와 온갖 강포함이 꽉 찼기 때문에 죄가 드러난 것입니다. 여러분은 만나면 그럽니다. ‘아주 착하던데’ 아닙니다. 우리 어떤 사람이 죄를 지을 때까지는 총체적인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참된 종교와 거짓된 종교의 차이점은 한가지입니다. 여러분 미혹과 참 진리의 차이는 마귀는 모든 것을 다 흉내 낼 수 있습니다. 마귀도 하나님을 가장합니다. 마귀도 표적을 일으킬 수도 있고 은사를 나타낼 수도 있고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의’입니다. 마귀는 의를 행할 수가 없습니다. 마귀는 죄를 짓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드라마나 영화를 잘 보십시오! 대부분 마녀들이 가장합니다. 가장해서 선한 사람을 유혹합니다. 모릅니다. 구분이 안 됩니다. 나중에 드러납니다. 그 모든과정 맨 마지막에 마녀가 왕 앞에 드러납니다. 뭐가 드러납니까? 죄가 드러납니다. 하나님과 마귀는 구분이 안 갑니다. 어떻게 알 수 있느냐면 나중에 죄가 드러납니다. 그리고 결국 나중에 그 자신이 지옥에 가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의 잘못된 선택이 결국은 불의 연못임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속이는 자입니다. 마귀는 말씀을 변개합니다. 마귀는 모든 계시들을 변개합니다. 마귀는 모든 것을 속입니다. 결국은 죄를 만듭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죄를 짓지 않습니다. 엘리야가 죄 지었습니까? 여러분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을 잘 보십시오! 죄 지은 사람이 없습니다. 설령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엄청나게 총체적인 회개에 들어갑니다. 그냥 회개가 아닙니다. 그 회개는 거의 총체적인 회개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 사람들은 죄를 짓습니다.
왜 여러분은 여러분의 총체적인 변화에 대해서 꿈꾸지 않습니까? 왜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삶 전체에 대해서 ‘내가 너무 잘못 살았구나.’하고 변화에 대해서 꿈꾸지 않습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잘못된 교리 때문이고 미혹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만나면 ‘나’라는 나무에 뿌리에 무엇이 있었는가? ‘나’라는 줄기가 무엇이 문제인가? ‘나’라는 잎사귀가 무엇이 문제인가? 단지 내 삶에 보이는 열매만이 아니라 내 총체를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근본적인 변화를 꿈꾸게 되어 있습니다.
구원은 여러분이 새롭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뿌리가 바뀌어야 합니다. 줄기가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 잎사귀가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면 새로운 열매가 맺혀집니다. 그러면 더 이상 죄를 짓지 않습니다. 여러분 지금 죄를 짓고 있다고요? 여러분 간음죄를 짓고 있습니까? 현상입니다. 여러분이 믿고 있는 종교, 예배, 목사, 읽고 있는 책들, 모든 방송들의 총체적인 문제임을 아셔야 합니다. 인생은 짧습니다. 여러분은 불의 연못에서 있으면서 여러분은 그 때 오늘의 설교를 기억할 것입니다.
나무는 큽니다. 열매는 작을 뿐입니다. 사과나무는 큰데 사과는 작습니다. 여러분이 그 총체적인 문제를 깨닫지 않는 한 여러분은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지옥이 합당하다고 느끼지 않는 한 여러분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왜 여러분은 모르십니까? ‘하나님 저를 품꾼의 하나로 써 주십시오! 나는 아들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고 여러분의 총체적인 회개의 마음이 터지지 않는 한 여러분은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마치겠습니다.
마태복음 33절 말씀입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의 뿌리에 놓였으니’ 쉽게 말하면 심판의 메시지이며 심판이 임박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즉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모든 나무는 잘려져 불로 던져진다.’가 오늘 말씀입니다. 세례요한이 굉장한 사람입니다. 구약에서는 한 번도 지옥 묘사가 없습니다. 여러분 신기하죠. 지옥이란 단어가 구약에는 안 나옵니다. 구약에서는 천국에 대한 묘사는 있지만 천국이라는 단어가 안 나옵니다. 그런데 지금 너무 정확하게 세례 요한이 지옥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불’불로 던져진다. 이것은 무엇이냐 하면 심판에 관한 메시지이며 지옥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옥이 어떤 곳입니까? 우리가 주님 재림하시면 가는 곳이 불의 연못입니다. 지옥의 모습은 불이 타는 곳입니다. 불타는 곳 게엔나, 쓰레기장입니다. 힌놈의 골짜기라고도 부르는데 예수님의 제자 배반자 가롯 유다가 목메어 죽은 힌놈의 골짜기입니다. 나중에는 피의 밭이라고 불리는 장소이죠. 심판의 장소 그곳은 쓰레기장이며 불이 타는 곳입니다.
지금 죽어도 역시 불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죽으면 그런 불에 갑니다. 거기는 꺼지지 않는 불이 있습니다. 거기서 이를 갈며 슬피 울며 통곡하는 장소입니다. 그런 장소에 여러분이 들어갑니다. 여러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그럴 것입니다. ‘내가 지옥 간다고?’ 네. 여러분 지옥 들어갑니다. 왜냐하면 여기 말씀에 쓰여 있습니다. ‘잘려져’ 여러분이 죽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면 ‘잘려져, 왜 갑니까?’가 오늘 내용입니다.
왜 갑니까? 왜 지옥 갑니까? 너희 바리새인들과 그리고 사두개인들은 종교심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지금 세례 요한은 간다는 것입니다. 나무는 사람을 상징합니다. 열매는 최종 산물입니다.
어떤 사람이 간음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면 그 죄를 짓기까지는 많은 과정이 있습니다. 나무가 있는데 간음죄를 지었어요. 그러면 뿌리가 무엇을 흡수해서 올라갈까요? 음란이나 호색이 흡수해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동영상을 시청해야 되죠. 여러분 죄를 지으려면 그냥 죄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호색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색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뿌리에서 호색이 올라옵니다. 음란이 올라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음란을 굉장히 미워하십니다.
이미 죄는 시작된 것입니다. 어떤 죄가 열매가 맺혀지기 까지는 죄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밑에서 음란이 시작되어야 하고 호색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잎새가 광합성을 내야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죄를 지을 때까지 많은 행동이 필요합니다. 행동이 무엇입니까? 음행입니다. 여러분 죄가 하나 열매를 맺혀지기까지는 아주 많은 과정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그 죄의 열매를 맺기까지 1년이 필요하기도 하고 5년이 필요하기도 하고 그러므로 ‘누가 죄를 지었다’ 그러면 그 배후에 어마어마한 양의 죄가 필요한 것입니다.
‘누가 싸웠다’ 여러분 싸우려고 해도 혈기가 필요하고 이기심이 필요하고 남을 무시하는 마음이 필요하고 이런 많은 과정들의 죄가 이미 내부적으로 있는 것입니다. 횡령을 했다. 횡령을 하려고 해도 탐심이 필요합니다. 많은 죄들은 탐심이 꼭 필요합니다. 탐심이 있어야만 그것 때문에 발동이 됩니다. 소유욕이 있어야 합니다. 물건을 훔치려는 마음도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그 죄 하나까지는 많은 과정이 있습니다.
왜 나무라고 했을까요? 나무에서 열매는 최종 산물입니다. 그 나무에는 잎사귀가 있고 줄기가 있고 뿌리가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총동원 된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려면 죄라는 열매 배후에 아주 많은 것들이 총동원 되어서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지금 세례 요한은 나무로 비유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죄를 지었습니까? 여러분! 간과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이 그 죄를 지을때까지 아주 많은 죄악들이 뿌리박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나는 신앙생활을 오래 했어. 나는 열심히 해. 소용없습니다. 죄를 짓는 자마다 마귀에게 속한 것입니다. 여러분 죄를 지으면 절대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죄가 있으면 못 갑니다.
천국은 죄의 열매가 없고 의의 열매가 나타나야 합니다. 회개의 마땅한 열매는 의의 열매입니다. 여러분 의의 열매가 맺혀지기까지도 많은 것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들어야 하고 기도를 해야 하며 회개해야 하며 많은 과정이 총동원되어서 의의 열매가 맺혀지는 것입니다.
사이비 교주들을 보십시오! 대부분 죄를 짓습니다. 그 교주들이 죄를 지을때까지 많은 과정이 있습니다. 마음에 탐심 죄가 있고 야망이 있고 불륜이 있고 돈에 대한 탐심이 있고 그런 과정 때문에 교회가 건축되고 교주가 되고 나중에는 지옥 들어갑니다. 그때 여러분은 그럽니다. ‘정말 그럴 줄 몰랐어.’ 그럴 것입니다. 여러분도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왜 여러분들이 그들과 똑같은 것을 모르십니까?
주안에 있는 목사가 300명 되는 교회를 인수했는데 불과 3년 만에 3,000명으로 부흥을 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목사님의 횡령이 드러납니다. 그 교회 교인들이 나중에 이런 말을 합니다. ‘목사님에게 실망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같은 사람입니다. 다 유유상종입니다. 갑자기 부흥하는 교회 좋아하지 마십시오. 유유상종입니다. 죄인은 죄인의 설교를 좋아하고 의인은 의인의 설교를 좋아합니다. 다 유유상종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지으면 총체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어떤 죄를 지으면 눈물 조금 흘리고 ‘아! 죄 짓지 말아야지’ 그럽니다. 아닙니다. 그 죄에 이를 때까지 수반되는 많은 죄를 지은 것입니다. 잎사귀도 문제입니다. 줄기도 문제입니다. 뿌리도 문제입니다. 열매가 문제인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죄를 지으면 그 죄 때문에 과정상 있는 많은 수반되는 죄가 있습니다. 적어도 생각의 죄가 많습니다. 마음의 죄가 많습니다.
‘성추행한다고요?’ 얼마나 많이 생각했으면 그렇습니까? 여러분 죄는 그냥 못 짓습니다. 그것이 머리에 가득 차야 짓는 것이 죄입니다. 죄가 쉽게 지어지지 않습니다. 죄는 쉽게 자행되지 않습니다. 그것을 많이 생각합니다. 그리고 많이 연구합니다. 여러분! 죄는 연구가 많이 되어져야 짓는 것이 죄입니다. 살인죄를 지어서 교도소에 있는 사람을 보고 그럽니다. 그 분 착하던데요. 아닙니다. 그 사람이 그렇게 살인죄를 지을 때까지는 잘못된 부모교육과 잘못된 마음, 복수에 불타는 마음, 혈기와 온갖 강포함이 꽉 찼기 때문에 죄가 드러난 것입니다. 여러분은 만나면 그럽니다. ‘아주 착하던데’ 아닙니다. 우리 어떤 사람이 죄를 지을 때까지는 총체적인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참된 종교와 거짓된 종교의 차이점은 한가지입니다. 여러분 미혹과 참 진리의 차이는 마귀는 모든 것을 다 흉내 낼 수 있습니다. 마귀도 하나님을 가장합니다. 마귀도 표적을 일으킬 수도 있고 은사를 나타낼 수도 있고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의’입니다. 마귀는 의를 행할 수가 없습니다. 마귀는 죄를 짓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드라마나 영화를 잘 보십시오! 대부분 마녀들이 가장합니다. 가장해서 선한 사람을 유혹합니다. 모릅니다. 구분이 안 됩니다. 나중에 드러납니다. 그 모든과정 맨 마지막에 마녀가 왕 앞에 드러납니다. 뭐가 드러납니까? 죄가 드러납니다. 하나님과 마귀는 구분이 안 갑니다. 어떻게 알 수 있느냐면 나중에 죄가 드러납니다. 그리고 결국 나중에 그 자신이 지옥에 가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의 잘못된 선택이 결국은 불의 연못임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속이는 자입니다. 마귀는 말씀을 변개합니다. 마귀는 모든 계시들을 변개합니다. 마귀는 모든 것을 속입니다. 결국은 죄를 만듭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죄를 짓지 않습니다. 엘리야가 죄 지었습니까? 여러분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을 잘 보십시오! 죄 지은 사람이 없습니다. 설령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엄청나게 총체적인 회개에 들어갑니다. 그냥 회개가 아닙니다. 그 회개는 거의 총체적인 회개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 사람들은 죄를 짓습니다.
왜 여러분은 여러분의 총체적인 변화에 대해서 꿈꾸지 않습니까? 왜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삶 전체에 대해서 ‘내가 너무 잘못 살았구나.’하고 변화에 대해서 꿈꾸지 않습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잘못된 교리 때문이고 미혹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만나면 ‘나’라는 나무에 뿌리에 무엇이 있었는가? ‘나’라는 줄기가 무엇이 문제인가? ‘나’라는 잎사귀가 무엇이 문제인가? 단지 내 삶에 보이는 열매만이 아니라 내 총체를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근본적인 변화를 꿈꾸게 되어 있습니다.
구원은 여러분이 새롭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뿌리가 바뀌어야 합니다. 줄기가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 잎사귀가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면 새로운 열매가 맺혀집니다. 그러면 더 이상 죄를 짓지 않습니다. 여러분 지금 죄를 짓고 있다고요? 여러분 간음죄를 짓고 있습니까? 현상입니다. 여러분이 믿고 있는 종교, 예배, 목사, 읽고 있는 책들, 모든 방송들의 총체적인 문제임을 아셔야 합니다. 인생은 짧습니다. 여러분은 불의 연못에서 있으면서 여러분은 그 때 오늘의 설교를 기억할 것입니다.
나무는 큽니다. 열매는 작을 뿐입니다. 사과나무는 큰데 사과는 작습니다. 여러분이 그 총체적인 문제를 깨닫지 않는 한 여러분은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지옥이 합당하다고 느끼지 않는 한 여러분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왜 여러분은 모르십니까? ‘하나님 저를 품꾼의 하나로 써 주십시오! 나는 아들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고 여러분의 총체적인 회개의 마음이 터지지 않는 한 여러분은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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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런즉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의 세대가 모두 14세대이며, 다윗부터 바벨론 이주까지 14세대이며, 바벨론 이주부터 그리스도까지 14세대입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6절입니다. 이 14세대가 세 번 반복되는데 이것은 다윗의 숫자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로 오셨는데 이 그리스도를 묘사한 가장 완벽한 사람이 다윗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히브리어로 '메시아'인데, 메시아 통치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다윗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약은 계속 메시아를 기다리죠. '나중에 여자의 후손이 올거야! 나중에 그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는 그 누군가가 올거야! 나중에 어떤 아들이 태어나서 우리를 다스리는데, 우리는 꿈같은 삶을 살거야' 하고 구약 내내 기다립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다윗에 대한 그리움과 갈망이 항상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출생 하셨을 때 다윗의 후손이라고 부르죠. 이 다윗의 후손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이것은 왕의 출생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기다립니다. '메시아가 오면 우리를 잘 통치해 잘 먹고 잘 살거야! 우리는 행복할 거야!'라는 기다림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이해 못합니다. 왜냐하면 기존 관념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이 오면, 정치적으로 왕이 되어서 로마에서 해방시켜 주고 우리는 한 자리 할거야!' 그래서 다툼도 일어납니다. 자기들끼리 '자. 너는 오른편에 앉아 왼편에 앉아!'라고 자리다툼이 일어납니다. 메시아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 때문이었습니다. 자, 이제 중요합니다. '그리스도가 누구냐? 메시아가 누구냐?'에 대한 그 이해와 사고가 중요한데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다음에 모든 수난과 고난을 겪으시고 십자가에서 값을 치루시고 부활 하시죠. 그리고 40일 동안 신령한 몸을 입고 부활체로써 이 땅에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10일 뒤에 승천하시고 10일 뒤에 오순절
마태복음 2장(산상수훈) 106절
106. 몸의 등불은 눈이다. 그런즉 만약 네 눈이 성하다면 네 온 몸이 밝을 것이다. 만약 네 눈이 악하다면, 네 온 몸은 어두울 것이다. 마태복음 106절 말씀입니다. '몸의 등불은 눈이다' 맞지요. 눈이 감기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 않습니까? 당연히 몸의 등불은 눈입니다. 여러분! 깜깜한 밤에 횃불이 있으면 그 불 때문에 밤이 환하게 밝은 것처럼, 눈으로 보는 것을 보게 되고 눈이 감긴 소경이 가장 비참한 것입니다. '그런즉 만약 네 눈이 성하다면 네 온몸이 밝을 것이다' 그렇죠. 눈이 멀쩡하면 밝음을 느낍니다. 왜? 태양광선을 통해서 사물을 볼 수 있으니까, 밝음을 느낍니다. '만약 네 눈이 악하다면' 눈이 좋지 않다면 '네 온 몸은 어두울 것이다' 여러분! 눈만 감으면 어두움입니다. 눈만 뜨면 밝음이고, 이 눈이라는 조그마한 기관 때문에 우리 온몸이 좌우되는 것입니다. 똑같이 이것은 육의 세계만이 아니라, 영의 세계인데, 왜? 영의 세계이냐? 표현할 때, 네 눈이 약하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악하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눈은 '육의 눈'이 아니고 '영의 눈'입니다. 동시에 '성하다'는 표현은 '영, 육'에 같이 쓰이는 표현인데, 이 '악하다'는 표현은 영에 쓰이는 표현이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눈은 몸의 눈이 아니라 영의 눈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 구절을 이해하실 때, '아! 이 구절은 영적인 것이구나!'하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우리 '영의 눈'이 감긴 상태, 그것이 '악한 것'입니다. '영의 눈'이 감기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믿는 자의 악이 어디서 들어올까요? 영의 눈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영의 눈이 닫힌 상태, 뭐가 들어올까요? 하나님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우리 '영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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