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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음교회 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마태복음 1장(거듭남, 성령세례, 마귀시험) 55절



마태복음 55절 말씀입니다. ‘거기서 가시다가’ 예수님께서 지금 갈릴리 바닷가를 거니시다가, 안드레와 베드로를 부르신 다음에, 당일이었는지, 몇 일 후의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바닷가’라는 말씀이죠! ‘아버지 세배대와 함께 배에서 그들의 그물들을 깁고 있는’, 먼저는 ‘안드레와 베드로가 그물을 던지는’이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깁고 있는’, ‘다른 두 형제 곧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셨으며’, 야고보가 형이죠. 요한은 동생이고 어립니다. 12제자 가운데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 베드로였고, 가장 어린 사람이 ‘요한’이었습니다.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나를 따라 오라!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가 생략되었겠죠? 반복해서 쓰겠습니까? 성경은 항상 축약 되어 있는데, 위에 나온 내용은 뒤에서 잘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실 때 앞쪽을 잘 보셔야 합니다. 계시록을 보시면 안됩니다. 여러분! 계시록을 만 번 보신 분도 계십니다. 모르셔서 그렇습니다. 그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 전에 요한 123서를 보셔야 합니다. 그 전에 유다서를 보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전에 베드로전후서, 야고보서, 그 전에 바울서신, 그 전에 4복음서, 그 전에 선지서, 시가서, 역사서, 모세오경을 앞에부터 봐야 합니다. 그래야 성경은 이해가 잘 됩니다.


지금 사람들이 왜 그토록 말씀의 미혹이 많을까요? 성경을 보실 때, 어디 뒷부분에서 자기에게 꽂힌 것에 흥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화를 보시다가 맘에 드는 것이 나오면 그것만 보십니까? 그러면 이해가 잘 안됩니다. 왜곡될 수 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앞에서부터 봐야 합니다. 그러면 정확히 이해가 됩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12제자 가운데, ‘사도 요한’과 ‘야고보’를 부르신 것입니다. 이 ‘사도 요한’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도 ‘세례 요한’ 교회를 다닌 사람입니다. 세례 요한의 두 제자가 있었는데 그 중에 두 명이 전 구절에 말씀 드린 안드레와 지금 말씀 드리는 ‘요한’입니다. 이 요한은 어릴 때부터, 세례 요한을 통해서 성결을 배우고, 회개를 배우고, 예수님을 ‘메시야’로 알게 되고, 예수님을 따르게 되지요. 다시 말하면, 요한도 예수님이 초면이 아닙니다. 이미 세례 요한을 통해서 예수님을 감지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신앙은 갑자기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죠. 신앙은 항상 과정이 있다고 설명 드렸습니다.


분명히 형 ‘야고보’에게 전도했었겠지요. ‘야고보’도 갑자기, 처음 보자 마자, 예수님을 따르지는 않았겠지요. ‘야고보’도 분명히 전도를 받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야고보와 요한’은 우레의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성격이 좀 다혈질적이고 급한 것이 분명한 것은, 사마리아 지역을 가다가 사람들이 반대하니까 ‘하늘에서 불을 떨어뜨려 달라’고 열 받아 하는 성격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야고보와 요한을 세 명 중에서 두 명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첫 번째는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수제자이죠.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은 늘 가장 측근에서 따라 다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항상 4복음서에 나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자주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느냐구요? 운명이 참 기구합니다. 야고보는 첫 번째 순교자가 됩니다. 야고보는 예루살렘 초기 박해 때에 그냥 죽습니다. 인생이 참 기구합니다. 그렇게 예수님을잘 배웠는데, 그것을 써 먹지도 못하고 죽습니다. 그리고 야고보서를 기록한 야고보는 ‘예수님 동생 야고보’입니다.

반대로 요한은 또 다릅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예수님 앞에 서 있었죠. 어머니 마리아를 요한에게 부탁합니다. ‘보라! 네 어머니이다’라고 말하죠. 그래서 요한이 그 십자가 사건부터 요한이 마리아를 평생 모시고 살아갑니다. 요한은 예루살렘 박해를 피하여서 시리아로 갔다가 나중에 터어키까지 올라가죠. 이 ‘사도 요한’이 터어키에서 6천명 정도 되는 교회를 세웁니다. 그곳에서 이제 목회를 하다가 나중에 핍박 받아서 ‘밧모’섬에 귀향을 가게 됩니다. 거기서 여러분이 좋아하는 계시록을 쓰게 됩니다.


스타트가 일곱 교회에 대한 편지입니다. 일곱 교회는 터어키 지역에 있는 그 당시 일곱 교회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십자가 이후로 예루살렘 박해 때문에, 믿는 사람들이 흩어져 시리아, 터어키로 흩어집니다. 그 흩어진 유대인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데, 초기때는 대부분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 중심으로 기독교가 모입니다.


나중에 요한이 95세 정도 되었을 때, 밧모섬에서 죽게 됩니다. 자! 지금 야고보도 일생에서 남긴 것은 ‘죽음’, 마찬가지로 요한도 평생을 남아서 남긴 것은 ‘순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산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내게 어떤 영광이나, 축복이나, 내가 원하는 뭔가를 기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12제자들이 다 순교했습니다. ‘가룟유다’는 배신해서 자살했지만, 예수님의 제자로 산다는 것은, 이 땅에 살면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는 이런 간증이 있는 것입니다. 가수는 ‘앨범’을 내야만 가수가 되는 것입니다. 화가도 ‘화가 전시회’를 가져야 합니다. 제자는 예수님을 향해서 무엇인가를 헌신하고 자기를 버린 그런 ‘흔적’이 있어야 됩니다. 사도바울은, 내게 ‘예수의 흔적’이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향해서 내 삶을 버린 흔적이 여러분에게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자는, ‘나! 예수님 따르는 사람이야, 나! 십자가를 깨달았어’, 깨달으면 뭐합니까? ‘흔적’이 없는데, 여러분! 이 제자들은, ‘십자가의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아! 감동적 이었어’, 그럽니까? 아닙니다. 일생이 예수님을 향한 헌신과 예수님을 향한 ‘몸 바침’의 ‘흔적’이 제자의 삶에 대한 증거인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영어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저는 신학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영어 성경 번역이 쉽겠습니까? 어렵습니다. 저는 영어를 전공한 사람도 아닙니다. ‘헬라어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헬라어를 전공 했냐구요? 물론 안 했습니다. 여러분! 목사님들께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뭐했습니까? 여러분! 헬라어를 전공한 교수님들은 지금 뭐하십니까?’ 여러분! ‘헬라어 성경’을 번역 하는 일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씁니다. 그리고 요한 123서를 기록합니다. 그리고 계시록을 기록합니다. 왜냐구요? 예수님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 발생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사도 바울이 ‘13편의 신약’을 기록하지요. 사도바울이 시간이 많아서 그렇게 합니까? 아닙니다. ‘다니엘’하면, 사자굴이 기억 나지요. 모세는 자기 백성을 위해서 받는 고난을 애굽의 보화보다 귀하다고 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는 ‘40년의 광야’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모리아산’이 있습니다. 이삭은, 자기가 ‘묶이는데도 항거하지 않는 제물 됨’이 있습니다. 야곱은 ‘12아들에 대한 예언기도’가 있지요. 여러분! 성경은 전부 다 그 사람을 통해 떠오르는, ‘희생과 헌신의 흔적’이 있습니다.


근대 선교의 아버지 ‘윌리암캐리’가 있습니다. 인도에 선교사로 가서, 무려 8년 동안 전혀 전도의 열매가 맺혀지지 않았지만, 많은 인도어로 성경을 번역을 하고 나중에는 큰 선교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에게 ‘끈기와 열정의 흔적’이 있는 것입니다. 윌리엄캐리 전 60년 전, 모라비안이 있습니다. 진잰돌프가 모라비안을 거주에 도움을 주며 진잰돌프가 그 모임의 우두머리가 되는데, 모라비안은 독신을 강조하고 공동 예배를 강조합니다. 그 모라비안파들이 하나님 앞에 헌신하게 되는데, 5천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을 전 세계에 평신도 선교사로 파송합니다. ‘헌신’입니다. 그들의 이름조차 기억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제자’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 예수님 때문에 수익이나 유익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는 어떤 ‘응당한 댓가’를 받지 않습니다. ‘댓가’는 하늘 나라에 가면 주어집니다. 제자는 하나님을 향해서 내 목숨을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땅에서도 국가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사람 꽤 많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충신’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이 땅에 남긴 것을 ‘업적’이라고 부릅니다. 이 땅에서도 국가에 충성한 사람도 높이 평가합니다. 하물며 우리가 ‘천국이란 나라’에 나를 불러 주신, 예수님께 목숨을 건 ‘흔적’이 당연히 우리에게 남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위해서 생명을 버리셨습니다. 정말 여러분이 그 ‘속죄의 그리스도’가 마음에 오게 되면, 여러분도 생명을 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깨달았다는 그 복음은 엄밀하게는 ‘가짜복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깨달은 복음은 ‘거짓’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위해서 생명을 버리지 않는다면, 여러분이 ‘거짓’인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을 따른 제자들은 전부다 목숨을 버렸습니다. 여러분은 왜 목숨을 버리지 않습니까? 구약은 12지파이고, 신약은 12사도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왜? 목숨을 안 버리고 영광만을 얻으려 합니까? 목숨을 안 버리고 영광을 누리려는 것은 ‘가짜’라는 것입니다. ‘거짓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미국에 청교도들이 왜 갔습니까? 그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그 당시 카톨릭의 박해를 피하여 낯선 아메리카대륙에 대서양을 건너서 가게 됩니다. 잘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거기서 전염병으로 반 이상 죽게 됩니다. 여러분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정말 깨달았다면, 100% 주님의 흔적을 남기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제자라는 것은 ‘내가 신약해서, 목사 되어야지’가 아닙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그물을 던지는’, 그리고 요한과 야고보는 ‘배와 아버지를 버리는 헌신’이 ‘제자됨’의 필수조건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당신은 예수님 때문에 무엇을 버리셨나요?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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