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마태복음 1장(거듭남, 성령세례, 마귀시험) 3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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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그때 예루살렘과 유대 모두와 요단 인근 모두가 그에게 나왔으며, 그들의 죄들을 자백하며, 요단에서 그에게서 세례 받았습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31절 말씀입니다. 세례 요한이 원래는 엣센파에 속해 있는데 사해 좌편에서 공동생활을 하지 않고 개인적인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때' 세례요한이 유대 광야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깊은 수도생활 또는 깊은 영성 생활을 할 때를 말합니다. 이때는 세례 요한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하나님과 교통이 강할 때를 말합니다. '예루살렘과 유대모두와 요단 인근 모두가 그에게 나왔으며 그들의 죄들을 자백하며 요단에서 그에게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오늘은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진짜 세례가 무엇인지 알려 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안 보이죠. 예수님도 안 보입니다. 성령의 내주하심도 안 보입니다. 천국도 안 보입니다. 지옥도 안 보입니다. 그런데 세례는 이 모든 것이 인정될 뿐만 아니라 ‘너는 지금 죽으면 천국 간다’는 선언입니다. 원래 세례라는 말은 '씻는다'라는 말입니다. 쉽게 말하면 ‘너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겨졌어. 넌 지금 죽으면 천국 가!’ 그것이 세례입니다. 원래 세례는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지금 하는 세례는 완전히 엉망입니다. 교회에서 세례를 많이 합니다. 심지어 유아세례를 줍니다. 그런 유아 세례를 어디서 배우셨습니까? 성경에 유아 세례가 어디에 나옵니까?
빌립 집사가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세례를 베풉니다. '넌 지금 죽으면 천국 가'라는 의미의 세례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하늘 아버지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냥 세례를 주면 안 됩니다. 차라리 세례를 주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무슨 권한으로 세례를 주십니까? 요한의 세례는 하늘에서 오신 것입니다. 하늘에서 와야 합니다. 요한이 지금 자기에게 온 모두에게 세례를 준 것이 아닙니다. 요한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는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진노를 퍼 붓습니다. 지옥 들어 간다고 저주를 퍼 붓습니다.
여러분이 세례를 줄 정도가 되려면 하나님과 교통하는 수준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 있는 것이라고 해서 막연히 막 따라하지 마십시오! 목회자 여러분! 당신에게 세례 받는 사람이 천국에 갈지 지옥에 갈지 인식이 됩니까? 여러분이 1년에 두 번 하는 세례식을 할 때 하나님이 정말 인식이 됩니까? 인식이 안 된다면 세례를 주면 안 됩니다! 교회의 전통을 따라 행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례 안 하셔도 됩니다. 차라리 그냥 성령세례를 구하라고 설교하십시오! 성령세례는 예수님이 주시는 세례입니다.
왜 좋은 세례를 놔두고 자꾸 의식에 불과한 세례를 행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례를 주십니다. 여러분! 교회 세례 안 받아도 됩니다. 예수님 살아계십니다! 성령세례를 구하십시오! 여러분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십니다. 그것이 예수님에 대한 동시에 하나님에 대한 증거가 되며 성경 전체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되지 않겠습니까? 세례는 무엇입니까? 세례라는 것은 ‘넌 씻겨졌어. 넌 지금 죽어도 천국 가’라는 선포이기에 먼저는 죄사함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물론 세례가 구원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구원이 보장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세례는 '넌 지금 죽어도 천국 간다.'는 증표입니다. 내일은 모릅니다. 죽을 때는 모릅니다. 단지 현재 ‘지금 넌 계명대로 살고 있는거야. 네 안에 성령님이 내주하고 계셔'라는 증표로서 영적인 지도자 또는 교회 목사가 세례의식을 행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사람들을 물에 잠기게 했을지 아니면 그냥 물을 머리에 뿌렸는지는 모릅니다. 의식 행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본질은 요단강 곧 예수님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은 자에게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요한에게 죄들을 자백했는데 자백이 어떤 것일까요? 제 고등학교 친구가 어느 날 담배를 피우면서 저에게 와서는 '수련회 때, 회개를 했는데도 담배가 끊어지지 않는다. 그때 내가 회개를 엄청 많이 했는데도 안 되네' 하면서 고민을 말한 적이 있습니다. 많은 회개가 가짜가 많습니다. 왜 가짜가 많냐고요? 그냥 일시적인 감동과 흥분으로 눈물 흘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변화를 초래하지 못합니다. 변화가 동반되지 않는 눈물의 회개는 가짜일 경우가 많습니다. 소위 혼적인 회개이지 영적인 회개는 아닌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도 자기들이 회개했다고 또는 죄 사함 받았다고 세례를 받으러 세례 요한에게 왔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그들에게 세례를 주지 않았습니다. 가짜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독사의 새끼들아!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아주 저주를 퍼 붓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도 신앙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예루살렘에 6천명에 이르는 바리새인들이 있었습니다. 요한은 진실로 회개한 자들에게는 세례를 베풀고 그리고 거짓된 회개자들에게는 세례를 베풀지 않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요단강 근처에 사람들이 모여 왔습니다. 요단강은 무엇입니까? 조그만 시내 입니다. 거기서 죄를 깨닫고 죄에서 회개를 하는 장소입니다.
교회 생활을 많이 하고 신앙생활을 많이 한 사람이 천국 가기가 쉽습니다. 여러분! 신앙이라는 영역에서 오래 있는 사람이 천국가기 쉽습니다. 신앙생활을 왜 오래해야 합니까? 천국 가기 위해서입니다. 말씀생활을 오래 합니다. 기도 생활을 오래 합니다. 회개 생활을 오래 합니다. 중요합니다! 그렇게 오래 신앙생활을 하신 분들 중에 요한이 ‘너는 천국 간다’고 세례를 주는 것입니다. 지금 교회에서 하는 세례들은 대부분 초신자들에게 줍니다. 천국과 거리가 먼 출석교인에게 줌으로써 자신들이 천국에 들어간다는 망상을 심어주어 오히려 천국을 방해하는 신앙의 걸림돌이 되었다는 것을 아십니까?
반면 요한의 세례는 오랜 신앙생활을 해서 죽어도 천국 간다고 확신한 사람 더 나아가서 그 회개의 깊이가 깊은 진짜 회개자에게 요한이 세례를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요한을 보십시오! 요한은 지금 사람들이 오니까 척 보고 다 압니다. '넌 천국 가는구나, 넌 지옥 가는구나.' 압니다. 요한처럼 되어야 합니다. 알기 때문에 세례를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모르면서 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십계명 3계명에서 말씀 드렸죠.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하나님을 대신해서는 안 됩니다. 카톨릭에서는 고해성사를 합니다. 고해성사가 뭡니까? 죄를 자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고해성사를 받습니까? 사제가 합니다. 하나님을 대신합니다. 이것이 미혹입니다. 왜 사제가 합니까? 하나님 밖에는 죄를 사할 수가 없습니다. 죄는 예수님 밖에는 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신부가 하나님을 대신해서 죄 사함을 선포합니다. 이것이 미혹 아닙니까?
여러분도 똑같습니다. 세례도 미혹입니다! 왜 하나님을 대신해서 보이지도 않는데 세례 줍니까? 여러분 그것도 죄입니다. 지옥 갈 사람들에게 세례 주는 것이 큰 죄입니다. 천국에 들어간다는 보장이 없는데 왜 세례를 주어서 본인으로 하여금 '난 세례 교인이야. 난 구원받은 자야' 하고 착각하게 만듭니까? 결국 그것은 그 사람의 지옥행을 더 가속 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해성사를 나쁘다 말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도 지금 똑같이 세례성사를 베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적인 모든 가르침과 그 모든 의식들이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출발되어야 합니다. 저는 그것을 권고합니다. 정말 간절히 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교회에서 세례, 유아세례, 학습, 하나님에게서 나지 않은 모든 것은 인본적인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에게서 나서 세례를 주면 그것은 바른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지금 그런 극빈한 삶을 살면서 하나님 만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에게 하나님 말씀이 임한 것입니다. 목회자 여러분에게 하나님 말씀이 임했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을 아십니까? 이 강해를 보시는 사님들! 하나님을 정말 깊이 만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에게서 온 가르침만 주시고 행하십시오!
저는 목회자 여러분의 사역이 요한처럼 하나님 앞에서 진실 되기를 원합니다. 요한은 깊은 영성가 입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깊은 세계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진실된 세례를 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만 그렇지 않고 카톨릭 고해성사와 같이 의례적으로 세례를 베푼다면 여러분은 미혹이라는 전통을 이어가는 어리석음에 빠진 것입니다. 마치겠습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31절 말씀입니다. 세례 요한이 원래는 엣센파에 속해 있는데 사해 좌편에서 공동생활을 하지 않고 개인적인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때' 세례요한이 유대 광야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깊은 수도생활 또는 깊은 영성 생활을 할 때를 말합니다. 이때는 세례 요한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하나님과 교통이 강할 때를 말합니다. '예루살렘과 유대모두와 요단 인근 모두가 그에게 나왔으며 그들의 죄들을 자백하며 요단에서 그에게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오늘은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진짜 세례가 무엇인지 알려 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안 보이죠. 예수님도 안 보입니다. 성령의 내주하심도 안 보입니다. 천국도 안 보입니다. 지옥도 안 보입니다. 그런데 세례는 이 모든 것이 인정될 뿐만 아니라 ‘너는 지금 죽으면 천국 간다’는 선언입니다. 원래 세례라는 말은 '씻는다'라는 말입니다. 쉽게 말하면 ‘너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겨졌어. 넌 지금 죽으면 천국 가!’ 그것이 세례입니다. 원래 세례는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지금 하는 세례는 완전히 엉망입니다. 교회에서 세례를 많이 합니다. 심지어 유아세례를 줍니다. 그런 유아 세례를 어디서 배우셨습니까? 성경에 유아 세례가 어디에 나옵니까?
빌립 집사가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세례를 베풉니다. '넌 지금 죽으면 천국 가'라는 의미의 세례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하늘 아버지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냥 세례를 주면 안 됩니다. 차라리 세례를 주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무슨 권한으로 세례를 주십니까? 요한의 세례는 하늘에서 오신 것입니다. 하늘에서 와야 합니다. 요한이 지금 자기에게 온 모두에게 세례를 준 것이 아닙니다. 요한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는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진노를 퍼 붓습니다. 지옥 들어 간다고 저주를 퍼 붓습니다.
여러분이 세례를 줄 정도가 되려면 하나님과 교통하는 수준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 있는 것이라고 해서 막연히 막 따라하지 마십시오! 목회자 여러분! 당신에게 세례 받는 사람이 천국에 갈지 지옥에 갈지 인식이 됩니까? 여러분이 1년에 두 번 하는 세례식을 할 때 하나님이 정말 인식이 됩니까? 인식이 안 된다면 세례를 주면 안 됩니다! 교회의 전통을 따라 행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례 안 하셔도 됩니다. 차라리 그냥 성령세례를 구하라고 설교하십시오! 성령세례는 예수님이 주시는 세례입니다.
왜 좋은 세례를 놔두고 자꾸 의식에 불과한 세례를 행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례를 주십니다. 여러분! 교회 세례 안 받아도 됩니다. 예수님 살아계십니다! 성령세례를 구하십시오! 여러분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십니다. 그것이 예수님에 대한 동시에 하나님에 대한 증거가 되며 성경 전체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되지 않겠습니까? 세례는 무엇입니까? 세례라는 것은 ‘넌 씻겨졌어. 넌 지금 죽어도 천국 가’라는 선포이기에 먼저는 죄사함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물론 세례가 구원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구원이 보장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세례는 '넌 지금 죽어도 천국 간다.'는 증표입니다. 내일은 모릅니다. 죽을 때는 모릅니다. 단지 현재 ‘지금 넌 계명대로 살고 있는거야. 네 안에 성령님이 내주하고 계셔'라는 증표로서 영적인 지도자 또는 교회 목사가 세례의식을 행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사람들을 물에 잠기게 했을지 아니면 그냥 물을 머리에 뿌렸는지는 모릅니다. 의식 행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본질은 요단강 곧 예수님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은 자에게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요한에게 죄들을 자백했는데 자백이 어떤 것일까요? 제 고등학교 친구가 어느 날 담배를 피우면서 저에게 와서는 '수련회 때, 회개를 했는데도 담배가 끊어지지 않는다. 그때 내가 회개를 엄청 많이 했는데도 안 되네' 하면서 고민을 말한 적이 있습니다. 많은 회개가 가짜가 많습니다. 왜 가짜가 많냐고요? 그냥 일시적인 감동과 흥분으로 눈물 흘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변화를 초래하지 못합니다. 변화가 동반되지 않는 눈물의 회개는 가짜일 경우가 많습니다. 소위 혼적인 회개이지 영적인 회개는 아닌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도 자기들이 회개했다고 또는 죄 사함 받았다고 세례를 받으러 세례 요한에게 왔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그들에게 세례를 주지 않았습니다. 가짜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독사의 새끼들아!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아주 저주를 퍼 붓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도 신앙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예루살렘에 6천명에 이르는 바리새인들이 있었습니다. 요한은 진실로 회개한 자들에게는 세례를 베풀고 그리고 거짓된 회개자들에게는 세례를 베풀지 않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요단강 근처에 사람들이 모여 왔습니다. 요단강은 무엇입니까? 조그만 시내 입니다. 거기서 죄를 깨닫고 죄에서 회개를 하는 장소입니다.
교회 생활을 많이 하고 신앙생활을 많이 한 사람이 천국 가기가 쉽습니다. 여러분! 신앙이라는 영역에서 오래 있는 사람이 천국가기 쉽습니다. 신앙생활을 왜 오래해야 합니까? 천국 가기 위해서입니다. 말씀생활을 오래 합니다. 기도 생활을 오래 합니다. 회개 생활을 오래 합니다. 중요합니다! 그렇게 오래 신앙생활을 하신 분들 중에 요한이 ‘너는 천국 간다’고 세례를 주는 것입니다. 지금 교회에서 하는 세례들은 대부분 초신자들에게 줍니다. 천국과 거리가 먼 출석교인에게 줌으로써 자신들이 천국에 들어간다는 망상을 심어주어 오히려 천국을 방해하는 신앙의 걸림돌이 되었다는 것을 아십니까?
반면 요한의 세례는 오랜 신앙생활을 해서 죽어도 천국 간다고 확신한 사람 더 나아가서 그 회개의 깊이가 깊은 진짜 회개자에게 요한이 세례를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요한을 보십시오! 요한은 지금 사람들이 오니까 척 보고 다 압니다. '넌 천국 가는구나, 넌 지옥 가는구나.' 압니다. 요한처럼 되어야 합니다. 알기 때문에 세례를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모르면서 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십계명 3계명에서 말씀 드렸죠.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하나님을 대신해서는 안 됩니다. 카톨릭에서는 고해성사를 합니다. 고해성사가 뭡니까? 죄를 자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고해성사를 받습니까? 사제가 합니다. 하나님을 대신합니다. 이것이 미혹입니다. 왜 사제가 합니까? 하나님 밖에는 죄를 사할 수가 없습니다. 죄는 예수님 밖에는 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신부가 하나님을 대신해서 죄 사함을 선포합니다. 이것이 미혹 아닙니까?
여러분도 똑같습니다. 세례도 미혹입니다! 왜 하나님을 대신해서 보이지도 않는데 세례 줍니까? 여러분 그것도 죄입니다. 지옥 갈 사람들에게 세례 주는 것이 큰 죄입니다. 천국에 들어간다는 보장이 없는데 왜 세례를 주어서 본인으로 하여금 '난 세례 교인이야. 난 구원받은 자야' 하고 착각하게 만듭니까? 결국 그것은 그 사람의 지옥행을 더 가속 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해성사를 나쁘다 말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도 지금 똑같이 세례성사를 베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적인 모든 가르침과 그 모든 의식들이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출발되어야 합니다. 저는 그것을 권고합니다. 정말 간절히 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교회에서 세례, 유아세례, 학습, 하나님에게서 나지 않은 모든 것은 인본적인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에게서 나서 세례를 주면 그것은 바른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지금 그런 극빈한 삶을 살면서 하나님 만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에게 하나님 말씀이 임한 것입니다. 목회자 여러분에게 하나님 말씀이 임했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을 아십니까? 이 강해를 보시는 사님들! 하나님을 정말 깊이 만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에게서 온 가르침만 주시고 행하십시오!
저는 목회자 여러분의 사역이 요한처럼 하나님 앞에서 진실 되기를 원합니다. 요한은 깊은 영성가 입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깊은 세계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진실된 세례를 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만 그렇지 않고 카톨릭 고해성사와 같이 의례적으로 세례를 베푼다면 여러분은 미혹이라는 전통을 이어가는 어리석음에 빠진 것입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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