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음교회 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마태복음 1장(거듭남, 성령세례, 마귀시험) 45절 마귀의 두 번째 시험_잘못된 성경해석과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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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그 때 마귀가 그 분을 거룩한 성으로 데려가서 성전 꼭대기에 그 분을 세우고 그 분께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자신을 아래로 던져라. 그 분이 너에 대하여 그 분의 천사들에게 명할 것이며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도록 그들의 손들로 너를 집을 것이다.”라고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마태복음 45절 말씀입니다. ‘그 때’ 그 때는 지금 예수님께서 첫 번째 시험을 통과한 그 때죠. ‘빵이 되게 하라’는 마귀의 시험에서 예수님께서는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라.’ 하고 이제 우리 영에 순종의 삶을 강조함으로 시험을 통과한 ‘그 때’입니다. 1차 시험을 통과한 ‘그 때’ 마귀의 시험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마귀가 그 분을 거룩한 성전에 데려가서’ 성전이면 종교적인 것, 꼭대기니까 ‘종교적으로 높을 상태’를 의미하고 이것은 소위 말씀대로 잘 살던 사람 1차 시험을 통과해서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서 상당히 올라가 있는 상태 목사이든지 장로이든지 신학 교수이든지 영적으로 선지자든지 어떤 높이 올라간 상태를 말합니다.
두 번째 시험이 무엇이냐 하면 성경 해석 및 성경 적용의 시험입니다. 우리가 성경 해석과 적용의 시험에서 무너지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성경을 연구한다 해서 성경을 배운다고 해서 시험에서 벗어났다? 아닙니다. 두 번째 시험이 있는 것입니다.
아주 옛날 일이죠. 비가 많이 오면 시골 같은 경우에 물이 불어나면 개천이 넘쳤습니다. 지금 같으면 다리가 있었을 텐데 그 때는 다리가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럴 때는 비가 오면 하루, 이틀, 이렇게 있어야 되니까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했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 위를 걸을지어다!” 하고 물위를 걷습니다. 그리고 죽었습니다. 어디서 들은 얘기는 있고 성경은 알고 그러니까 죽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옛날에는 ‘새마을 운동’이라고 해서 공사를 많이 했고 그 공사를 위해서 쌓아놓은 흙무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 흙이 자기 집 앞에 이렇게 크게 쌓아져 있으니까 부담되고 해서 이제 명합니다. ‘네가 무엇을 명해도 태산을 옮긴다.’고 했기 때문에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한다! 이 앞에 태산은 없어져라!” 여러분 그런 일들 많았습니다. 그런다고 그것이 없어집니까? 없어지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내가 알고 있는 말씀, 깨달은 말씀, 은혜 받은 말씀 가지고 적용시키는데 아무데나 막 쓰는 것입니다. 가끔 기도원에서도 이런 일들이 있지요.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재판에서 승리할지어다.” 여러분 재판 승리하고 안하고는 판사가 합니다. 그것은 판사가 하는 것이고 우리는 회개하면 되는 것입니다. 어떤 곳에서는 또 기도하는데 있어서 안찰을 많이 합니다. 원래 성경에는 안찰이 없습니다. 귀신 쫓는다면서 그 상대방을 귀신과 동일시해서 때려죽입니다. 그런 것들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자기 아들이 죽어 가는데 병원에 데려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기도합니다. 아들이 죽습니다. 신문에 난 사건입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가족이 죽었는데 다시 부활할 것을 믿고 죽은 시체를 향해서 계속 기도하다가 온 집안에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을 하고 결국엔 신고 당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사례들이 한도 끝도 없습니다.
20년 전입니다. 저에게 오셨던 분 중에 저의 기도를 통해서 병이 여러 번 나은 분이 계셨었는데 그 분은 몸의 골격이 타고난 거인 스타일이었습니다. 몸체도 크고 신체도 튼튼한 분이었습니다. 그 분의 나이가 그 때 당시 60직전의 나이셨는데 어느 날 저에게 오더니 가슴이 아프시다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 분의 가슴에 손을 얹는 순간 하나님께서 ‘빨리 병원에 가보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위험하니까 빨리 병원에 가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급하다’고 하셨는데 그 후 1주일이 지났습니다. 길을 가다가 그 분의 부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저씨의 안부를 묻자 부인께서 하시는 말이 며칠 전에 돌아가셨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알고 깨달은 말씀만의 하나님이 아니신 것을 아셔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깨달은 말씀에만 몰두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깨닫지 못한 부분의 영역에서는 이해를 못합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말씀의 하나님으로 한정시킵니다. 하나님은 넓습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로마서 한 장’읽고 하나님을 이해합니다. 하나님을 ‘갈라디아서 한 장’읽고 이해합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하나님 말씀 전체를 다 이해하고 들어가야 하는데 하나님 말씀을 국부적으로 알고 들어가기 때문에 미혹이 된다는 것입니다.
부자 청년의 이야기 하나만 가지고도 저와 여러분의 목사님의 말씀을 한 번 비교해 보십시오! 성경의 해석이 얼마나 다른가를 비교해 보십시오!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나아올 때 이렇게 말합니다. “선한 선생님! 내가 무엇을 행해야 영생을 얻으리까?”가 나옵니다. 이제 이것을 가지고 여러분 목사님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미친 자식 어떻게 행함으로 구원 받는다고 생각해. 여러분 부자 청년이 행함으로 구원 받는다고 나옵니다. 여러분 말이 됩니까?”하고 여러분의 목사님은 설명합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부자 청년이 ‘무엇을 행해야 영생을 얻으리이까?“하고 나왔을 때 ’생명에 들어가려면‘하고 예수님이 답을 하십니다. 생명은 이 땅의 천국입니다. 생명은 예수 안입니다. 복음 안입니다. ’생명에 들어가려면‘ 예수님은 아주 정확하게 말씀 하십니다.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느냐? 계명들을 지켜라‘입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예수님 말씀이 진리인 것‘ 아시죠? 예수님 말씀은 한 말씀도 거짓이 없습니다. 생명 안에 있다가 죽으면 영생에 들어갑니다. 영생은 천국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예수 안에 들어가면 생명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날 믿어라? 아닙니다. 계명들을 지켜라입니다. 그러니까 부자 청년이 “예수님! 나는 계명들을 다 지켰습니다. ” 예수님께서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 하지 말라. 거짓증언 하지 말라” 그러니까 부자 청년이 “예수님! 제가 어릴 때부터 다 지켰습니다.” 지금 이 청년은 조건이 됩니까? 안됩니다. 지금 4가지 계명을 예수님이 말씀하셨는데 청년은 이것을 다 지켰습니다. 구원이 안 됩니다. 왜 안 되느냐 그 다음 구절이 예수님 말씀입니다. 네가 온전케 되고자 할진대 ‘너 계명들을 지켰니? 너! 더 지켜야 돼’ 이 말입니다. 온전하다가 무엇이냐 하면 ‘온전하다는 것은 완전한 모든 것’을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네가 지금 계명을 지켰는데 덜 지켰어. 온전히 지켜야 하는데 그러려면 네 재산을 팔아서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라’ 이 말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10번째 계명입니다.
10번째 계명대로 살기가 참 어렵습니다. ‘탐내지 말라’ 예수님께서는 부자 청년에게 10번째 계명을 돌려서 그리고 실제적으로 말씀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말씀은 ‘그러면 하늘에서 너의 상이 많을 것이며 그리고서 나를 따르라’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그냥 ‘예수님 믿어요.’ 그것은 아닙니다.
10번째 계명인 ‘탐심 죄’에서 벗어나야만 여러분의 영이 예수님을 따를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십계명 가운데 10번째 계명까지를 다 못 지키면 생명 곧 예수 안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서 생명 안에 들어가야만 영생 안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가르치는 성경해석입니다.
성경은 두 파트인데 복음입니다. 복음은 천국으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왕국의 복음’이라고 말씀 드렸지요. 복음은 구약과 신약으로 되어 있습니다. 구약은 성결의 복음입니다. 구약을 압축하면 모세오경입니다. 모세오경을 압축하면 십계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결의 복음을 통과할 때 계명을 준수함으로 생명에 들어갑니다.
성결의 복음을 통과하면 신약인데 ‘속죄의 복음’입니다. 이 속죄의 복음이 생명입니다. 생명에 들어간 자에 한하여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곧 속죄를 적용시키시고 영생의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알고 있는 성경해석과 저와는 많은 성경해석의 괴리감이 있습니다.
저처럼 설교하는 곳이 한 군데도 없습니다. 부자 청년의 얘기를 저처럼 설교하는 곳이 한 군데도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마귀 때문입니다. ‘디아볼로’ 원어로 ‘디아볼로’가 마귀입니다. ‘디아볼로’가 여러분을 지옥으로 끌고 가기 위해서 말씀에 대해서 잘못 해석하게 하는 것이고 말씀을 잘못 적용하게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예수님께 와서 말씀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적용시킵니다. ‘뛰어 내려라!’ 죽습니다! 마귀가 만들어 놓은 말씀해석의 덫에 걸리면 죽는 것입니다. 죽으면 지옥입니다. 지금도 두 번째 시험을 만나고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두 번째 시험에 걸리면 지옥에 들어갑니다. 마치겠습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45절 말씀입니다. ‘그 때’ 그 때는 지금 예수님께서 첫 번째 시험을 통과한 그 때죠. ‘빵이 되게 하라’는 마귀의 시험에서 예수님께서는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라.’ 하고 이제 우리 영에 순종의 삶을 강조함으로 시험을 통과한 ‘그 때’입니다. 1차 시험을 통과한 ‘그 때’ 마귀의 시험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마귀가 그 분을 거룩한 성전에 데려가서’ 성전이면 종교적인 것, 꼭대기니까 ‘종교적으로 높을 상태’를 의미하고 이것은 소위 말씀대로 잘 살던 사람 1차 시험을 통과해서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서 상당히 올라가 있는 상태 목사이든지 장로이든지 신학 교수이든지 영적으로 선지자든지 어떤 높이 올라간 상태를 말합니다.
두 번째 시험이 무엇이냐 하면 성경 해석 및 성경 적용의 시험입니다. 우리가 성경 해석과 적용의 시험에서 무너지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성경을 연구한다 해서 성경을 배운다고 해서 시험에서 벗어났다? 아닙니다. 두 번째 시험이 있는 것입니다.
아주 옛날 일이죠. 비가 많이 오면 시골 같은 경우에 물이 불어나면 개천이 넘쳤습니다. 지금 같으면 다리가 있었을 텐데 그 때는 다리가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럴 때는 비가 오면 하루, 이틀, 이렇게 있어야 되니까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했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 위를 걸을지어다!” 하고 물위를 걷습니다. 그리고 죽었습니다. 어디서 들은 얘기는 있고 성경은 알고 그러니까 죽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옛날에는 ‘새마을 운동’이라고 해서 공사를 많이 했고 그 공사를 위해서 쌓아놓은 흙무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 흙이 자기 집 앞에 이렇게 크게 쌓아져 있으니까 부담되고 해서 이제 명합니다. ‘네가 무엇을 명해도 태산을 옮긴다.’고 했기 때문에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한다! 이 앞에 태산은 없어져라!” 여러분 그런 일들 많았습니다. 그런다고 그것이 없어집니까? 없어지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내가 알고 있는 말씀, 깨달은 말씀, 은혜 받은 말씀 가지고 적용시키는데 아무데나 막 쓰는 것입니다. 가끔 기도원에서도 이런 일들이 있지요.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재판에서 승리할지어다.” 여러분 재판 승리하고 안하고는 판사가 합니다. 그것은 판사가 하는 것이고 우리는 회개하면 되는 것입니다. 어떤 곳에서는 또 기도하는데 있어서 안찰을 많이 합니다. 원래 성경에는 안찰이 없습니다. 귀신 쫓는다면서 그 상대방을 귀신과 동일시해서 때려죽입니다. 그런 것들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자기 아들이 죽어 가는데 병원에 데려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기도합니다. 아들이 죽습니다. 신문에 난 사건입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가족이 죽었는데 다시 부활할 것을 믿고 죽은 시체를 향해서 계속 기도하다가 온 집안에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을 하고 결국엔 신고 당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사례들이 한도 끝도 없습니다.
20년 전입니다. 저에게 오셨던 분 중에 저의 기도를 통해서 병이 여러 번 나은 분이 계셨었는데 그 분은 몸의 골격이 타고난 거인 스타일이었습니다. 몸체도 크고 신체도 튼튼한 분이었습니다. 그 분의 나이가 그 때 당시 60직전의 나이셨는데 어느 날 저에게 오더니 가슴이 아프시다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 분의 가슴에 손을 얹는 순간 하나님께서 ‘빨리 병원에 가보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위험하니까 빨리 병원에 가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급하다’고 하셨는데 그 후 1주일이 지났습니다. 길을 가다가 그 분의 부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저씨의 안부를 묻자 부인께서 하시는 말이 며칠 전에 돌아가셨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알고 깨달은 말씀만의 하나님이 아니신 것을 아셔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깨달은 말씀에만 몰두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깨닫지 못한 부분의 영역에서는 이해를 못합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말씀의 하나님으로 한정시킵니다. 하나님은 넓습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로마서 한 장’읽고 하나님을 이해합니다. 하나님을 ‘갈라디아서 한 장’읽고 이해합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하나님 말씀 전체를 다 이해하고 들어가야 하는데 하나님 말씀을 국부적으로 알고 들어가기 때문에 미혹이 된다는 것입니다.
부자 청년의 이야기 하나만 가지고도 저와 여러분의 목사님의 말씀을 한 번 비교해 보십시오! 성경의 해석이 얼마나 다른가를 비교해 보십시오!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나아올 때 이렇게 말합니다. “선한 선생님! 내가 무엇을 행해야 영생을 얻으리까?”가 나옵니다. 이제 이것을 가지고 여러분 목사님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미친 자식 어떻게 행함으로 구원 받는다고 생각해. 여러분 부자 청년이 행함으로 구원 받는다고 나옵니다. 여러분 말이 됩니까?”하고 여러분의 목사님은 설명합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부자 청년이 ‘무엇을 행해야 영생을 얻으리이까?“하고 나왔을 때 ’생명에 들어가려면‘하고 예수님이 답을 하십니다. 생명은 이 땅의 천국입니다. 생명은 예수 안입니다. 복음 안입니다. ’생명에 들어가려면‘ 예수님은 아주 정확하게 말씀 하십니다.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느냐? 계명들을 지켜라‘입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예수님 말씀이 진리인 것‘ 아시죠? 예수님 말씀은 한 말씀도 거짓이 없습니다. 생명 안에 있다가 죽으면 영생에 들어갑니다. 영생은 천국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예수 안에 들어가면 생명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날 믿어라? 아닙니다. 계명들을 지켜라입니다. 그러니까 부자 청년이 “예수님! 나는 계명들을 다 지켰습니다. ” 예수님께서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 하지 말라. 거짓증언 하지 말라” 그러니까 부자 청년이 “예수님! 제가 어릴 때부터 다 지켰습니다.” 지금 이 청년은 조건이 됩니까? 안됩니다. 지금 4가지 계명을 예수님이 말씀하셨는데 청년은 이것을 다 지켰습니다. 구원이 안 됩니다. 왜 안 되느냐 그 다음 구절이 예수님 말씀입니다. 네가 온전케 되고자 할진대 ‘너 계명들을 지켰니? 너! 더 지켜야 돼’ 이 말입니다. 온전하다가 무엇이냐 하면 ‘온전하다는 것은 완전한 모든 것’을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네가 지금 계명을 지켰는데 덜 지켰어. 온전히 지켜야 하는데 그러려면 네 재산을 팔아서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라’ 이 말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10번째 계명입니다.
10번째 계명대로 살기가 참 어렵습니다. ‘탐내지 말라’ 예수님께서는 부자 청년에게 10번째 계명을 돌려서 그리고 실제적으로 말씀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말씀은 ‘그러면 하늘에서 너의 상이 많을 것이며 그리고서 나를 따르라’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그냥 ‘예수님 믿어요.’ 그것은 아닙니다.
10번째 계명인 ‘탐심 죄’에서 벗어나야만 여러분의 영이 예수님을 따를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십계명 가운데 10번째 계명까지를 다 못 지키면 생명 곧 예수 안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서 생명 안에 들어가야만 영생 안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가르치는 성경해석입니다.
성경은 두 파트인데 복음입니다. 복음은 천국으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왕국의 복음’이라고 말씀 드렸지요. 복음은 구약과 신약으로 되어 있습니다. 구약은 성결의 복음입니다. 구약을 압축하면 모세오경입니다. 모세오경을 압축하면 십계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결의 복음을 통과할 때 계명을 준수함으로 생명에 들어갑니다.
성결의 복음을 통과하면 신약인데 ‘속죄의 복음’입니다. 이 속죄의 복음이 생명입니다. 생명에 들어간 자에 한하여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곧 속죄를 적용시키시고 영생의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알고 있는 성경해석과 저와는 많은 성경해석의 괴리감이 있습니다.
저처럼 설교하는 곳이 한 군데도 없습니다. 부자 청년의 얘기를 저처럼 설교하는 곳이 한 군데도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마귀 때문입니다. ‘디아볼로’ 원어로 ‘디아볼로’가 마귀입니다. ‘디아볼로’가 여러분을 지옥으로 끌고 가기 위해서 말씀에 대해서 잘못 해석하게 하는 것이고 말씀을 잘못 적용하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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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그리고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에 해변, 가버나움으로 가서 사셨는데,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 요단 건너 바다 길, 이방의 갈릴리, 어두움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으며, 죽음의 나라와 그늘에 앉은, 그들에게 빛이 비취었다”라고 말하며 선포된 것이 성취되기 위함입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51절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으신 다음에 유대 광야에 가셔서 마귀의 세 가지 시험을 이기시고, 유대 예루살렘에 가지 않으시고, 갈릴리로 가셨는데, 나사렛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떠나신 것입니다. 떠나서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의 해변’ 갈릴리 호수 좌편이 납달리고, 납달리 바로 아래 지역이 스불론입니다. ‘가버나움으로 가서 사셨는데’ 가버나움은 갈릴리 호수 인접 지역, 바로 옆에 있는 동네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이사야가 예수님을 가장 많이 묘사했다고 말씀 드렸었죠.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 요단 건너 바다 길, 이방의 갈릴리’ 이방의 갈릴리, 지금 여기서 갈릴리를 이방이라 부릅니다. 누가? ‘이사야’가, 굉장히 심각한 것입니다. 지금 ‘갈릴리’를 ‘이방이다’라고 부르는 것은 굉장히 심각함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범죄할 때, 그들을 쫓아내시고, 여전히 구전된 말씀을 통해서, 말씀이 증거 되는데, 아벨은 대표적인 사람이죠. 제사를 드린 사람이고, 아벨이 가인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다시, 셋을 통해서 하나님 백성이 이어지는데, 그 때는 1,000살을 한계로 해서 900세 이상을 다 산 사람들이죠. 근데 하나님의 백성의 수가 자꾸 줄어 드는 것이예요. 사람 숫자는 늘어나는데, 하나님의 백성은 줄어드는 거예요. 심지어 노아 때에 와서는 아무도 없어요. 하나님께서 이제 방법을 쓰셨는데, 노아 가족만 남겨두고 자기 백성이 아닌 사람들을 다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 홍수가 일어 납니다. 노아 가족만 살아남고 전 지구의 모든 것이 다 죽었습니다.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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