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마태복음 1장(거듭남, 성령세례, 마귀시험) 2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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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장(거듭남, 성령세례, 마귀시험) 26절
26. 그러자 그가 일어나 아기와 그 분의 어머니를 데려가서 이스라엘 땅으로 왔습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26절입니다. ‘그러자’ 지금 요셉의 꿈에서 ‘너! 이제 헤롯이 죽었으니까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라’라는 말을 들었고 때는 밤입니다. ‘그가’ 그는 요셉입니다. 요셉은 ‘일어나 아기와 그 분의 어머니를 데려가서’ 그 분의 어머니는 마리아입니다. 마리아를 데려가서 이스라엘 땅으로 옵니다. 꿈 그대로 요셉은 순종했습니다. 이스라엘 땅은 말씀 드렸듯이 이것은 구원이 어느 정도 확보된 장소인데 이스라엘 땅으로 갔을 때 아기는 성장합니다.
영에서도 영아기와 유아기가 있고 유년기와 소년기가 있습니다. 청년기가 있습니다. 영이 성장하는데 영아기 때 많은 성장이 일어나죠. 다시 그것을 넘어서면 지금처럼 이스라엘 땅으로 오는 안정된 상태가 됩니다. 이때가 언제일까요? 제 개인적인 사견으로는 유년기로 이해합니다. 유년기 때가 된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영의 연령이 좀 안정된 상태가 성장기입니다. 유년기는 이런 성장에 돌입하는 첫 번째 시작을 말합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땅으로 왔다는 것은 실족의 시기를 넘겼다는 것이며 이제부터는 성장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스라엘 땅’하면 하나님의 임재를 말하며, 안락함이나 안정됨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땅은 안정된 장소가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영이 성장하려면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데 하나님을 만나는데 있어서 가장 큰 적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육이 잘 되는 것입니다. 아이러니 하죠. ‘영혼이 잘됨과 같이 범사가 잘되며’ 이 말씀을 사람들이 좋아하는데 다 미혹된 것입니다. 우리가 배부르면 하나님을 안 찾습니다. 우리 인간은 육이 고통스러워야 하나님을 찾게 되고 만나게 됩니다.
야곱의 자식들이 이집트의 아주 비옥한 평야 고센 땅에 들어갑니다. 고센 땅에 들어가면서부터 400년 동안 하나님이 안 나타나십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이집트는 세계 문명의 최고봉입니다. 그리고 이집트 왕은 요셉과 야곱의 후예들에게 굉장히 잘 대해 주었습니다. 가장 좋은 땅을 주었고, 요셉의 통치로 이집트가 부흥했기 때문입니다. 파라오는 애굽 왕의 이름이죠. 그러다가 새로운 파라오, 즉 옛날을 기억하지 못하는 새로운 왕이 등장해서 드디어 이스라엘 자손들을 학대합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왜 부르짖습니까? 고통이 왔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고통이 오는 것은 영적인 세계에서는 굉장한 축복입니다.
인생에서 고난이 온다? 고통이 온다? 영의 세계에서는 엄청난 기회인 것입니다. 그 때 드디어 모세를 통하여서 이스라엘이 건짐 받고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라는 어마어마한 장르의 그런 영적인 부흥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이때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 간 다음에 귀환되는 장면이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그 다음 400년이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왜 안 나올까요? 똑같습니다. 이집트 문명이 너무나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을 수 있는 것과 같이, 그리스 문명은 굉장히 인본적이며 헬라 문명은 현재 우리가 누리는 문명의 기초가 됩니다. 그리스 사상, 그리스의 수학, 그리스의 의학, 그리스의 철학,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많은 것의 근간이 그리스에 뿌리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가 등장합니다. 로마는 다른 문명입니다. 그리스가 인격적이고 철학적인 문명이라고 한다면 로마 문명은 잔인합니다. 군인 문화입니다. 로마는 정복국가입니다.
그 때부터 고통이 시작됩니다. 이스라엘에서 BC 37년 전부터 고통이 옵니다. 다시 메시아 사상이 부각됩니다. 메시아 사상이 막 움터 오를 때 그 배경이 로마로부터의 잔인한 핍박 때문입니다. 로마는 그리스와는 달리 세금을 많이 거둬들였고 무참하게 사람을 살상하기도 합니다. 이런 고통이 왔을 때 주님이 그곳에서 탄생하신 것입니다. 그 다음에 등장된 헤롯이 있는데, 헤롯은 아주 무지막지합니다. 영아들을 살해한 헤롯은 건축가이면서 지략가인 반면에 엄청나게 무자비 합니다. 이스라엘 땅은 가나안 땅이지만, 환경이 좋은 땅은 아닙니다.
성경을 잘 보십시오!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해서 낙심하지 마십시오. 천국 가는 사람들은 다 어려웠던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이 상황적인 어려움을 당할 때에 그 어려움을 비관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에게 상황적인 축복이 임하면 절대 여러분의 영은 성장하지 않습니다. 영이 성장하려면 반드시 상황적인 어려움이 필요합니다.
지금 요셉과 마리아가 이스라엘 땅으로 왔는데 이 땅에 왔다는 것은 편해졌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날 상태가 되었다는 것인데 만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는 상황적인 어려움이 따릅니다. 영이 성장하면서 유년기, 소년기, 청년기가 지나갑니다. 그리고 장년기가 됩니다. 이런 영의 성장을 통해서 야곱처럼 엘리야처럼 다윗처럼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처럼 영이 성장했을 때 하나님을 만나는 깊이가 깊어집니다. 그리고 육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영에 속한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황적인 축복을 구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그것이 진정한 축복입니다. 우리가 얻어내야 할 축복은 외적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얻을 축복은 영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 우리는 충만함을 소유하게 됩니다. 진정된 행복을 소유하게 됩니다. 최종적으로는 건강도 소유하게 됩니다. 마치겠습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26절입니다. ‘그러자’ 지금 요셉의 꿈에서 ‘너! 이제 헤롯이 죽었으니까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라’라는 말을 들었고 때는 밤입니다. ‘그가’ 그는 요셉입니다. 요셉은 ‘일어나 아기와 그 분의 어머니를 데려가서’ 그 분의 어머니는 마리아입니다. 마리아를 데려가서 이스라엘 땅으로 옵니다. 꿈 그대로 요셉은 순종했습니다. 이스라엘 땅은 말씀 드렸듯이 이것은 구원이 어느 정도 확보된 장소인데 이스라엘 땅으로 갔을 때 아기는 성장합니다.
영에서도 영아기와 유아기가 있고 유년기와 소년기가 있습니다. 청년기가 있습니다. 영이 성장하는데 영아기 때 많은 성장이 일어나죠. 다시 그것을 넘어서면 지금처럼 이스라엘 땅으로 오는 안정된 상태가 됩니다. 이때가 언제일까요? 제 개인적인 사견으로는 유년기로 이해합니다. 유년기 때가 된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영의 연령이 좀 안정된 상태가 성장기입니다. 유년기는 이런 성장에 돌입하는 첫 번째 시작을 말합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땅으로 왔다는 것은 실족의 시기를 넘겼다는 것이며 이제부터는 성장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스라엘 땅’하면 하나님의 임재를 말하며, 안락함이나 안정됨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땅은 안정된 장소가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영이 성장하려면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데 하나님을 만나는데 있어서 가장 큰 적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육이 잘 되는 것입니다. 아이러니 하죠. ‘영혼이 잘됨과 같이 범사가 잘되며’ 이 말씀을 사람들이 좋아하는데 다 미혹된 것입니다. 우리가 배부르면 하나님을 안 찾습니다. 우리 인간은 육이 고통스러워야 하나님을 찾게 되고 만나게 됩니다.
야곱의 자식들이 이집트의 아주 비옥한 평야 고센 땅에 들어갑니다. 고센 땅에 들어가면서부터 400년 동안 하나님이 안 나타나십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이집트는 세계 문명의 최고봉입니다. 그리고 이집트 왕은 요셉과 야곱의 후예들에게 굉장히 잘 대해 주었습니다. 가장 좋은 땅을 주었고, 요셉의 통치로 이집트가 부흥했기 때문입니다. 파라오는 애굽 왕의 이름이죠. 그러다가 새로운 파라오, 즉 옛날을 기억하지 못하는 새로운 왕이 등장해서 드디어 이스라엘 자손들을 학대합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왜 부르짖습니까? 고통이 왔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고통이 오는 것은 영적인 세계에서는 굉장한 축복입니다.
인생에서 고난이 온다? 고통이 온다? 영의 세계에서는 엄청난 기회인 것입니다. 그 때 드디어 모세를 통하여서 이스라엘이 건짐 받고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라는 어마어마한 장르의 그런 영적인 부흥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이때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 간 다음에 귀환되는 장면이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그 다음 400년이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왜 안 나올까요? 똑같습니다. 이집트 문명이 너무나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을 수 있는 것과 같이, 그리스 문명은 굉장히 인본적이며 헬라 문명은 현재 우리가 누리는 문명의 기초가 됩니다. 그리스 사상, 그리스의 수학, 그리스의 의학, 그리스의 철학,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많은 것의 근간이 그리스에 뿌리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가 등장합니다. 로마는 다른 문명입니다. 그리스가 인격적이고 철학적인 문명이라고 한다면 로마 문명은 잔인합니다. 군인 문화입니다. 로마는 정복국가입니다.
그 때부터 고통이 시작됩니다. 이스라엘에서 BC 37년 전부터 고통이 옵니다. 다시 메시아 사상이 부각됩니다. 메시아 사상이 막 움터 오를 때 그 배경이 로마로부터의 잔인한 핍박 때문입니다. 로마는 그리스와는 달리 세금을 많이 거둬들였고 무참하게 사람을 살상하기도 합니다. 이런 고통이 왔을 때 주님이 그곳에서 탄생하신 것입니다. 그 다음에 등장된 헤롯이 있는데, 헤롯은 아주 무지막지합니다. 영아들을 살해한 헤롯은 건축가이면서 지략가인 반면에 엄청나게 무자비 합니다. 이스라엘 땅은 가나안 땅이지만, 환경이 좋은 땅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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