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음교회 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마태복음 2장(산상수훈) 7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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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하늘들에서 너희의 상이 많으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너희 전에 선지자들을 이렇게 핍박하였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70절 말씀입니다. ‘하늘들에서’ 하늘들은 천국이죠. 복수로 쓰여집니다. 단수는 그냥 우리가 보는 하늘을 말하고, 복수는 영적인 하늘, 천국을 말합니다. ‘하늘들에서’라는 말은 ‘하늘들의 왕국에서’의 단축형입니다. 성경은 항상 단축형으로 쓴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선지자’라는 개념을 예수님께서 등장 시키십니다. 이 선지자는 미래를 예언하는 것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선지자가 성경에 많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누가 봐도 선지자가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이집트에 갔을 때, 아비멜렉의 꿈을 통해서 ‘그는 내 선지자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내 선지자야! 건들지 마!’하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지자라고 부릅니다.
다윗은 왕이면서 선지자였는데, 다윗이 나단 선지자가 나타났을 때, ‘나도 급수가 선지자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갓 선지자가 나타났을 때도, ‘나도 급수가 얼마나 높은 줄 알아!’ 하지 않고, 갓 선지자의 말을 듣죠. 나중에 사도행전을 보니까 베드로가 다윗을 가리켜 ‘선지자’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왕이면서 선지자인데도, 다른 선지자의 말을 듣습니다.
선지자는 예언하는 사람을 의미하지 않은 것이, 다니엘도 보니까 다니엘은 국무총리이죠. 페르시아의 국무총리인데, 다니엘은 자기가 ‘선지자’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선지자’입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을 대선지자라 부릅니다. 소선지자도 있죠. 12선지자가 있죠.
예수님 당시에도 세례 요한이 있지요. 세례 요한도 ‘내가 선지자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백성들이 선지자로 여기지요. 예수님이 세례요한을 ‘선지자’라고 말하죠. 예수님 탄생 하실 때, 안나 선지자라고 있죠. 아주 오래 장수한, 안나 선지자가 자기를 ‘선지자’라고 생각 했습니까? 그냥 성전에서 84년 동안 금식하고 기도 한 사람인데, 누가 봐도 일반 사람이겠지요.
선지자는 하나님과 너무 친밀해서, 하나님의 비밀을 아는 상태의 영적인 높은 수준의 신앙인을 말합니다. 그것을 이해해야만 오늘 말씀을 이해 하실 수 있습니다. ‘선지자’를 이해해야만 여러분이 앞으로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선지자입니까? 아닙니다. 성경을 집필한 솔로몬도 선지자는 아닙니다. ‘왜? 영적으로 깊지 않으니까!’ 하나님과 친밀함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압니다. 롯을 구출합니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과 친밀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선지자에게 먼저 보이시고, 그리고 행할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구약에서 선지자들이 예수님을 다 예언했지요. 출생장소, 예수님의 삶, 십자가를 예언 했지요. 그런데 예수님이 딱 나타났는데, 아무도 예수님을 예수님이라고 하지 않아요. 그런데 딱 한 명이 예수님을 메시야 곧 그리스도로 인식합니다. 누굽니까? 세례 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을 통해서, 그 친밀함을 통해서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친척이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 성경에서 말하는 진리들은 하나님을 통해서 아는 것입니다. ‘베들레헴 출신 입니까?’ ‘혹시? 다윗 계통입니까?’ 하고 연구해서, 세례 요한이 확인 한 다음에 ‘동정녀에 의해 탄생되셨습니까?’ 하고, 연구해서 예수님을 알아낸 것이 아닙니다.
중요합니다! 선지자는 학문적으로 배우고 익혀서 어떤 진리를 깨달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통해서, 그냥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안보이시죠. 그런데 하나님과 친밀해 지면, 하나님의 비밀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그 비밀을 사람들에게 말하는데, 때로는 미래를 말하기도 하고, 때로는 현재를 알게 되기도 하는데, 예수님 당시에 모든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못 알아봤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알아봅니다.
예수님 당시에 많은 종교 지도자들이 지옥 갔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는 어떤 일이 일어 날까요?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거의 대부분 지옥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가끔씩 ‘목사나, 교황, 추기경, 이런 사람들이 지옥에 있다’는 얘기들이 많이 나오죠.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을 모르고도 우리는 얼마든지 선지자 노릇을 할 수가 있고, 목회 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지식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과거에도 제사장이 있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홉니와 비느하스 지옥 갔지요! 엘리 지옥 갔지요! 제사장이라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요. ‘선지자’는 천국에 상이 많은 사람이 ‘선지자’입니다. 이 땅에서는 하나님과 너무 친밀해서 비밀을 알 정도의 수준이고, 죽은 다음에는 하늘의 상이 많은 사람이 ‘선지자’입니다.
이런 선지자를 어떻게 합니까? 배척합니다. 언제? ‘아벨부터 선지자들의 흘린 피가’, 과거 구약의 역사 가운데, 선지자들을 항상 핍박을 했습니다. 누가? ‘이스라엘 백성’이 선지자들을 핍박했습니다. 모든 선지자들이 핍박 당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핍박 당했습니다. 대선지자 이사야도 마찬가지인데, 웃시야 때는 이사야가 궁중 선지자로서 왕의 인정을 받아서 국가로부터 월급을 받았겠지요. 히스기야 왕도 이사야를 어느 정도 인정했습니다. 히스기야가 죽은 다음에 므낫세가 왕이 되었지요. 므낫세가 나중에 이사야를 톱으로 썰어 죽입니다.
선지자들도 대부분 순교당합니다. 예레미야 당시, 사람들이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불렀습니까? 아닙니다. 예레미야를 백성들이 거짓 선지자라고 불렀습니다. 항상 거짓 선지자들이 오히려 득세를 많이 했습니다. 엘리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엘리야 때도 아합 왕이 엘리야를 선지자라고 보았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아합 왕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엘리야를 선지자로 보았으면, 엘리야가 왜 싸웠겠습니까? 선지자로 인식한 것은 하나님이 인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엘리야를 선지자로 인식을 한 것이지, 엘리야가 ‘나! 선지자야!’ 하지 않았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이나 아합이나 이세벨은 ‘넌! 거짓 선지자야!’하고, 엘리야를 미워했지요. 엘리야가 로뎀 나무 아래로 갔지요. 선지자란 칭호를 주는 것은 사람도 아니고, 자기 자신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너는 내 선지자야!’라고 부른 것입니다.
부자와 나사로 비유를 아실 것입니다. 부자와 나사로가 둘 다 죽었습니다. 그리고 부자는 지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나사로는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부자는 자기가 평생 살면서, 천국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아느냐고요? 부자는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부자가 물 한 방울이라도 떨어뜨려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구렁이 있어서 못 간다고 했죠. 그럴 때, 부자가 이런 말을 합니다. ‘아브라함이여! 내 형제 다섯이 있습니다. 다섯이 누구일까요? 지옥으로 떨어지게 되기 때문에, 지금 부자가 다섯 명을 위해 탄원하는 것입니다. 다섯 명이 자신들이 지옥간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절대 안 합니다!
여러분! 유대인들은 선민 사상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결코 자기가 지옥 간다는 생각을 꿈에도 하지 않습니다. 지금 여러분과 똑같습니다. 지금도 크리스쳔들은 자기가 지옥 간다고 꿈에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유대인들 사회 속에 계시가 없었겠습니까? 은사가 없겠습니까? 교리가 없겠습니까? 꿈에도 생각 안 합니다. 그런데 부자는 자기 형제 다섯이 지옥 갈 이유를 압니다. 왜? 여러분! 천국 지옥 가면 이것이 다 보입니다.
여러분이 저희 블로그나 홈페이지를 자주 오다가 죽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죽으면 압니다. 아! 저희교회가 ‘참 선지자구나!’ 그 때 알게 됩니다. 와! 지옥 와보니까, 누가 참인지 거짓인지 알게 됩니다. 지금 부자가 지옥에서, 자기 형제 다섯이 지옥에 오게 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다시 살아서 그들을 전도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천국 간다고 믿고 있는 크리스쳔들 곧 형제들을 위해서 부자가 탄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사로가 살아나서 전도하면 그들이 천국 갈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죽은 자가 살아나서 말한다 할찌라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 다음의 말이 중요합니다. “너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 곧 모세와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자가 살아난다해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세와 선지자는 구약을 말합니다.
구약시대 선지자들이 인정을 받았습니까? 아닙니다. 대부분 참수 당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지요. ‘선지자들을 죽인 자들이여! 누굽니까? 당시 지도자들을 향해서, ’너희가 지금 누구인 줄 아느냐?‘
‘선지자들을 죽인 자들의 후예야’. 다시 말하면 예수님 당시에나, 구약이나, 지금이나, 선지자들을 항상 죽이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중요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아주 친밀하여 영적인 고수가 되면, 사람들이 ‘아! 그런 사람 진짜 선지자야!’라고 알아주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모세를 거부하는 것이고, 여러분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으면 선지자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천국 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한데, 첫 번째로는 율법적인 삶입니다. 두 번째로는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여러분은 천국에 들어 갈 수 없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이 두 가지인데, 율법대로 삶을 살아야 하며,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느니라’라는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말씀이 여러분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임을 아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팔복’다음에, 예수님을 위한 삶, 다음에 마지막으로 ‘자! 이제 너희 신앙이 많이 성장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 선지자가 되는 것이란다’. 이런 말씀입니다. ‘선지자들은 이 땅에서 핍박을 당했어. 종교 지도자들에게! 하지만 하늘에는 상이 어마어마해! 그러니까 너희들은 기뻐하고 즐거워해!’ 이런 것입니다.
신앙세계에서 최고봉은 ‘선지자’이며, 신앙세계에서 최악은 ‘거짓 선지자’가 되는 것입니다. 두 가지가 다 기독교라는 카테고리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교계는 두 가지가 항상 싸웁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워지는 말세지말이 되면, 누가 더 옳게 보일까오? 거짓 선지자가 옳게 보입니다. 그리고 참이 나쁘게 보입니다. 반대로 시대가 경건해서, 하나님의 영이 충만할 때는 누가 옳게 보일까요? 참선지자가 옳게 보입니다. 그래서 이 싸움은 영원한 싸움이며, 계속 진행될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목표는 선지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저나 여러분을 선지자로 불러주실 때까지 우리 영은 계속 성장해야 하며, 또한 핍박받는 선지자로부터 말씀을 배우는 성도들은 100%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마치겠습니다.
마태복음 70절 말씀입니다. ‘하늘들에서’ 하늘들은 천국이죠. 복수로 쓰여집니다. 단수는 그냥 우리가 보는 하늘을 말하고, 복수는 영적인 하늘, 천국을 말합니다. ‘하늘들에서’라는 말은 ‘하늘들의 왕국에서’의 단축형입니다. 성경은 항상 단축형으로 쓴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선지자’라는 개념을 예수님께서 등장 시키십니다. 이 선지자는 미래를 예언하는 것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선지자가 성경에 많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누가 봐도 선지자가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이집트에 갔을 때, 아비멜렉의 꿈을 통해서 ‘그는 내 선지자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내 선지자야! 건들지 마!’하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지자라고 부릅니다.
다윗은 왕이면서 선지자였는데, 다윗이 나단 선지자가 나타났을 때, ‘나도 급수가 선지자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갓 선지자가 나타났을 때도, ‘나도 급수가 얼마나 높은 줄 알아!’ 하지 않고, 갓 선지자의 말을 듣죠. 나중에 사도행전을 보니까 베드로가 다윗을 가리켜 ‘선지자’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왕이면서 선지자인데도, 다른 선지자의 말을 듣습니다.
선지자는 예언하는 사람을 의미하지 않은 것이, 다니엘도 보니까 다니엘은 국무총리이죠. 페르시아의 국무총리인데, 다니엘은 자기가 ‘선지자’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선지자’입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을 대선지자라 부릅니다. 소선지자도 있죠. 12선지자가 있죠.
예수님 당시에도 세례 요한이 있지요. 세례 요한도 ‘내가 선지자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백성들이 선지자로 여기지요. 예수님이 세례요한을 ‘선지자’라고 말하죠. 예수님 탄생 하실 때, 안나 선지자라고 있죠. 아주 오래 장수한, 안나 선지자가 자기를 ‘선지자’라고 생각 했습니까? 그냥 성전에서 84년 동안 금식하고 기도 한 사람인데, 누가 봐도 일반 사람이겠지요.
선지자는 하나님과 너무 친밀해서, 하나님의 비밀을 아는 상태의 영적인 높은 수준의 신앙인을 말합니다. 그것을 이해해야만 오늘 말씀을 이해 하실 수 있습니다. ‘선지자’를 이해해야만 여러분이 앞으로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선지자입니까? 아닙니다. 성경을 집필한 솔로몬도 선지자는 아닙니다. ‘왜? 영적으로 깊지 않으니까!’ 하나님과 친밀함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압니다. 롯을 구출합니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과 친밀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선지자에게 먼저 보이시고, 그리고 행할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구약에서 선지자들이 예수님을 다 예언했지요. 출생장소, 예수님의 삶, 십자가를 예언 했지요. 그런데 예수님이 딱 나타났는데, 아무도 예수님을 예수님이라고 하지 않아요. 그런데 딱 한 명이 예수님을 메시야 곧 그리스도로 인식합니다. 누굽니까? 세례 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을 통해서, 그 친밀함을 통해서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친척이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 성경에서 말하는 진리들은 하나님을 통해서 아는 것입니다. ‘베들레헴 출신 입니까?’ ‘혹시? 다윗 계통입니까?’ 하고 연구해서, 세례 요한이 확인 한 다음에 ‘동정녀에 의해 탄생되셨습니까?’ 하고, 연구해서 예수님을 알아낸 것이 아닙니다.
중요합니다! 선지자는 학문적으로 배우고 익혀서 어떤 진리를 깨달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통해서, 그냥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안보이시죠. 그런데 하나님과 친밀해 지면, 하나님의 비밀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그 비밀을 사람들에게 말하는데, 때로는 미래를 말하기도 하고, 때로는 현재를 알게 되기도 하는데, 예수님 당시에 모든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못 알아봤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알아봅니다.
예수님 당시에 많은 종교 지도자들이 지옥 갔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는 어떤 일이 일어 날까요?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거의 대부분 지옥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가끔씩 ‘목사나, 교황, 추기경, 이런 사람들이 지옥에 있다’는 얘기들이 많이 나오죠.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을 모르고도 우리는 얼마든지 선지자 노릇을 할 수가 있고, 목회 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지식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과거에도 제사장이 있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홉니와 비느하스 지옥 갔지요! 엘리 지옥 갔지요! 제사장이라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요. ‘선지자’는 천국에 상이 많은 사람이 ‘선지자’입니다. 이 땅에서는 하나님과 너무 친밀해서 비밀을 알 정도의 수준이고, 죽은 다음에는 하늘의 상이 많은 사람이 ‘선지자’입니다.
이런 선지자를 어떻게 합니까? 배척합니다. 언제? ‘아벨부터 선지자들의 흘린 피가’, 과거 구약의 역사 가운데, 선지자들을 항상 핍박을 했습니다. 누가? ‘이스라엘 백성’이 선지자들을 핍박했습니다. 모든 선지자들이 핍박 당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핍박 당했습니다. 대선지자 이사야도 마찬가지인데, 웃시야 때는 이사야가 궁중 선지자로서 왕의 인정을 받아서 국가로부터 월급을 받았겠지요. 히스기야 왕도 이사야를 어느 정도 인정했습니다. 히스기야가 죽은 다음에 므낫세가 왕이 되었지요. 므낫세가 나중에 이사야를 톱으로 썰어 죽입니다.
선지자들도 대부분 순교당합니다. 예레미야 당시, 사람들이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불렀습니까? 아닙니다. 예레미야를 백성들이 거짓 선지자라고 불렀습니다. 항상 거짓 선지자들이 오히려 득세를 많이 했습니다. 엘리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엘리야 때도 아합 왕이 엘리야를 선지자라고 보았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아합 왕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엘리야를 선지자로 보았으면, 엘리야가 왜 싸웠겠습니까? 선지자로 인식한 것은 하나님이 인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엘리야를 선지자로 인식을 한 것이지, 엘리야가 ‘나! 선지자야!’ 하지 않았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이나 아합이나 이세벨은 ‘넌! 거짓 선지자야!’하고, 엘리야를 미워했지요. 엘리야가 로뎀 나무 아래로 갔지요. 선지자란 칭호를 주는 것은 사람도 아니고, 자기 자신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너는 내 선지자야!’라고 부른 것입니다.
부자와 나사로 비유를 아실 것입니다. 부자와 나사로가 둘 다 죽었습니다. 그리고 부자는 지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나사로는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부자는 자기가 평생 살면서, 천국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아느냐고요? 부자는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부자가 물 한 방울이라도 떨어뜨려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구렁이 있어서 못 간다고 했죠. 그럴 때, 부자가 이런 말을 합니다. ‘아브라함이여! 내 형제 다섯이 있습니다. 다섯이 누구일까요? 지옥으로 떨어지게 되기 때문에, 지금 부자가 다섯 명을 위해 탄원하는 것입니다. 다섯 명이 자신들이 지옥간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절대 안 합니다!
여러분! 유대인들은 선민 사상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결코 자기가 지옥 간다는 생각을 꿈에도 하지 않습니다. 지금 여러분과 똑같습니다. 지금도 크리스쳔들은 자기가 지옥 간다고 꿈에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유대인들 사회 속에 계시가 없었겠습니까? 은사가 없겠습니까? 교리가 없겠습니까? 꿈에도 생각 안 합니다. 그런데 부자는 자기 형제 다섯이 지옥 갈 이유를 압니다. 왜? 여러분! 천국 지옥 가면 이것이 다 보입니다.
여러분이 저희 블로그나 홈페이지를 자주 오다가 죽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죽으면 압니다. 아! 저희교회가 ‘참 선지자구나!’ 그 때 알게 됩니다. 와! 지옥 와보니까, 누가 참인지 거짓인지 알게 됩니다. 지금 부자가 지옥에서, 자기 형제 다섯이 지옥에 오게 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다시 살아서 그들을 전도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천국 간다고 믿고 있는 크리스쳔들 곧 형제들을 위해서 부자가 탄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사로가 살아나서 전도하면 그들이 천국 갈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죽은 자가 살아나서 말한다 할찌라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 다음의 말이 중요합니다. “너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 곧 모세와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자가 살아난다해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세와 선지자는 구약을 말합니다.
구약시대 선지자들이 인정을 받았습니까? 아닙니다. 대부분 참수 당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지요. ‘선지자들을 죽인 자들이여! 누굽니까? 당시 지도자들을 향해서, ’너희가 지금 누구인 줄 아느냐?‘
‘선지자들을 죽인 자들의 후예야’. 다시 말하면 예수님 당시에나, 구약이나, 지금이나, 선지자들을 항상 죽이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중요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아주 친밀하여 영적인 고수가 되면, 사람들이 ‘아! 그런 사람 진짜 선지자야!’라고 알아주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모세를 거부하는 것이고, 여러분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으면 선지자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천국 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한데, 첫 번째로는 율법적인 삶입니다. 두 번째로는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여러분은 천국에 들어 갈 수 없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이 두 가지인데, 율법대로 삶을 살아야 하며,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느니라’라는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말씀이 여러분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임을 아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팔복’다음에, 예수님을 위한 삶, 다음에 마지막으로 ‘자! 이제 너희 신앙이 많이 성장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 선지자가 되는 것이란다’. 이런 말씀입니다. ‘선지자들은 이 땅에서 핍박을 당했어. 종교 지도자들에게! 하지만 하늘에는 상이 어마어마해! 그러니까 너희들은 기뻐하고 즐거워해!’ 이런 것입니다.
신앙세계에서 최고봉은 ‘선지자’이며, 신앙세계에서 최악은 ‘거짓 선지자’가 되는 것입니다. 두 가지가 다 기독교라는 카테고리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교계는 두 가지가 항상 싸웁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워지는 말세지말이 되면, 누가 더 옳게 보일까오? 거짓 선지자가 옳게 보입니다. 그리고 참이 나쁘게 보입니다. 반대로 시대가 경건해서, 하나님의 영이 충만할 때는 누가 옳게 보일까요? 참선지자가 옳게 보입니다. 그래서 이 싸움은 영원한 싸움이며, 계속 진행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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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그리고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에 해변, 가버나움으로 가서 사셨는데,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 요단 건너 바다 길, 이방의 갈릴리, 어두움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으며, 죽음의 나라와 그늘에 앉은, 그들에게 빛이 비취었다”라고 말하며 선포된 것이 성취되기 위함입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51절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으신 다음에 유대 광야에 가셔서 마귀의 세 가지 시험을 이기시고, 유대 예루살렘에 가지 않으시고, 갈릴리로 가셨는데, 나사렛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떠나신 것입니다. 떠나서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의 해변’ 갈릴리 호수 좌편이 납달리고, 납달리 바로 아래 지역이 스불론입니다. ‘가버나움으로 가서 사셨는데’ 가버나움은 갈릴리 호수 인접 지역, 바로 옆에 있는 동네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이사야가 예수님을 가장 많이 묘사했다고 말씀 드렸었죠.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 요단 건너 바다 길, 이방의 갈릴리’ 이방의 갈릴리, 지금 여기서 갈릴리를 이방이라 부릅니다. 누가? ‘이사야’가, 굉장히 심각한 것입니다. 지금 ‘갈릴리’를 ‘이방이다’라고 부르는 것은 굉장히 심각함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범죄할 때, 그들을 쫓아내시고, 여전히 구전된 말씀을 통해서, 말씀이 증거 되는데, 아벨은 대표적인 사람이죠. 제사를 드린 사람이고, 아벨이 가인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다시, 셋을 통해서 하나님 백성이 이어지는데, 그 때는 1,000살을 한계로 해서 900세 이상을 다 산 사람들이죠. 근데 하나님의 백성의 수가 자꾸 줄어 드는 것이예요. 사람 숫자는 늘어나는데, 하나님의 백성은 줄어드는 거예요. 심지어 노아 때에 와서는 아무도 없어요. 하나님께서 이제 방법을 쓰셨는데, 노아 가족만 남겨두고 자기 백성이 아닌 사람들을 다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 홍수가 일어 납니다. 노아 가족만 살아남고 전 지구의 모든 것이 다 죽었습니다. 만
마태복음 1장( 거듭남, 성령세례, 마귀시험) 6절
6. 그런즉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의 세대가 모두 14세대이며, 다윗부터 바벨론 이주까지 14세대이며, 바벨론 이주부터 그리스도까지 14세대입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6절입니다. 이 14세대가 세 번 반복되는데 이것은 다윗의 숫자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로 오셨는데 이 그리스도를 묘사한 가장 완벽한 사람이 다윗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히브리어로 '메시아'인데, 메시아 통치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다윗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약은 계속 메시아를 기다리죠. '나중에 여자의 후손이 올거야! 나중에 그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는 그 누군가가 올거야! 나중에 어떤 아들이 태어나서 우리를 다스리는데, 우리는 꿈같은 삶을 살거야' 하고 구약 내내 기다립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다윗에 대한 그리움과 갈망이 항상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출생 하셨을 때 다윗의 후손이라고 부르죠. 이 다윗의 후손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이것은 왕의 출생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기다립니다. '메시아가 오면 우리를 잘 통치해 잘 먹고 잘 살거야! 우리는 행복할 거야!'라는 기다림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이해 못합니다. 왜냐하면 기존 관념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이 오면, 정치적으로 왕이 되어서 로마에서 해방시켜 주고 우리는 한 자리 할거야!' 그래서 다툼도 일어납니다. 자기들끼리 '자. 너는 오른편에 앉아 왼편에 앉아!'라고 자리다툼이 일어납니다. 메시아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 때문이었습니다. 자, 이제 중요합니다. '그리스도가 누구냐? 메시아가 누구냐?'에 대한 그 이해와 사고가 중요한데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다음에 모든 수난과 고난을 겪으시고 십자가에서 값을 치루시고 부활 하시죠. 그리고 40일 동안 신령한 몸을 입고 부활체로써 이 땅에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10일 뒤에 승천하시고 10일 뒤에 오순절
마태복음 2장(산상수훈) 106절
106. 몸의 등불은 눈이다. 그런즉 만약 네 눈이 성하다면 네 온 몸이 밝을 것이다. 만약 네 눈이 악하다면, 네 온 몸은 어두울 것이다. 마태복음 106절 말씀입니다. '몸의 등불은 눈이다' 맞지요. 눈이 감기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 않습니까? 당연히 몸의 등불은 눈입니다. 여러분! 깜깜한 밤에 횃불이 있으면 그 불 때문에 밤이 환하게 밝은 것처럼, 눈으로 보는 것을 보게 되고 눈이 감긴 소경이 가장 비참한 것입니다. '그런즉 만약 네 눈이 성하다면 네 온몸이 밝을 것이다' 그렇죠. 눈이 멀쩡하면 밝음을 느낍니다. 왜? 태양광선을 통해서 사물을 볼 수 있으니까, 밝음을 느낍니다. '만약 네 눈이 악하다면' 눈이 좋지 않다면 '네 온 몸은 어두울 것이다' 여러분! 눈만 감으면 어두움입니다. 눈만 뜨면 밝음이고, 이 눈이라는 조그마한 기관 때문에 우리 온몸이 좌우되는 것입니다. 똑같이 이것은 육의 세계만이 아니라, 영의 세계인데, 왜? 영의 세계이냐? 표현할 때, 네 눈이 약하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악하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눈은 '육의 눈'이 아니고 '영의 눈'입니다. 동시에 '성하다'는 표현은 '영, 육'에 같이 쓰이는 표현인데, 이 '악하다'는 표현은 영에 쓰이는 표현이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눈은 몸의 눈이 아니라 영의 눈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 구절을 이해하실 때, '아! 이 구절은 영적인 것이구나!'하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우리 '영의 눈'이 감긴 상태, 그것이 '악한 것'입니다. '영의 눈'이 감기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믿는 자의 악이 어디서 들어올까요? 영의 눈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영의 눈이 닫힌 상태, 뭐가 들어올까요? 하나님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우리 '영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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