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마태복음 1장(거듭남, 성령세례, 마귀시험) 3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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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그 때 그가 그 분을 허락합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38절 말씀입니다. ‘그 때’ 그 때는 요한에게 세례 받으러 오신 예수님 앞에 요한이 만류하다가 이제 예수님께서 ‘네가 나에게 세례를 주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성취하는 것이다’라는 설득적인 말씀을 받을 그 때입니다. ‘그가’ 그는 세례 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이 ‘그 분’을 그 분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허락합니다. 굉장히 짧은 구절입니다. 동시에 굉장히 중요한 구절이기도 합니다. 성령님께서 이러한 짧은 구절을 왜 한 절에 해당되는 구절로 넣었을까요? 의미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세례 요한이 이 때 여러 가지 요인으로 세례를 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여러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세례 요한이 세례를 받으러 온 예수님 앞에 세례를 안 주고 자기의 어떤 논리를 폈다면 세례 요한은 지옥 갔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말들을 이해하지 못 할 것입니다. 아니 당신은 왜 자꾸 지옥 간다는 말을 그렇게 쉽게 하십니까? 구약의 인물들 가운데 하나님의 어떤 의도와 계획이 있어서 인간에게 다가 왔을 때 불순종한 사람 가운데 천국에 간 사례가 없다는 것을 아십니까?
제가 여러분에게 아무리 지옥 간다고 외쳐도 여러분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에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너 이삭 바쳐 할 때 아브라함이 ‘이것은 말도 안돼!’ ‘이것은 마귀의 음성이야!’ ‘어떻게 내 자녀로 말미암아 민족을 주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죽이라고 말씀을 하시지?‘ ’마귀 음성이야!‘ 하고 거부했다면 아브라함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만약에 요나가 ’너! 니느웨로 가!‘ 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다시스, 지금의 스페인이죠. 다시스로 가는 것이 성공적이었다면 요나도 지옥에 갔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이해할 때 하나님을 발 아래 두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천국 지옥을 이해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뜻이 우리에게 다가올 때 어떻게 ‘세례 요한은 바로 순종으로 들어갔을까?’ 이것을 배워야 됩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왔을 때 어떻게 우리는 그렇게 순종을 할까? 어떻게 아브라함은 즉각적인 순종으로 자기 아들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제물로 바쳤을까? 어떻게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말씀을 듣고 거부했을 때 다시 또 마음을 돌릴까? 이런 것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있습니까? 어떻게 구약에서 다윗이 범죄 한 다음에 그렇게 철저하게 회개를 할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다가왔을 때 인간이 그 앞에서 완전하게 변화 될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순종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순종은 하나님의 의도가 이루어지는 것이 순종입니다. 순종이라는 것은 내 입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인간에게 말했을 때 이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순종입니다. 순종은 인간의 입장이 아닙니다. 만약에 요나가 니느웨로 가라고 말했을 때 ‘이것은 마귀의 음성이야’ ‘나는 다시스로 가야 돼’했다면 지옥 갑니다.
계시나 교리나 은사가 중요하지 않고 중요한 것은 순종이 중요한 것입니다.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인생 가운데 하나님이 여러분에 대한 계획들이 이루어집니까? 그러면 당신은 천국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가리라’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하나님의 요구하심이 나에게 이루어져야 하는데 지금 세례 요한에게 절대 절명의 순간이 온 것입니다.
순종은 그냥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제가 오늘 그것을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옥에 들어가는 이유는 순종은 그냥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구약에 있는 많은 인물들의 삶을 보십시오.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는 많은 과정이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원래 태어날 때부터 성모마리아의 이모 엘리사벳 입니다. 남편은 사가랴입니다. 사가랴는 제사장이죠. 성모 마리아의 이모가 나이가 먹어도 자식이 없습니다. 나중에 사가랴가 분향 제단에서 분향 할 때 천사가 나타나서 아들의 출산을 예언하죠. 그 때 사가랴가 약간의 콧방귀를 뀔 때 사가랴가 벙어리가 됩니다. 말을 못합니다. 나중에 실제로 1년 지나서 요한이 태어났을 때 서판에 쓰지요. 사가랴가 ‘요한이라 하리라’ 그러니까 주변에 있는 친척들이 아니 대부분 이름 하면 내 아버지나 윗대 이름을 쓰는데 새로운 이름을 쓰니까 놀라죠. 그 때 사가랴의 입이 열립니다. 그러면서 이제 요한이란 이름을 붙입니다.
요한은 하나님 앞에 바쳐졌기 때문에 나중에 엣센파로 보냈을 것입니다. 엣센파는 지금 사해가 있으면 좌편에 쿰란이란 곳에서 공동생활 합니다. 4천에서 1만명 정도가 공동생활을 합니다. 거기서 공동생활 하면서 성경을 필사하고 성경 공부하고 예배를 드립니다. 공동경작, 공동식사를 하는 엣센파는 예수님께서 한 번도 건들지 않은 파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파는 지옥 간다고 건드셨죠. 또한 사두개파도 지옥 간다고 건드셨죠. 서기관들도 지옥 간다고 하셨고요. 그 당시 헤롯 당도 있었고 세렛 당도 있었는데 희한하게도 한 번도 건들지 않은 파가 엣센파 입니다.
구약은 사해사본이 가정 정통합니다. 원래 서기관들이 성경을 필사하는데 엣센파는 그냥 자기가 성경을 필사합니다. 직분이 없어요. 그냥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엣센파는 목적 자체가 다릅니다. 직업적인 종교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엣센파에 속하면서 거기서 성경을 필사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직업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옆에 있는 산에 굴에서 기도 생활합니다. 성경을 공부하고 필사하는 것 예배드리고 기도 생활하는 것이 일반 엣센파의 생활상입니다.
이 말씀을 왜 드리냐면 지금 이렇게 세례 요한이 예수님이 등장할 때 ‘어떻게 한 번에 순종할까?’라는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그 한 번에 순종하는 배경이 엣센파였고 나중에 세례 요한이 그곳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아마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겠지요. 엣센파에서는 음성듣기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기본입니다. 일반 바리새파나 사두개파에게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어려운 일이겠지요. 엣센파에서는 하나님 만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곳을 떠난 세례 요한은 메뚜기와 석청을 먹는 삶 다시 말하면 공동생활을 할 때에는 고기를 먹습니다. 생선을 먹습니다. 그리고 밀을 먹겠지요. 하지만 혼자 광야생활 할 때는 없어요. 단백질 원으로써 메뚜기를 먹었겠고 탄수화물 원으로써 꿀을 먹었을 것입니다. 그런 다음 무었을 했을까요? 쉽게 말하면 수도 생활입니다. 거의 기도 생활로 삶을 이어갑니다. 그러다가 ‘세례 요한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자기에게 대한 말씀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에 대한 말씀 또 사람에 대한 말씀이 임한 것입니다. 그 때 사람들이 세례 받으러 오는 것입니다.
그 때에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요구가 나의 삶에 이루어지는 그런 순종의 삶을 살아갈까요? 그것은 바로 이러한 과정이 있음을 말합니다. 다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런 과정이 세례 요한에게 있었기 때문에 지금 세레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그 음성을 듣자마자 바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순종해야 천국 갑니다. 불순종은 지옥입니다.
여러분 인간이 불순종하는 이유는 우리 안에 헤롯 때문입니다. 누가 불순종을 하고 싶겠습니까? 순종을 원해도 순종이 안 됩니다. 제가 지금 세례 요한 삶을 말한 이유는 무엇이냐 하면 여러분이 지옥에 가는 이유는 ‘나도 예수님을 믿어, 나도 천국 가!’ 하고 엉뚱한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불순종을 일으키는 것은 전부 다 마귀입니다. 하와에게 뱀이 왔지요. 여러분에게 누가 옵니까? 여러분에게 귀신이 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불순종을 합리화합니다.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는 말씀에 하와가 순종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에덴에서 추방당합니다. 여러분 모세를 통해서 십계명이 왔죠. 순종이 됩니까? 안되면 지옥입니다. 믿거나 말거나입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순종은 천국이고 불순종은 지옥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이고 불순종은 마귀입니다. 신앙 형태, 계시, 교리, 은사 아무것도 안 중요합니다. 결론이 중요합니다. 따 먹느냐 안 따 먹느냐가 중요합니다. 하와가 왜 ‘나는 그 뱀이 하나님인 줄 알았어요. 하나님! 왜 그런 뱀 같은 놈을 허락했어요?’ 나중에 항변할 수 있는지 아십니까? 여러분이 지옥에 들어가서 ‘나는 그 때 그 계시가, 그 교리가 하나님인 줄 알았어요.’ 다 소용없습니다. ‘나는 그 때 그 은사가 진짜인 줄 알았어요.’ 다 소용없습니다.
저는 ‘엣센파’입니다. 저는 성경을 연구합니다. 저는 기도 생활이 제 삶입니다. 저는 기도로 밤을 샙니다. 왜인지 아십니까? 천국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천국이 엄청 어렵습니다. 만약에 천국이 쉽다면 뭐 하러 엣센파가 되겠습니까? 세례 요한이 뭐 하러 메뚜기 먹고 삽니까? 세례 요한이 그 좋은 것 다 버리고 광야 생활을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을 향한 것이 이루어지느냐? 이루어지지 않느냐?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사람이나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마치겠습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38절 말씀입니다. ‘그 때’ 그 때는 요한에게 세례 받으러 오신 예수님 앞에 요한이 만류하다가 이제 예수님께서 ‘네가 나에게 세례를 주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성취하는 것이다’라는 설득적인 말씀을 받을 그 때입니다. ‘그가’ 그는 세례 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이 ‘그 분’을 그 분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허락합니다. 굉장히 짧은 구절입니다. 동시에 굉장히 중요한 구절이기도 합니다. 성령님께서 이러한 짧은 구절을 왜 한 절에 해당되는 구절로 넣었을까요? 의미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세례 요한이 이 때 여러 가지 요인으로 세례를 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여러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세례 요한이 세례를 받으러 온 예수님 앞에 세례를 안 주고 자기의 어떤 논리를 폈다면 세례 요한은 지옥 갔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말들을 이해하지 못 할 것입니다. 아니 당신은 왜 자꾸 지옥 간다는 말을 그렇게 쉽게 하십니까? 구약의 인물들 가운데 하나님의 어떤 의도와 계획이 있어서 인간에게 다가 왔을 때 불순종한 사람 가운데 천국에 간 사례가 없다는 것을 아십니까?
제가 여러분에게 아무리 지옥 간다고 외쳐도 여러분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에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너 이삭 바쳐 할 때 아브라함이 ‘이것은 말도 안돼!’ ‘이것은 마귀의 음성이야!’ ‘어떻게 내 자녀로 말미암아 민족을 주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죽이라고 말씀을 하시지?‘ ’마귀 음성이야!‘ 하고 거부했다면 아브라함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만약에 요나가 ’너! 니느웨로 가!‘ 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다시스, 지금의 스페인이죠. 다시스로 가는 것이 성공적이었다면 요나도 지옥에 갔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이해할 때 하나님을 발 아래 두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천국 지옥을 이해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뜻이 우리에게 다가올 때 어떻게 ‘세례 요한은 바로 순종으로 들어갔을까?’ 이것을 배워야 됩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왔을 때 어떻게 우리는 그렇게 순종을 할까? 어떻게 아브라함은 즉각적인 순종으로 자기 아들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제물로 바쳤을까? 어떻게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말씀을 듣고 거부했을 때 다시 또 마음을 돌릴까? 이런 것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있습니까? 어떻게 구약에서 다윗이 범죄 한 다음에 그렇게 철저하게 회개를 할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다가왔을 때 인간이 그 앞에서 완전하게 변화 될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순종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순종은 하나님의 의도가 이루어지는 것이 순종입니다. 순종이라는 것은 내 입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인간에게 말했을 때 이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순종입니다. 순종은 인간의 입장이 아닙니다. 만약에 요나가 니느웨로 가라고 말했을 때 ‘이것은 마귀의 음성이야’ ‘나는 다시스로 가야 돼’했다면 지옥 갑니다.
계시나 교리나 은사가 중요하지 않고 중요한 것은 순종이 중요한 것입니다.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인생 가운데 하나님이 여러분에 대한 계획들이 이루어집니까? 그러면 당신은 천국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가리라’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하나님의 요구하심이 나에게 이루어져야 하는데 지금 세례 요한에게 절대 절명의 순간이 온 것입니다.
순종은 그냥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제가 오늘 그것을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옥에 들어가는 이유는 순종은 그냥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구약에 있는 많은 인물들의 삶을 보십시오.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는 많은 과정이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원래 태어날 때부터 성모마리아의 이모 엘리사벳 입니다. 남편은 사가랴입니다. 사가랴는 제사장이죠. 성모 마리아의 이모가 나이가 먹어도 자식이 없습니다. 나중에 사가랴가 분향 제단에서 분향 할 때 천사가 나타나서 아들의 출산을 예언하죠. 그 때 사가랴가 약간의 콧방귀를 뀔 때 사가랴가 벙어리가 됩니다. 말을 못합니다. 나중에 실제로 1년 지나서 요한이 태어났을 때 서판에 쓰지요. 사가랴가 ‘요한이라 하리라’ 그러니까 주변에 있는 친척들이 아니 대부분 이름 하면 내 아버지나 윗대 이름을 쓰는데 새로운 이름을 쓰니까 놀라죠. 그 때 사가랴의 입이 열립니다. 그러면서 이제 요한이란 이름을 붙입니다.
요한은 하나님 앞에 바쳐졌기 때문에 나중에 엣센파로 보냈을 것입니다. 엣센파는 지금 사해가 있으면 좌편에 쿰란이란 곳에서 공동생활 합니다. 4천에서 1만명 정도가 공동생활을 합니다. 거기서 공동생활 하면서 성경을 필사하고 성경 공부하고 예배를 드립니다. 공동경작, 공동식사를 하는 엣센파는 예수님께서 한 번도 건들지 않은 파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파는 지옥 간다고 건드셨죠. 또한 사두개파도 지옥 간다고 건드셨죠. 서기관들도 지옥 간다고 하셨고요. 그 당시 헤롯 당도 있었고 세렛 당도 있었는데 희한하게도 한 번도 건들지 않은 파가 엣센파 입니다.
구약은 사해사본이 가정 정통합니다. 원래 서기관들이 성경을 필사하는데 엣센파는 그냥 자기가 성경을 필사합니다. 직분이 없어요. 그냥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엣센파는 목적 자체가 다릅니다. 직업적인 종교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엣센파에 속하면서 거기서 성경을 필사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직업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옆에 있는 산에 굴에서 기도 생활합니다. 성경을 공부하고 필사하는 것 예배드리고 기도 생활하는 것이 일반 엣센파의 생활상입니다.
이 말씀을 왜 드리냐면 지금 이렇게 세례 요한이 예수님이 등장할 때 ‘어떻게 한 번에 순종할까?’라는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그 한 번에 순종하는 배경이 엣센파였고 나중에 세례 요한이 그곳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아마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겠지요. 엣센파에서는 음성듣기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기본입니다. 일반 바리새파나 사두개파에게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어려운 일이겠지요. 엣센파에서는 하나님 만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곳을 떠난 세례 요한은 메뚜기와 석청을 먹는 삶 다시 말하면 공동생활을 할 때에는 고기를 먹습니다. 생선을 먹습니다. 그리고 밀을 먹겠지요. 하지만 혼자 광야생활 할 때는 없어요. 단백질 원으로써 메뚜기를 먹었겠고 탄수화물 원으로써 꿀을 먹었을 것입니다. 그런 다음 무었을 했을까요? 쉽게 말하면 수도 생활입니다. 거의 기도 생활로 삶을 이어갑니다. 그러다가 ‘세례 요한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자기에게 대한 말씀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에 대한 말씀 또 사람에 대한 말씀이 임한 것입니다. 그 때 사람들이 세례 받으러 오는 것입니다.
그 때에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요구가 나의 삶에 이루어지는 그런 순종의 삶을 살아갈까요? 그것은 바로 이러한 과정이 있음을 말합니다. 다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런 과정이 세례 요한에게 있었기 때문에 지금 세레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그 음성을 듣자마자 바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순종해야 천국 갑니다. 불순종은 지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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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그리고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에 해변, 가버나움으로 가서 사셨는데,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 요단 건너 바다 길, 이방의 갈릴리, 어두움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으며, 죽음의 나라와 그늘에 앉은, 그들에게 빛이 비취었다”라고 말하며 선포된 것이 성취되기 위함입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51절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으신 다음에 유대 광야에 가셔서 마귀의 세 가지 시험을 이기시고, 유대 예루살렘에 가지 않으시고, 갈릴리로 가셨는데, 나사렛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떠나신 것입니다. 떠나서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의 해변’ 갈릴리 호수 좌편이 납달리고, 납달리 바로 아래 지역이 스불론입니다. ‘가버나움으로 가서 사셨는데’ 가버나움은 갈릴리 호수 인접 지역, 바로 옆에 있는 동네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이사야가 예수님을 가장 많이 묘사했다고 말씀 드렸었죠.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 요단 건너 바다 길, 이방의 갈릴리’ 이방의 갈릴리, 지금 여기서 갈릴리를 이방이라 부릅니다. 누가? ‘이사야’가, 굉장히 심각한 것입니다. 지금 ‘갈릴리’를 ‘이방이다’라고 부르는 것은 굉장히 심각함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범죄할 때, 그들을 쫓아내시고, 여전히 구전된 말씀을 통해서, 말씀이 증거 되는데, 아벨은 대표적인 사람이죠. 제사를 드린 사람이고, 아벨이 가인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다시, 셋을 통해서 하나님 백성이 이어지는데, 그 때는 1,000살을 한계로 해서 900세 이상을 다 산 사람들이죠. 근데 하나님의 백성의 수가 자꾸 줄어 드는 것이예요. 사람 숫자는 늘어나는데, 하나님의 백성은 줄어드는 거예요. 심지어 노아 때에 와서는 아무도 없어요. 하나님께서 이제 방법을 쓰셨는데, 노아 가족만 남겨두고 자기 백성이 아닌 사람들을 다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 홍수가 일어 납니다. 노아 가족만 살아남고 전 지구의 모든 것이 다 죽었습니다.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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