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마태복음 1장 (거듭남, 성령세례, 마귀시험) 2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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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장 (거듭남, 성령세례, 마귀시험) 24절
24. 그때 선지자 예레미야에게서, "소리가 라마에서 들리니, 슬픔과 울부짖음과 큰 통곡인데, 라헬이 그녀의 자녀들로 우는데, 자녀가 없기에 위로받기를 원치 않았다”라고 선포된 것이 성취되었습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24절입니다. ‘그때’는 헤롯 대왕이 베들레헴 인근 지경에 있는 두 살 이하의 모든 남자 아이를 죽일 때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에게서’ 예레미야는 유다가 바벨로니아에 막 끌려갈 때 나타난 선지자입니다. 에스겔은 바벨로니아에 끌려간 후에 나타난 선지자이며, 성경에서 ‘예레미야’ 하면 ‘아! 지금 하나님의 자녀가 구원을 잃어버리는 순간이구나!’하고 인식을 해야 합니다.
예레미야가 예언을 하는데 ‘소리가 라마에서 들리니, 슬픔과 울부짖음과 큰 통곡인데’ 지금 슬픔과 울부짖음과 큰 통곡이 있는데, 베들레헴 인근 지역에 두 살 이하에 영아들을 잃은 부모들이 큰 슬픔과 통곡에 빠진 것입니다. ‘슬픔과 울부짖음과 큰 통곡인데’ 다시 말하면 이것은 영적인 세계에서 너무나 큰 고통을 느끼는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에서는 영이 너무 가장 큰 고통인 것입니다. 라헬은 자녀가 없었기 때문에 우는 것이죠. 위로 받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라헬이 그녀의 자녀들로 우는데' 라헬은 누구입니까? 야곱의 부인이었죠. 라헬이 자녀가 없어서 늘 고통 받았죠. 나중에 요셉을 낳고 베냐민을 낳게 됩니다. '라고 선포된 것이 성취 되었습니다'
헤롯이 아이들을 죽인 그 베들레헴은 다윗의 출생지 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믿고 거듭난 장소로 볼 수 있습니다. 베들레헴은 또한 예수님의 출생지 입니다. 동시에 베들레헴은 무엇을 상징하느냐? 지금도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거듭나는 장소를 말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거듭나는 장소인 영적인 장소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헤롯의 무차별한 영아의 학살이 일어납니다. 영의 실족이 일어난 곳입니다. ‘영의 실족’이란 단어와 ‘영의 죽음’이란 단어가 있는데, 영의 죽음이라는 큰 카테고리 속에서 영의 실족이 있는 것입니다.
이 실족은 영아 때에 많이 일어나죠. 물론 영의 실족은 애기 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영의 실족은 항상 일어날 수 있습니다. 신앙이란 것이 왜 어려우냐? 예수를 믿고 거듭난 다음에 계속 신앙의 길을 가야 하는데 지금처럼 영아기, 곧 영적인 나이 두 살 이하에서는 많은 실족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에서 중요한 것은 거듭났다 할지라도, 예수를 믿었다 할지라도 이 신앙을 유지하는 것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죽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인데 현상적으로는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내 안에서 나간 것이며, 그 이유는 내 안에 있던 원 귀신, 곧 헤롯이 밀어냈기 때문입니다. 왜 예레미야가 통곡 했을까요? 예레미야가 단순히 유다라 하는 유대 나라가 바벨로니아에게 끌려갔기 때문에 통곡 했을까요? 아닙니다. 영의 세계에서 한 명이 거듭나는 것! 큰 기쁨입니다. 반대로 영의 세계에서 한 명이 예수님 안에 있다가 이탈되는 것! 큰 고통입니다.
예수를 믿었다가 이탈된 이런 경우에는 처음부터 불신자보다 지옥에서 더 고통 받는 장소로 들어가게 됩니다. 나아가서 예수를 믿고 엄청난 능력과 은사와 하나님의 놀라운 것을 맛보고 타락한 사람은 지옥에서 어마어마한 형벌이 기다리는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의 미래에 이런 것이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실족된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것입니다.
지옥은 이를 갈고 울부짖음이 있는 장소입니다. ‘슬픔과 울부짖음과 큰 통곡’ 어디인 줄 아십니까? 지옥의 한 단편적인 묘사입니다. 이런 장소가 지옥인 것입니다. 고통을 느끼는데 누구입니까? 라헬입니다. 이 땅에서 가장 큰 고통이 지옥입니다. 라헬이 자녀가 없어서 운 것처럼, 우리는 영적인 자녀를 낳아야 되고 죽지 않게 도와주는 것이 목회입니다.
목사는 말씀을 가르쳐서 거듭나게 할 뿐만 아니라 그 영혼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해야 합니다. 복음전파자는 대규모로 거듭나게 하며 영혼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과 깊은 교통을 통하여서 각자가 천국 가는 길에서 이탈되지 않도록 하나님의 깊은 말씀을 전달하는 일입니다. 사도는 그것뿐만이 아니라 죄를 일으키는 귀신을 쫓아내 줌으로써 가장 안전하게 천국으로 인도해 주는 일입니다.
우리는 각자에 맡겨진 사명들을 따라서 영혼들을 돌봐줘야 하는데 우리의 가장 큰 슬픔은 영의 죽음임을 알아야 합니다. 제 개인적으로 2000년 이후부터 재림 때까지가 바벨론시대 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많은 영혼들이 대규모로 실족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고통스러워 하십니다. 자기를 믿었던 영들이 죽기 때문입니다. 누구 때문입니까? 헤롯 때문입니다. 헤롯이 왜 등장합니까? 그것은 거짓 선지자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여러분에게 있어서 교파나 목사나 교회 선택이 매우 중요합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여러분의 영혼이 죽는 이유는 여러분들이 그것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헤롯을 선택하면 헤롯은 여러분을 죽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것을 선택하면 결국 영적인 죽음을 맞이하여서 여러분이 입으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고백하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라고 고백하여도 여러분은 나중에 지옥에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거기서 지금 같은 슬픔과 울부짖음과 큰 통곡을 하면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자꾸 사람들이 미혹되는 많은 이유들은 헤롯 때문입니다. 그 모든 미혹들은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지 못하게 합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여러분을 거듭나게 하며 변화시키며, 말씀만이 여러분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길이기 때문에 이것을 복음이라고 합니다. 오직 마음을 두어야 할 곳! 하나님 말씀 밖에 없습니다. 마치겠습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24절입니다. ‘그때’는 헤롯 대왕이 베들레헴 인근 지경에 있는 두 살 이하의 모든 남자 아이를 죽일 때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에게서’ 예레미야는 유다가 바벨로니아에 막 끌려갈 때 나타난 선지자입니다. 에스겔은 바벨로니아에 끌려간 후에 나타난 선지자이며, 성경에서 ‘예레미야’ 하면 ‘아! 지금 하나님의 자녀가 구원을 잃어버리는 순간이구나!’하고 인식을 해야 합니다.
예레미야가 예언을 하는데 ‘소리가 라마에서 들리니, 슬픔과 울부짖음과 큰 통곡인데’ 지금 슬픔과 울부짖음과 큰 통곡이 있는데, 베들레헴 인근 지역에 두 살 이하에 영아들을 잃은 부모들이 큰 슬픔과 통곡에 빠진 것입니다. ‘슬픔과 울부짖음과 큰 통곡인데’ 다시 말하면 이것은 영적인 세계에서 너무나 큰 고통을 느끼는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에서는 영이 너무 가장 큰 고통인 것입니다. 라헬은 자녀가 없었기 때문에 우는 것이죠. 위로 받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라헬이 그녀의 자녀들로 우는데' 라헬은 누구입니까? 야곱의 부인이었죠. 라헬이 자녀가 없어서 늘 고통 받았죠. 나중에 요셉을 낳고 베냐민을 낳게 됩니다. '라고 선포된 것이 성취 되었습니다'
헤롯이 아이들을 죽인 그 베들레헴은 다윗의 출생지 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믿고 거듭난 장소로 볼 수 있습니다. 베들레헴은 또한 예수님의 출생지 입니다. 동시에 베들레헴은 무엇을 상징하느냐? 지금도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거듭나는 장소를 말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거듭나는 장소인 영적인 장소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헤롯의 무차별한 영아의 학살이 일어납니다. 영의 실족이 일어난 곳입니다. ‘영의 실족’이란 단어와 ‘영의 죽음’이란 단어가 있는데, 영의 죽음이라는 큰 카테고리 속에서 영의 실족이 있는 것입니다.
이 실족은 영아 때에 많이 일어나죠. 물론 영의 실족은 애기 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영의 실족은 항상 일어날 수 있습니다. 신앙이란 것이 왜 어려우냐? 예수를 믿고 거듭난 다음에 계속 신앙의 길을 가야 하는데 지금처럼 영아기, 곧 영적인 나이 두 살 이하에서는 많은 실족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에서 중요한 것은 거듭났다 할지라도, 예수를 믿었다 할지라도 이 신앙을 유지하는 것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죽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인데 현상적으로는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내 안에서 나간 것이며, 그 이유는 내 안에 있던 원 귀신, 곧 헤롯이 밀어냈기 때문입니다. 왜 예레미야가 통곡 했을까요? 예레미야가 단순히 유다라 하는 유대 나라가 바벨로니아에게 끌려갔기 때문에 통곡 했을까요? 아닙니다. 영의 세계에서 한 명이 거듭나는 것! 큰 기쁨입니다. 반대로 영의 세계에서 한 명이 예수님 안에 있다가 이탈되는 것! 큰 고통입니다.
예수를 믿었다가 이탈된 이런 경우에는 처음부터 불신자보다 지옥에서 더 고통 받는 장소로 들어가게 됩니다. 나아가서 예수를 믿고 엄청난 능력과 은사와 하나님의 놀라운 것을 맛보고 타락한 사람은 지옥에서 어마어마한 형벌이 기다리는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의 미래에 이런 것이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실족된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것입니다.
지옥은 이를 갈고 울부짖음이 있는 장소입니다. ‘슬픔과 울부짖음과 큰 통곡’ 어디인 줄 아십니까? 지옥의 한 단편적인 묘사입니다. 이런 장소가 지옥인 것입니다. 고통을 느끼는데 누구입니까? 라헬입니다. 이 땅에서 가장 큰 고통이 지옥입니다. 라헬이 자녀가 없어서 운 것처럼, 우리는 영적인 자녀를 낳아야 되고 죽지 않게 도와주는 것이 목회입니다.
목사는 말씀을 가르쳐서 거듭나게 할 뿐만 아니라 그 영혼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해야 합니다. 복음전파자는 대규모로 거듭나게 하며 영혼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과 깊은 교통을 통하여서 각자가 천국 가는 길에서 이탈되지 않도록 하나님의 깊은 말씀을 전달하는 일입니다. 사도는 그것뿐만이 아니라 죄를 일으키는 귀신을 쫓아내 줌으로써 가장 안전하게 천국으로 인도해 주는 일입니다.
우리는 각자에 맡겨진 사명들을 따라서 영혼들을 돌봐줘야 하는데 우리의 가장 큰 슬픔은 영의 죽음임을 알아야 합니다. 제 개인적으로 2000년 이후부터 재림 때까지가 바벨론시대 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많은 영혼들이 대규모로 실족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고통스러워 하십니다. 자기를 믿었던 영들이 죽기 때문입니다. 누구 때문입니까? 헤롯 때문입니다. 헤롯이 왜 등장합니까? 그것은 거짓 선지자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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