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음교회 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마태복음 2장(산상수훈) 8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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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장(산상수훈) 82절
82. 진실로 네게 말하는데, 마지막 고드란트를 갚을 때까지,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마태복음 82절 말씀입니다.
'진실로'
진실로는 '중요할 때 쓰는 예수님의 표현'입니다.
'네게 말하는데'
너라는 말은, 예수님 당시 산상에서 말하는 대상일 수도 있고, 동시에 앞으로 들을 모든 대상들을 말합니다.
'여러분에게 말씀 드리는데, 지금 뿐만 아니라, 앞으로 후대에 있는, 모든 분들에게 얘기하는 것'이라고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네게 말하는데 '마지막 고드란트를 갚기까지'
이 상황은 법원에까지 가서, 판결을 받고 감옥에 던진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뭐냐면, 예수님 당시에 손해를 끼쳤을 때, 법정에서 판결을 내리는데, 감옥에 던지는 것입니다.
지금 현 시대에서는 손해 배상의 문제로 감옥에 가지 않습니다. 요즘은 민사로서, '경제적인 문제'가지고 감옥에 간 사례가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내가 상대에게 손해를 끼쳤으면, 돈이 없을 때, '손해금액'만큼, 감옥에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쳤는데 돈이 없으면, 압류가 들어옵니다. 그래서 집에 대한 압류, 땅에 대한 압류, 사업하는 사람들은 매출에 대한 압류, 심하면 통장에 대한 압류가 들어옵니다. 이런 압류에서도 돈이 갚아지지 않으면, 그 때는 차압이 들어옵니다. 물건에 대한 압류입니다. 그 다음에는 끝난 것입니다. 더 이상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생활에 대한 것 외의 모든 물건의 압류로 빚이 해결이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원론상 원칙이지, 실상은 그렇게 진행되지 않습니다. 압류가 들어오고 압류에서 해결이 안 되면, 부채가 계속 남는데 만약에 카드사에서 우리에게 돈을 받을 것이 있는데, 카드사가 법원에 신청하지 않으면, 5년간 우리에게 채권을 추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5년만 버티면 해방 됩니다. 반대로 카드사나 이런 금융권에서 법원에 단독 소송을 걸어서 지급 명령을 얻으면, 10년간 유효합니다. 10년 동안만 계속 빚에 독촉을 받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마지막 고드란트를 갚을 때까지'입니다. 옛날에는 감옥에서 그 금액 만큼을 때우는 것입니다. 지급 명령에 의한 금액을 갚을 때까지는 '빚 독촉'이라는 감옥에 갇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고드란트인데, 고드란트는 최하 금액입니다. 그 금액이 얼마일까요? 사람들은 성경에서 이런 금액이 나오면 헷갈려 합니다.
한 달란트가 얼마인지? 한 드라크마가 얼마인지? 헷갈려 합니다. 가장 작은 단위는 렙돈입니다. 렙돈이라고 하지요. 과부가 두 렙돈 생활비 바쳤다. 한 렙돈은 '1200원' 합니다. 두 렙돈은 '2500원정도'입니다. 한 고드란트가 두 렙돈인데, 그 과부에게 있어서 '2500원'은 '전 생활비'입니다.
여기서 '마지막 고드란트'라는 것은, '2500원'이니까, 우리가 손해를 끼쳤을 때, '2500원'에 대해서 전부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앗사리온'은, '4고드란트'입니다. 그래서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앗사리온'은 '지금 1만원'입니다. 앗사리온은 약간 높은 금액입니다. 참새 한 마리가 5천원 정도 됩니다.
그 다음에 많이 쓰는 단위가, 하루에 쓰는 품삯인데, 15만원권에 해당하는 한 드라크마, 한 데나리온 같은 것입니다. 드라크마는 그리스 화폐 단위이고, 데나리온은 로마 화폐 단위인데, 같은 금액입니다. 한 데나리온, 하루 품삯으로 15만원 되겠지요.
예수님께서 세금이 없을 때, 반세겔을 내지요. 예수님께서 물고기 입에서 반세겔을 꺼내서 베드로에게 세금 내라고 하셨지요. 반세겔은 두 드라크마입니다. 한 30만원정도 됩니다. 로마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세금 낼 때, 30만원 정도가 머리에 대한 세금입니다. 한 세겔은 60만원정도입니다. 물론 로마식 금액입니다.
'마지막 고드란트' 이것은 '2500원' 마저도 갚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내가 손해를 입혔을 때, 갚아야 되는 것이며, 물질적인 것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해서 마음을 아프게 하거나, 정신적으로 고통을 주거나,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마지막 고드란트를 갚기까지, 감옥이 아니더라도, 물질적인 감옥에 갇히게 하시는 것조차도 하나님께서는 계수한다는 것이고, 이런 무형의 감옥이 여전히 존재하며, 앞으로 영원히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빚의 감옥'은 항상 있는 것입니다.
물론 더 심각한 감옥이 있습니다. 지옥입니다. 지옥은 가장 심각한 감옥입니다. 여기는 나올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지옥에 들어가는데, 지옥은 못 나옵니다. 이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최하 감옥입니다.
두 번째 인간의 문제는 바로 '단명'입니다. 천국에 간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데려 갈 때가 있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보편적으로는 더 이상 영이 성장하지 아니하고, 더 이상 이 땅에서도 살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를 데려 가십니다. 물론 죽으면 천국에서 영원히 살지만, 이 땅도 중요합니다. 이 땅에서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데, 데려가신다는 이유는, 영이 더 성장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지 못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데려 가십니다.(반면, 이 땅에 오래 살게 하시는 이유는 천국에 데려가고 싶은데, 회개가 아직 안 되었을 때, 회개를 시켜야 하나님이 우리를 데려가시는데, 회개가 안 될 때, 하나님께서 오래 살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물론 또 다른 경우입니다.)
또 하나의 감옥은 질병의 감옥입니다. 몸이 아플 때, 참 고통스럽습니다. 질병에 갇혀 있으면 끝난 것입니다. 나이 먹으면 맨날 아프죠! '허리 아프다', '관절 아프다', 매일 아픈 이야기 하지요. 이 질병의 감옥도 무서운 감옥입니다.
이에 비하여, 고드란트를 갚는 감옥은 위의 3가지에 비하여, 가벼운 감옥입니다. '물질의 감옥'은 가장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하게 선사하는 감옥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 '빚의 감옥', '아주 가벼운 감옥'입니다. 더 센 것이 '질병의 감옥', 더 센 것이 '단명', '더 센 것이 '지옥'입니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고드란트'가 무엇이냐 하면, 우리가, 하나님 자녀가 살면서, '잘 못 산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살면서 어려움을 당할 때, 어려움은 매우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어려움들을 통해서 무엇을 발견합니까? '내가 지금 무엇을 잘못하고 있구나!'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다 잘되고, 돈도 잘 벌고, 몸도 하나도 안 아프고, 살면서 다 형통하면, 우리는 내가 뭘 잘못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살면서, 때로는 질병의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때로는 물질의 감옥에 갇힐 때, 우리는 '아! 내가 잘못이 있구나!'깨닫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선하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버린 사람'은 크게 관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은 사람은, 여전히 우리에게 뭔가를 '싸인'을 보내 주십니다. 그래서 이런 '마지막 고드란트'를 갚기까지, 누구에 대한 것입니까? 이것이 천국에 가는 사람들에 대한 내용입니다. 천국 가지 않는 사람들은 앞에서 언급된 '지옥 얘기'로 끝나 버립니다. 이것은 '천국 가는 사람들 얘기'이기 때문에, '빚의 감옥'얘기가 나오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계속 살도록 우리를 도와 주시는 것입니다.
마지막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요셉이 어릴 때부터 형들과는 늘 달랐습니다. 그런데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요셉이 감옥에서 나오지 못했습니다. 요나도 물고기 뱃속에서 못 나옵니다. '뭐 할때까지는?' '말씀이 임할 때까지는', '말씀이 임하여서 방석함을 받아' 시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 요셉도 감옥에서 못 나왔습니다. 하나님 자녀에 대한 말씀입니다. 요셉도 언제 나왔느냐? 말씀이 임함으로, 요나가 언제 물고기 뱃속에서 토해짐을 받았느냐? '하나님 말씀이 임할 때에', 우리가 언제 '빚의 감옥에서', '삶의 물질의 감옥에서', 건짐 받을까요?
때로는 인생의 경제적인 깊은 수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신용불량자가 되어서, 신용등급이 떨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빚에 허덕입니다. 우리나라 평균 통계에 개인당, 4,500만원 상당의 빚이 있습니다. 그리고 빚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언제? 빚으로부터 헤어 나올 수가 있을까요? '말씀이 임함으로', 다시 말하면 '말씀대로 온전히 살아 갈 때까지', 우리는 거기에 머물러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아직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잘 안됩니다. 여러분! 말씀대로 사는 것이 꿈입니다. 그런데 말씀대로 살아가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대로 살아지기까지, 때로는 '빚의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빚에 대해서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빚을 청산하는 방법은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매일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 82절 말씀은, 너희가 정말로 벗어나길 원하느냐? 너희가 한 고드란트를 갚기까지 '뭐하느냐?' '네가 말씀대로 살지 못했지 않느냐?' '이제 말씀대로 살아라!' '십계명대로 살아라!' '산상수훈대로 살아라!' '그러면 네가 감옥에서 나올 날이 와!' 우리는 인생에서 깊은 수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이 수렁은 문제가 안 됩니다. 가벼운 싸인에 불과합니다. 깊은 싸인은 질병입니다. 더 깊은 것은 단명입니다. 그 다음은 지옥입니다. 여러분! 이런 단계에 가지 않기 위해서,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말씀이 임하는 것입니다.
요셉에게 말씀이 임할 때에 석방되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총리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빚의 감옥'에서 벗어나는 길은, 말씀대로 살아가는 현실적인 변화입니다. 변화가 이루어지면 해방되는 것입니다.
감옥에 있으면 뭐합니까? 딴 생각 안 납니다. 감옥에 있으면 하나님 앞에 회개하게 되고, 죄를 사함 받게 되고,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이런 영적인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물고기 뱃속이 요나에게 '신학교'입니다. 인생의 변화는 언제 일어납니까? '감옥'에 있을 때 일어납니다. 보통 때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보통 정상적인 삶에서는 변화가 안 일어납니다.
지금도 중산층이 무너지고, 사람들의 삶이 점점 황폐해지고 있습니다. 왜냐구요? 죄 때문입니다. 여러분! 죄가 우리 삶을 무너뜨리게 됩니다. 여러분! 인간이 무너지는 것은 배우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지식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인간이 무너지는 것은 모든 것이 죄로 인한 것입니다. 여러분! 죄는 인간을 무너뜨립니다. 감옥에 있을 때, 죄에서 벗어나 말씀대로 사는 의로 바꾸어질 때, 하나님은 감옥에서 풀어주십니다. 마치겠습니다.
마태복음 82절 말씀입니다.
'진실로'
진실로는 '중요할 때 쓰는 예수님의 표현'입니다.
'네게 말하는데'
너라는 말은, 예수님 당시 산상에서 말하는 대상일 수도 있고, 동시에 앞으로 들을 모든 대상들을 말합니다.
'여러분에게 말씀 드리는데, 지금 뿐만 아니라, 앞으로 후대에 있는, 모든 분들에게 얘기하는 것'이라고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네게 말하는데 '마지막 고드란트를 갚기까지'
이 상황은 법원에까지 가서, 판결을 받고 감옥에 던진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뭐냐면, 예수님 당시에 손해를 끼쳤을 때, 법정에서 판결을 내리는데, 감옥에 던지는 것입니다.
지금 현 시대에서는 손해 배상의 문제로 감옥에 가지 않습니다. 요즘은 민사로서, '경제적인 문제'가지고 감옥에 간 사례가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내가 상대에게 손해를 끼쳤으면, 돈이 없을 때, '손해금액'만큼, 감옥에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쳤는데 돈이 없으면, 압류가 들어옵니다. 그래서 집에 대한 압류, 땅에 대한 압류, 사업하는 사람들은 매출에 대한 압류, 심하면 통장에 대한 압류가 들어옵니다. 이런 압류에서도 돈이 갚아지지 않으면, 그 때는 차압이 들어옵니다. 물건에 대한 압류입니다. 그 다음에는 끝난 것입니다. 더 이상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생활에 대한 것 외의 모든 물건의 압류로 빚이 해결이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원론상 원칙이지, 실상은 그렇게 진행되지 않습니다. 압류가 들어오고 압류에서 해결이 안 되면, 부채가 계속 남는데 만약에 카드사에서 우리에게 돈을 받을 것이 있는데, 카드사가 법원에 신청하지 않으면, 5년간 우리에게 채권을 추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5년만 버티면 해방 됩니다. 반대로 카드사나 이런 금융권에서 법원에 단독 소송을 걸어서 지급 명령을 얻으면, 10년간 유효합니다. 10년 동안만 계속 빚에 독촉을 받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마지막 고드란트를 갚을 때까지'입니다. 옛날에는 감옥에서 그 금액 만큼을 때우는 것입니다. 지급 명령에 의한 금액을 갚을 때까지는 '빚 독촉'이라는 감옥에 갇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고드란트인데, 고드란트는 최하 금액입니다. 그 금액이 얼마일까요? 사람들은 성경에서 이런 금액이 나오면 헷갈려 합니다.
한 달란트가 얼마인지? 한 드라크마가 얼마인지? 헷갈려 합니다. 가장 작은 단위는 렙돈입니다. 렙돈이라고 하지요. 과부가 두 렙돈 생활비 바쳤다. 한 렙돈은 '1200원' 합니다. 두 렙돈은 '2500원정도'입니다. 한 고드란트가 두 렙돈인데, 그 과부에게 있어서 '2500원'은 '전 생활비'입니다.
여기서 '마지막 고드란트'라는 것은, '2500원'이니까, 우리가 손해를 끼쳤을 때, '2500원'에 대해서 전부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앗사리온'은, '4고드란트'입니다. 그래서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앗사리온'은 '지금 1만원'입니다. 앗사리온은 약간 높은 금액입니다. 참새 한 마리가 5천원 정도 됩니다.
그 다음에 많이 쓰는 단위가, 하루에 쓰는 품삯인데, 15만원권에 해당하는 한 드라크마, 한 데나리온 같은 것입니다. 드라크마는 그리스 화폐 단위이고, 데나리온은 로마 화폐 단위인데, 같은 금액입니다. 한 데나리온, 하루 품삯으로 15만원 되겠지요.
예수님께서 세금이 없을 때, 반세겔을 내지요. 예수님께서 물고기 입에서 반세겔을 꺼내서 베드로에게 세금 내라고 하셨지요. 반세겔은 두 드라크마입니다. 한 30만원정도 됩니다. 로마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세금 낼 때, 30만원 정도가 머리에 대한 세금입니다. 한 세겔은 60만원정도입니다. 물론 로마식 금액입니다.
'마지막 고드란트' 이것은 '2500원' 마저도 갚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내가 손해를 입혔을 때, 갚아야 되는 것이며, 물질적인 것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해서 마음을 아프게 하거나, 정신적으로 고통을 주거나,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마지막 고드란트를 갚기까지, 감옥이 아니더라도, 물질적인 감옥에 갇히게 하시는 것조차도 하나님께서는 계수한다는 것이고, 이런 무형의 감옥이 여전히 존재하며, 앞으로 영원히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빚의 감옥'은 항상 있는 것입니다.
물론 더 심각한 감옥이 있습니다. 지옥입니다. 지옥은 가장 심각한 감옥입니다. 여기는 나올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지옥에 들어가는데, 지옥은 못 나옵니다. 이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최하 감옥입니다.
두 번째 인간의 문제는 바로 '단명'입니다. 천국에 간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데려 갈 때가 있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보편적으로는 더 이상 영이 성장하지 아니하고, 더 이상 이 땅에서도 살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를 데려 가십니다. 물론 죽으면 천국에서 영원히 살지만, 이 땅도 중요합니다. 이 땅에서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데, 데려가신다는 이유는, 영이 더 성장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지 못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데려 가십니다.(반면, 이 땅에 오래 살게 하시는 이유는 천국에 데려가고 싶은데, 회개가 아직 안 되었을 때, 회개를 시켜야 하나님이 우리를 데려가시는데, 회개가 안 될 때, 하나님께서 오래 살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물론 또 다른 경우입니다.)
또 하나의 감옥은 질병의 감옥입니다. 몸이 아플 때, 참 고통스럽습니다. 질병에 갇혀 있으면 끝난 것입니다. 나이 먹으면 맨날 아프죠! '허리 아프다', '관절 아프다', 매일 아픈 이야기 하지요. 이 질병의 감옥도 무서운 감옥입니다.
이에 비하여, 고드란트를 갚는 감옥은 위의 3가지에 비하여, 가벼운 감옥입니다. '물질의 감옥'은 가장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하게 선사하는 감옥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 '빚의 감옥', '아주 가벼운 감옥'입니다. 더 센 것이 '질병의 감옥', 더 센 것이 '단명', '더 센 것이 '지옥'입니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고드란트'가 무엇이냐 하면, 우리가, 하나님 자녀가 살면서, '잘 못 산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살면서 어려움을 당할 때, 어려움은 매우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어려움들을 통해서 무엇을 발견합니까? '내가 지금 무엇을 잘못하고 있구나!'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다 잘되고, 돈도 잘 벌고, 몸도 하나도 안 아프고, 살면서 다 형통하면, 우리는 내가 뭘 잘못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살면서, 때로는 질병의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때로는 물질의 감옥에 갇힐 때, 우리는 '아! 내가 잘못이 있구나!'깨닫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선하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버린 사람'은 크게 관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은 사람은, 여전히 우리에게 뭔가를 '싸인'을 보내 주십니다. 그래서 이런 '마지막 고드란트'를 갚기까지, 누구에 대한 것입니까? 이것이 천국에 가는 사람들에 대한 내용입니다. 천국 가지 않는 사람들은 앞에서 언급된 '지옥 얘기'로 끝나 버립니다. 이것은 '천국 가는 사람들 얘기'이기 때문에, '빚의 감옥'얘기가 나오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계속 살도록 우리를 도와 주시는 것입니다.
마지막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요셉이 어릴 때부터 형들과는 늘 달랐습니다. 그런데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요셉이 감옥에서 나오지 못했습니다. 요나도 물고기 뱃속에서 못 나옵니다. '뭐 할때까지는?' '말씀이 임할 때까지는', '말씀이 임하여서 방석함을 받아' 시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 요셉도 감옥에서 못 나왔습니다. 하나님 자녀에 대한 말씀입니다. 요셉도 언제 나왔느냐? 말씀이 임함으로, 요나가 언제 물고기 뱃속에서 토해짐을 받았느냐? '하나님 말씀이 임할 때에', 우리가 언제 '빚의 감옥에서', '삶의 물질의 감옥에서', 건짐 받을까요?
때로는 인생의 경제적인 깊은 수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신용불량자가 되어서, 신용등급이 떨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빚에 허덕입니다. 우리나라 평균 통계에 개인당, 4,500만원 상당의 빚이 있습니다. 그리고 빚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언제? 빚으로부터 헤어 나올 수가 있을까요? '말씀이 임함으로', 다시 말하면 '말씀대로 온전히 살아 갈 때까지', 우리는 거기에 머물러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아직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잘 안됩니다. 여러분! 말씀대로 사는 것이 꿈입니다. 그런데 말씀대로 살아가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대로 살아지기까지, 때로는 '빚의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빚에 대해서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빚을 청산하는 방법은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매일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 82절 말씀은, 너희가 정말로 벗어나길 원하느냐? 너희가 한 고드란트를 갚기까지 '뭐하느냐?' '네가 말씀대로 살지 못했지 않느냐?' '이제 말씀대로 살아라!' '십계명대로 살아라!' '산상수훈대로 살아라!' '그러면 네가 감옥에서 나올 날이 와!' 우리는 인생에서 깊은 수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이 수렁은 문제가 안 됩니다. 가벼운 싸인에 불과합니다. 깊은 싸인은 질병입니다. 더 깊은 것은 단명입니다. 그 다음은 지옥입니다. 여러분! 이런 단계에 가지 않기 위해서,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말씀이 임하는 것입니다.
요셉에게 말씀이 임할 때에 석방되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총리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빚의 감옥'에서 벗어나는 길은, 말씀대로 살아가는 현실적인 변화입니다. 변화가 이루어지면 해방되는 것입니다.
감옥에 있으면 뭐합니까? 딴 생각 안 납니다. 감옥에 있으면 하나님 앞에 회개하게 되고, 죄를 사함 받게 되고,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이런 영적인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물고기 뱃속이 요나에게 '신학교'입니다. 인생의 변화는 언제 일어납니까? '감옥'에 있을 때 일어납니다. 보통 때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보통 정상적인 삶에서는 변화가 안 일어납니다.
지금도 중산층이 무너지고, 사람들의 삶이 점점 황폐해지고 있습니다. 왜냐구요? 죄 때문입니다. 여러분! 죄가 우리 삶을 무너뜨리게 됩니다. 여러분! 인간이 무너지는 것은 배우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지식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인간이 무너지는 것은 모든 것이 죄로 인한 것입니다. 여러분! 죄는 인간을 무너뜨립니다. 감옥에 있을 때, 죄에서 벗어나 말씀대로 사는 의로 바꾸어질 때, 하나님은 감옥에서 풀어주십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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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그리고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에 해변, 가버나움으로 가서 사셨는데,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 요단 건너 바다 길, 이방의 갈릴리, 어두움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으며, 죽음의 나라와 그늘에 앉은, 그들에게 빛이 비취었다”라고 말하며 선포된 것이 성취되기 위함입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51절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으신 다음에 유대 광야에 가셔서 마귀의 세 가지 시험을 이기시고, 유대 예루살렘에 가지 않으시고, 갈릴리로 가셨는데, 나사렛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떠나신 것입니다. 떠나서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의 해변’ 갈릴리 호수 좌편이 납달리고, 납달리 바로 아래 지역이 스불론입니다. ‘가버나움으로 가서 사셨는데’ 가버나움은 갈릴리 호수 인접 지역, 바로 옆에 있는 동네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이사야가 예수님을 가장 많이 묘사했다고 말씀 드렸었죠.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 요단 건너 바다 길, 이방의 갈릴리’ 이방의 갈릴리, 지금 여기서 갈릴리를 이방이라 부릅니다. 누가? ‘이사야’가, 굉장히 심각한 것입니다. 지금 ‘갈릴리’를 ‘이방이다’라고 부르는 것은 굉장히 심각함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범죄할 때, 그들을 쫓아내시고, 여전히 구전된 말씀을 통해서, 말씀이 증거 되는데, 아벨은 대표적인 사람이죠. 제사를 드린 사람이고, 아벨이 가인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다시, 셋을 통해서 하나님 백성이 이어지는데, 그 때는 1,000살을 한계로 해서 900세 이상을 다 산 사람들이죠. 근데 하나님의 백성의 수가 자꾸 줄어 드는 것이예요. 사람 숫자는 늘어나는데, 하나님의 백성은 줄어드는 거예요. 심지어 노아 때에 와서는 아무도 없어요. 하나님께서 이제 방법을 쓰셨는데, 노아 가족만 남겨두고 자기 백성이 아닌 사람들을 다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 홍수가 일어 납니다. 노아 가족만 살아남고 전 지구의 모든 것이 다 죽었습니다. 만
마태복음 1장( 거듭남, 성령세례, 마귀시험) 6절
6. 그런즉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의 세대가 모두 14세대이며, 다윗부터 바벨론 이주까지 14세대이며, 바벨론 이주부터 그리스도까지 14세대입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6절입니다. 이 14세대가 세 번 반복되는데 이것은 다윗의 숫자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로 오셨는데 이 그리스도를 묘사한 가장 완벽한 사람이 다윗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히브리어로 '메시아'인데, 메시아 통치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다윗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약은 계속 메시아를 기다리죠. '나중에 여자의 후손이 올거야! 나중에 그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는 그 누군가가 올거야! 나중에 어떤 아들이 태어나서 우리를 다스리는데, 우리는 꿈같은 삶을 살거야' 하고 구약 내내 기다립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다윗에 대한 그리움과 갈망이 항상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출생 하셨을 때 다윗의 후손이라고 부르죠. 이 다윗의 후손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이것은 왕의 출생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기다립니다. '메시아가 오면 우리를 잘 통치해 잘 먹고 잘 살거야! 우리는 행복할 거야!'라는 기다림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이해 못합니다. 왜냐하면 기존 관념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이 오면, 정치적으로 왕이 되어서 로마에서 해방시켜 주고 우리는 한 자리 할거야!' 그래서 다툼도 일어납니다. 자기들끼리 '자. 너는 오른편에 앉아 왼편에 앉아!'라고 자리다툼이 일어납니다. 메시아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 때문이었습니다. 자, 이제 중요합니다. '그리스도가 누구냐? 메시아가 누구냐?'에 대한 그 이해와 사고가 중요한데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다음에 모든 수난과 고난을 겪으시고 십자가에서 값을 치루시고 부활 하시죠. 그리고 40일 동안 신령한 몸을 입고 부활체로써 이 땅에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10일 뒤에 승천하시고 10일 뒤에 오순절
마태복음 2장(산상수훈) 106절
106. 몸의 등불은 눈이다. 그런즉 만약 네 눈이 성하다면 네 온 몸이 밝을 것이다. 만약 네 눈이 악하다면, 네 온 몸은 어두울 것이다. 마태복음 106절 말씀입니다. '몸의 등불은 눈이다' 맞지요. 눈이 감기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 않습니까? 당연히 몸의 등불은 눈입니다. 여러분! 깜깜한 밤에 횃불이 있으면 그 불 때문에 밤이 환하게 밝은 것처럼, 눈으로 보는 것을 보게 되고 눈이 감긴 소경이 가장 비참한 것입니다. '그런즉 만약 네 눈이 성하다면 네 온몸이 밝을 것이다' 그렇죠. 눈이 멀쩡하면 밝음을 느낍니다. 왜? 태양광선을 통해서 사물을 볼 수 있으니까, 밝음을 느낍니다. '만약 네 눈이 악하다면' 눈이 좋지 않다면 '네 온 몸은 어두울 것이다' 여러분! 눈만 감으면 어두움입니다. 눈만 뜨면 밝음이고, 이 눈이라는 조그마한 기관 때문에 우리 온몸이 좌우되는 것입니다. 똑같이 이것은 육의 세계만이 아니라, 영의 세계인데, 왜? 영의 세계이냐? 표현할 때, 네 눈이 약하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악하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눈은 '육의 눈'이 아니고 '영의 눈'입니다. 동시에 '성하다'는 표현은 '영, 육'에 같이 쓰이는 표현인데, 이 '악하다'는 표현은 영에 쓰이는 표현이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눈은 몸의 눈이 아니라 영의 눈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 구절을 이해하실 때, '아! 이 구절은 영적인 것이구나!'하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우리 '영의 눈'이 감긴 상태, 그것이 '악한 것'입니다. '영의 눈'이 감기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믿는 자의 악이 어디서 들어올까요? 영의 눈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영의 눈이 닫힌 상태, 뭐가 들어올까요? 하나님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우리 '영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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