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마태복음 ( 거듭남, 성령세례, 마귀시험) 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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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03, 2020
10. 그러나 그가 이것을 생각하는데, 오호, 주님의 천사가, “요셉아! 다윗의 자손아! 네 여자 마리아를 맞아들이는 것을 두려워 말아라. 그녀 안에 있는 분은 거룩한 영에게서 나셨기 때문이다.
오늘은 마태복음 10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가 이것을 생각하는데' 여기서 '그'는 요셉이죠. 요셉이 마리아를 버리려는 생각을 한 상태입니다. 그 때 요셉에게 계시가 옵니다. '오호 주님의 천사가' 물론 이것은 꿈이었습니다. 꿈에 계시가 우리에게 임할 수가 있습니다. 제가 계시를 부정한다는 것은 계시 자체를 부정한다는 것이 아니라 계시를 진리화 한다는 것을 부정한다는 것이지 계시는 반드시 따라 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죠? 그리고 예수님도 살아계시죠? 천사도 있지요? 우리 안에 성령님도 계시죠? 우리는 영이죠? 당연히 계시가 있습니다. 계시는 있는데 주어지는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같지 않을 때 주어집니다.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우리는 말씀을 따라 갑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지식이 우리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또 한 가지는 말씀의 지식으로 완벽하다 할지라도 세부적인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계시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물론 성령의 은사를 통해서도 나타나지만 은사가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자녀는 계시가 주어지는데 꿈으로 주어집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음성으로 10번 만났습니다. 이삭은 꿈으로 반 음성으로 반 이었습니다. 야곱은 꿈을 통해 계시가 주어집니다.
오래 전에 저는 새로운 교회를 가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 교회는 저에게 아주 많은 은혜를 끼친 교회였습니다. 그렇게 3개월쯤 지나서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물론 형상으로 나타나신 것은 아닙니다. 음성으로 말씀하시는데 '경호야!' 하고 부르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음성을 압니다. 저는 계시를 많이 받아왔기 때문에 꿈에 하나님을 인식합니다. 저는 '예'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 하시기를 '네가 요즘에 왜 어려움을 당하는지 아느냐?' 보통 우리가 영적인 세계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굉장히 진실해 집니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내가 아닌 또 다른 나로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 때 저는 이런 고백을 하게 됩니다. '저는 모릅니다.' 현실이 아니고 꿈이었고 진실한 시간이었기 때문에 '저는 모릅니다'라고 겸손하게 대답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그 교회를 보여 주시면서 하나님께서 그 교회에 대해 아주 좋지 않게 생각하시는 것을 저에게 투영시키면서 알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 때 하나님과 저와의 거리가 얼마나 먼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교회, 은혜롭다고 생각하는 그 말씀에 감동을 받았었는데 하나님은 그것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꿈에 '경호야! 분당으로 가거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꿈일지라도 저는 하나님의 음성인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보여 주시는데 제가 눈길을 걷고 있는 것과 분당에 있는 교회들을 보여주시면서 제가 다닐 교회와 그곳에서 앞으로 몇 년을 다닐 것인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한번도 분당에 있는 교회를 다녀 본 적이 없습니다. 굉장히 긴 꿈이었지만 자세하게는 말씀 못 드리고 제가 요약해서 말씀 드린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맞게 따라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때 꿈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저는 계시를 믿습니다. 그러나 저는 계시를 가급적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꿈과 계시, 환상 같은 것들은 개인적인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말씀에 있는 꿈과 계시들은 100% 성령님에 의한 것이지만 어떻게 제가 제 꿈을 100%로 맞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단지 제가 저의 예를 들은 이유는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말씀 드린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계시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 계시를 다른 사람들에게 '이건 진리야!' 하고 공론화하거나 이 계시를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며 100% 맞다고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요셉아! 다윗의 자손아!', '네 여자 마리아를 맞아들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지금 요셉이 마리아를 끊으려고 하는 생각에 대해서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이죠. 맞아들이라는 하나님의 생각을 꿈을 통해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녀 안에 있는 분은 거룩한 영에게서 나셨기 때문이다.' 믿을 수 없는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요셉은 인류 역사상 한 번도 난자와 정자가 아닌 성령에 의해서 잉태된 것은 있을 수 없는데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꿈을 통해서 '지금 그에게 잉태된 것은 성령에 의해서 잉태된 것'이라고 말씀을 주시는 것이며 이해 할 수 없는 것을 지금 알려 주는 것입니다.
꿈 얘기를 하나 더 하겠습니다. 20년 전에 히브리어를 공부해서 성경을 번역할 목표가 마음에 있었습니다. 저는 먼저 아랍어를 공부했습니다. 아랍어를 2년 공부하고 2년 뒤에 히브리어를 공부하려고 마음을 먹었을 때였습니다. 그 때도 꿈을 꾸게 됩니다. 아주 희한한 꿈이었는데 저기 멀리서 저를 향해 글자가 오는 것이었습니다. 아주 커다란 집채 같은 '음'이란 글자가 다가 왔습니다. 그 다음은 '복'자가 오고 '태'자가 오고 '마'자가 다가 왔습니다. 그 꿈의 초반부에 저에게 어떠한 음성이 들려왔느냐 하면 '경호야! 너 성경에서 중요한 곳이 어딘 줄 아느냐?' 저는 꿈속에서 하나님께 '하나님 저는 모릅니다. 어디가 중요한지를 저는 잘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꿈에 하나님의 말씀 곧 '어디가 중요한지 아느냐'라는 질문과 동시에 '음, 복, 태, 마'라는 거대한 글자가 지나갑니다. 꿈이지만 난감했습니다. '어! 저게 무슨 글자야?' 그 다음에 '음, 복, 가, 마'라는 큰 집채 만한 글자가 지나갑니다. 그 다음에 '음, 복, 가, 누' 또 지나갑니다. 그 다음에 '음, 복, 한, 요'라는 큰 글자가 지나갑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경호야! 이 책들의 요약이 무엇인지 아느냐?' 하셨고 '저는 모릅니다.'라고 말할 때 제 앞에 '로마서'라는 큰 글자가 제게 다가오다가 잠깐동안 움직이지 않고 멈춰 있다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너 이것을 한 마디로 하면 무엇인줄 아느냐?' 저는 '당연히 모르죠.'라고 답했고 그 때 또 다시 저기 멀리서 제게로 한 요절 말씀이 다가왔습니다. 저는 꿈 속 이었지만, 눈을 크게 뜨고 지켜봤습니다. '갈라디아서 2:20' 이렇게 씌어져 있었습니다. 그것을 자세히 보는 것과 동시에 저는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일어나서 '갈라디아서 2:20이 뭐지?'하고 긴 시간 동안 묵상을 하였습니다. 나름대로 추측도 해보았습니다. '어떤 말일까?' 아침에 그 말씀을 찾아 보았습니다. 신기한 것은 그 말씀에 대한 제목이 '복음의 요약'이라고 되어있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놀라웠습니다. 제가 그 말씀을 알긴 알았지만 깊이 묵상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우리가 나름대로 어떤 길을 계획한다 할지라도 요셉처럼 계획하고 작정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꼭 원하시는 당신의 뜻이 우리랑 맞지 않을 경우에는, 우리에게 간섭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간섭하셔서 꿈을 통해 우리에게 메시지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꿈이 중요한 것도 아니고 환상이 중요한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요셉으로 하여금 마리아를 맞이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꿈이나 환상이나 음성이나 입신이나 유체이탈이나 이런 모든 계시들은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것을 통해서 나에게 하시고자 하는 메시지가 중요합니다.
저는 꿈에 나온 메시지를 통해 제 생각을 바꿔서 드디어 히브리어가 아닌 헬라어를 공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뜻이 있으신데 우리가 그 뜻대로 가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런 계시로 간섭하십니다. 그러므로 계시는 대부분 개인적인 것입니다. 구약 시대는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향한 하나님의 계시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신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개인적인 사항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공론화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제가 지금 드린 꿈 얘기는 개인적인 것입니다. 이 꿈은 여러분이 적용해서 믿으면 안 됩니다. 이것은 제가 개인적으로 믿는 것입니다. 제가 히브리어를 공부해서 구약을 번역해야 하겠다는 제 의지의 전환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개인적인 진로와 방향을 말씀한 것이지 여러분이 적용하시면 안 됩니다.
저는 남들의 계시를 인정하지 않으며 말하지 말라고 합니다. 제가 꿈 얘기를 하면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오늘 이 말씀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드린 말씀입니다. 이 요셉이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 그리고 이제 뜻대로 사는 사람인데 그 뜻이 안 맞을 때 하나님께서 계시를 통해 방향을 수정해 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 합니다. 내가 이해 할 수 없는 영역 '지금 그녀 안에 있는 분은 거룩한 영에게서 나셨기 때문이다.'라는 말씀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계시는 하나님께서 이해할 수 없는 영역에서 나를 치고 들어오셔서 우리의 계획을 바꿔주시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꿈이나 계시나 환상을 통하여 가던 길을 멈추고 하나님께서 뜻하시고 원하시는 길로 가야합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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