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마태복음 1장 (거듭남, 성령세례, 마귀시험) 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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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아들을 출산할 것이고 그 분의 이름을 예수라고 부를 것인데, 그 분이 그 분의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꿈으로 그에게 나타났습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11절입니다. 여전히 요셉의 꿈 이야기이며 천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는 내용입니다. '아들을 출산할 것이고' 성령으로 잉태된 것입니다. '그 분의 이름을 예수라고 부를 것인데' 우리가 부르는 예수님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이미 지정하신 것입니다. '그분이 그분의 백성을'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왕이시자 천국 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메시아, 통치자로 오셨습니다.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며, 꿈으로 그에게 나타났습니다.'
오늘 중요한 말씀입니다. 지금 요셉이 꿈에서 들은 이 말씀은 바로 앞으로 진행 될 4복음의 주제와도 같은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주제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시며 왜 오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굉장히 아이러니 하게 생각합니다. 과연 예수님께서 오셔야 하는 것인가? 이렇게 예수님을 설명합니다. '구약 때는 율법을 주셨어! 그런데 율법을 지키지 못했어!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것 때문에 지옥에 보내셨어! 그런데 신약에서는 죄에 대한 대가를 치루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 주시고 죄에 대해 십자가로 대가를 지불하셨어!' 이제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거야. 이제 믿기만 하면 돼. 행함은 필요없어!'
이것이 무슨 교리 입니까? 이것이 칼빈의 교리입니다. 바로 '영지주의' 입니다. 여러분 칼빈의 교리가 영지주의가 조금 발달된 형태임을 아셔야 합니다. 또한 구원파의 교리가 칼빈 교리의 진행 형태임을 아셔야 합니다. 왜 이러한 잘못된 교리가 나오느냐 하면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가만히 있어도 구원받고 싶어. 나도 천국에 가고 싶어' 이런 여러분의 그 게으름과 악함 때문에 많은 교리들이 나오고 교회 내에 교리는 아니더라도 관행되는 사고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 때는 '믿음으로 구원 받는 거야.'라고 생각하지만 문제는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출애굽기는 사실 ‘Exodus' 탈출기 입니다. 죄로부터의 탈출입니다. 이집트는 죄를 짓게 만드는 세상을 의미하며 죄를 짓는 곳으로부터의 탈출, 그것이 원래 원어입니다. 홍해는 무엇입니까? 홍해는 죄에서 탈출하는 거듭남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해서 죄를 범합니다. 죄를 범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진노 가운데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물론 다 지옥 갔다고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서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부분 지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40년이 지난 다음에 여호수아가 바톤을 이어 받습니다. 이 '여호수아'곧 예슈아 입니다. 지금 제가 왜 이 설명을 드리냐 하면 '예수'라는 어원이 바로 '여호수아'에게서 왔다는 것을 이셔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합니다. 가나안 땅은 천국을 상징 합니다. 출애굽을 해서 광야에서 죽은 것은 다 구약을 의미 합니다. 구약 때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 광야에서 많이 지옥에 갔습니다.
홍해를 건너자마자 모세를 통해 십계명이 전달됩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시죠.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 불순종을 합니다. 죄는 불순종을 말합니다. 죄는 하나님이란 절대주권자 앞에 모든 불순종이 죄이지 여러분이 알고 있는 죄는 대부분 도덕 죄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죄를 정확히 인식시키기 위해서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율법은 죄를 정확하게 인식시켜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담 이후로 양심으로 죄를 깨닫지만 양심이 부패되어서 죄가 정확히 인식이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고 율법을 지켜야 하는데 못 지키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옥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보내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갑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의 구원을 상징합니다. 또한 이것은 신약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신약 때에는 구원이 쉽습니다. 왜냐하면 신약 때에는 예수님께서 자기를 믿는 자마다 보혜사 성령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그 분의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부르는 이유는 그냥 부르라고 주신 이름이 아니라 그 이름 속에 '우리의 죄들에서 구원시켜 주신다.'라는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약 때에 예수 믿으면 죄를 지어도 구원받는다는 것은 잘못된 사상입니다. 신약 때에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가 우리의 죄들에서 구원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예수'라고 부른다는 사실입니다.
구약시대 모세 때에 광야를 건넜지요. 그리고 여호수아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진격한 것처럼 놀랍게도 신약 때에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의 내주하심을 통해서 우리가 죄들에서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구원은 죄의 대가에서의 구원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만약 이것이 죄의 대가에서의 구원이라면 성령님은 진리이기 때문에 이렇게 쓰셨을 것입니다. ' 그 분은 그분의 백성을 그들의 죄에 대한 대가로부터 구원할 것'이라고 쓰셨을 것인데 그렇게 쓰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서두에 말한 영지주의, 칼빈주의 교리들은 다 잘못된 바탕에서 나왔다는 것이며 이 말씀을 접하고 있는 여러분도 놀랄 것입니다. 이것을 믿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지옥갑니다! 저는 여러분이 잘못된 교리를 학습했고, 여러분이 다니는 교회에서 잘못된 설교를 들었다는 것을, 여러분 스스로 지금은 인식을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제 알 수 있습니까? 죽을 때에, 비로소 알게 됩니다.
여러분 목사님들이 지옥 가는 사실을 아십니까? 저는 목사님들 가운데 대부분이 지옥에 들어가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고 신뢰하는 많은 이런 좋은 책들의 저자들이 대부분 지옥에 들어갑니다. 여러분이 믿고 신뢰했던 신학 박사들이 대부분 지옥에 들어갑니다. 왜냐하면 그 성경 말씀을 잘못 해석하게 만드는 마귀의 영향 때문입니다. 아마 여러분은 저에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당신만 옳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이 죽는 순간에 증명이 될 것입니다.
제가 이 강해를 하는 이유는 여러분이 지옥 가기 전에 미리 제 말을 한 번 들어 보시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어차피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지금 그대로라면 지옥에 갑니다. 이유는 여러분이 믿는 그 믿음이 잘못된 믿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구약 때에도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신약 때에도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신약 때에는 행함이 쉽습니다. 예수님이 그 분의 백성, 바로 우리들의 메시야가 되어 주셔서 성령님을 통하여서 우리들의 적들에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 '죄가 복수로 쓰여 졌습니다. 성경에서 죄가 단수로 쓰일 때가 있고 복수로 쓰일 때가 있습니다. 복수로 쓰인 것은 땅에 살면서 짓는 죄를 말합니다. 이 죄들은 자범죄들을 말합니다. 원래 원죄는 없습니다. 원죄는 사람들이 학설로 만든 것입니다.
죄는 우리가 짓는 죄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지은 죄들에 대해서 지옥에서 영원히 형벌받게 하시지 우리 부모의 죄가 유전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잘못된 이론들입니다. 우리가 각각 자기가 지은 죄들에 대한 대가를 영원히 받습니다. 이 땅에서의 짓는 죄들에서 구원받지 못하면 지옥 간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아주 이상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어떻게 죄를 안 지을 수 있느냐?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죄를 안 지을 수 없지요. 죄를 짓습니다. 그러면 이제 이런 이원론이 생깁니다. 죄를 안 지을 수 없기 때문에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 받는데 어떻게 죄들에서 구원을 받느냐고 하는가?
회개의 개념을 설명할 때에 죄를 짓는 우리 죄인에 대해서 죄를 짓지 않는 회개를 통해서 우리가 의인이 되는 것이라고 10절에서 설명을 드렸습니다. 죄에서의 구원 2가지를 설명합니다. 중요합니다! 드디어 우리가 죄에서 해방 되는데, 첫 번째로는 성령의 내주하심을 통하여서 능력을 통하여서 우리가 상당수의 많은 죄들을 짓지 않게 됩니다. 상당수의 많은 죄들에서 해방되게 됩니다. 우리의 죄들입니다. 어떤 죄들입니까? 십계명을 어기는 죄들입니다. 구약 때에 십계명을 주셨고 지키라고 했는데 많이 못 지켰습니다. 그리고 지옥에 들어갔습니다.
신약 때에는 예수를 믿으면 성령님이 오셔서 그 도움으로 우리가 살인 죄, 자살 죄, 간음 죄 그리고 미움 죄, 탐심 죄, 속이는 죄, 사기 죄, 도둑질 하는 죄, 이런 죄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힌두교에 있는 도 닦는 많은 사람들, 고행하는 사람들 또는 불교에서도 도를 닦아서 참신을 하는 일들을 합니다. 그래도 죄를 이기기가 어렵습니다. 죄를 못 이긴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님의 내주를 통해서 죄를 이기는 능력 외에는 우리가 십계명을 지키기 어려운 것입니다. 성령의 내주하심이 없이는 절대로 죄를 못 이깁니다.
어떻게 탐심 죄를 이깁니까? 큰 교회 목사님들 중에 횡령 하신 분들 계시죠. 지옥입니다. 왜냐하면 탐심 죄를 못 이긴다는 얘기는 본질적인 성령님의 내주하심이 없거나 그 안의 귀신에게 영적으로 패배했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신 이유는 우리의 연약함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우리는 죄를 짓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성령님의 내주하심으로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연약함은 죄를 짓는 연약함입니다. 정말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는 성령님의 내주하심을 통하여 연약하지만 죄를 이깁니다. 이것이 첫 번째 입니다.
두 번째는 죄들에서의 구원은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우리 영혼의 옷은 죄로 말미암아 더러워집니다. 이것을 언제 느낄 수 있느냐 하면 성령님의 조명 가운데 성막 안을 보면, 일곱 금 촛대가 있습니다. 금 촛대는 교회를 상징하며 또한 구원 받는 성도, 이 땅에서 구원 받는 성도들의 상징입니다. 일곱 금 촛대에 불이 타오르죠. 그 때 기름을 붓습니다. 그 일곱 금 촛대의 램프의 불 하단에 램프스탠드가 있고 그 위에 일곱 금 촛대가 있고 맨 위에 불꽃이 있는데 이 불꽃이 조명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있으면 성령님의 조명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 조명은 무엇을 비춥니까? 예수님을 비춥니다. 동시에 그 조명은 우리 죄를 조명합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죄가 조명되지 않습니다. 전에 말씀 드렸듯이 조명이 되면 항상 죄인임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우리 죄가 항상 인식이 됩니다. 그리고 죄에 대하여 성결의 회개가 이루어집니다. 죄를 사함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렸습니다. 그 보혈을 흘리신 목적은 바로 그 보혈로 말미암아 내 죄가 씻겨지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기 위한 것이고 그 보혈로 나는 죄로부터 성결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내 영의 세마포 옷이 깨끗하고 거룩하게 되어야만 우리는 그 거룩한 옷으로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더러운 옷으로는 천국에 들어 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죄들에서의 구원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죄들에서의 구원을 한 마디로 말하면 내가 십계명을 준수하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계명을 어기는 죄에 대해서 주의 보혈로 사함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죄를 씻은 영의 옷을 입는 사람에 한해서 하나님께서는 속죄를 적용해 주시고 천국으로 인도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에게 옷이 입혀집니다. 이 옷은 깨끗해야 합니다. 이 옷은 거룩해야 합니다. 이 옷이 거룩할 때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입었던 옷이 변형 되면서 천국에 올라갑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면, 이 옷과 비례하는 또 다른 옷을 입게 됩니다. 그리고 그 옷을 가지고 천국의 삶을 살다가 주님의 재림 시 신령한 몸을 입고 영원히 살게 됩니다.
여러분들 중에도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룩한 옷을 입고 계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 분은 천국에 들어갈 것이며 그 옷을 입지 못하였다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 두루마리 옷을 빨아야 합니다. 만약 그 옷이 빨려지지 않으면 우리 양심이 더러워지고 옷이 더러워져서 그 결과로써 발가벗겨집니다. 그러면 우리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저의 설교가 다 이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면 그 공로로 그냥 우리가 죄를 지어도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여호수아처럼 가나안에 진격시켜 주시는데 성령님을 통해서 계명을 지킬 수 있게 해주시고 죄를 지을 때 그 죄를 용서받고 사함 받아서 거룩한 옷을 유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옷이 벗겨지지 말아야 합니다. 옷이 벗겨지면 지옥에 들어갑니다.
목사님들이 처음에는 작은 교회를 성장시키고 부흥시킵니다. 그리고 큰 교회 목사가 됩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죄로 많이 오염이 됩니다. 결국에는 옷이 더러워져서 벌거벗겨집니다. 나중에는 영의 눈까지 뽑혀집니다. 그리고 지옥에 갑니다. 이 땅에 살면서 그 목사님은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지금은 지옥에서 고통가운데 있고, 지옥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그게 누구냐고요? 여러분들이 많이 믿고 신뢰했던 목사님들의 이야기 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믿고 존경했던 목사님과 성인들이 지옥에 있습니다. 이유는 그 옷이 벗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제 설교를 가볍게 듣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는 이유는 바로 죄들에서 구원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왜 예수라고 부르느냐? '너희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느냐? 왜 예수라고 불러야 하느냐? 그 예수님이 우리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치겠습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11절입니다. 여전히 요셉의 꿈 이야기이며 천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는 내용입니다. '아들을 출산할 것이고' 성령으로 잉태된 것입니다. '그 분의 이름을 예수라고 부를 것인데' 우리가 부르는 예수님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이미 지정하신 것입니다. '그분이 그분의 백성을'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왕이시자 천국 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메시아, 통치자로 오셨습니다.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며, 꿈으로 그에게 나타났습니다.'
오늘 중요한 말씀입니다. 지금 요셉이 꿈에서 들은 이 말씀은 바로 앞으로 진행 될 4복음의 주제와도 같은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주제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시며 왜 오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굉장히 아이러니 하게 생각합니다. 과연 예수님께서 오셔야 하는 것인가? 이렇게 예수님을 설명합니다. '구약 때는 율법을 주셨어! 그런데 율법을 지키지 못했어!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것 때문에 지옥에 보내셨어! 그런데 신약에서는 죄에 대한 대가를 치루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 주시고 죄에 대해 십자가로 대가를 지불하셨어!' 이제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거야. 이제 믿기만 하면 돼. 행함은 필요없어!'
이것이 무슨 교리 입니까? 이것이 칼빈의 교리입니다. 바로 '영지주의' 입니다. 여러분 칼빈의 교리가 영지주의가 조금 발달된 형태임을 아셔야 합니다. 또한 구원파의 교리가 칼빈 교리의 진행 형태임을 아셔야 합니다. 왜 이러한 잘못된 교리가 나오느냐 하면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가만히 있어도 구원받고 싶어. 나도 천국에 가고 싶어' 이런 여러분의 그 게으름과 악함 때문에 많은 교리들이 나오고 교회 내에 교리는 아니더라도 관행되는 사고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 때는 '믿음으로 구원 받는 거야.'라고 생각하지만 문제는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출애굽기는 사실 ‘Exodus' 탈출기 입니다. 죄로부터의 탈출입니다. 이집트는 죄를 짓게 만드는 세상을 의미하며 죄를 짓는 곳으로부터의 탈출, 그것이 원래 원어입니다. 홍해는 무엇입니까? 홍해는 죄에서 탈출하는 거듭남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해서 죄를 범합니다. 죄를 범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진노 가운데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물론 다 지옥 갔다고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서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부분 지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40년이 지난 다음에 여호수아가 바톤을 이어 받습니다. 이 '여호수아'곧 예슈아 입니다. 지금 제가 왜 이 설명을 드리냐 하면 '예수'라는 어원이 바로 '여호수아'에게서 왔다는 것을 이셔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합니다. 가나안 땅은 천국을 상징 합니다. 출애굽을 해서 광야에서 죽은 것은 다 구약을 의미 합니다. 구약 때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 광야에서 많이 지옥에 갔습니다.
홍해를 건너자마자 모세를 통해 십계명이 전달됩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시죠.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 불순종을 합니다. 죄는 불순종을 말합니다. 죄는 하나님이란 절대주권자 앞에 모든 불순종이 죄이지 여러분이 알고 있는 죄는 대부분 도덕 죄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죄를 정확히 인식시키기 위해서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율법은 죄를 정확하게 인식시켜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담 이후로 양심으로 죄를 깨닫지만 양심이 부패되어서 죄가 정확히 인식이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고 율법을 지켜야 하는데 못 지키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옥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보내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갑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의 구원을 상징합니다. 또한 이것은 신약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신약 때에는 구원이 쉽습니다. 왜냐하면 신약 때에는 예수님께서 자기를 믿는 자마다 보혜사 성령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그 분의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부르는 이유는 그냥 부르라고 주신 이름이 아니라 그 이름 속에 '우리의 죄들에서 구원시켜 주신다.'라는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약 때에 예수 믿으면 죄를 지어도 구원받는다는 것은 잘못된 사상입니다. 신약 때에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가 우리의 죄들에서 구원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예수'라고 부른다는 사실입니다.
구약시대 모세 때에 광야를 건넜지요. 그리고 여호수아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진격한 것처럼 놀랍게도 신약 때에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의 내주하심을 통해서 우리가 죄들에서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구원은 죄의 대가에서의 구원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만약 이것이 죄의 대가에서의 구원이라면 성령님은 진리이기 때문에 이렇게 쓰셨을 것입니다. ' 그 분은 그분의 백성을 그들의 죄에 대한 대가로부터 구원할 것'이라고 쓰셨을 것인데 그렇게 쓰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서두에 말한 영지주의, 칼빈주의 교리들은 다 잘못된 바탕에서 나왔다는 것이며 이 말씀을 접하고 있는 여러분도 놀랄 것입니다. 이것을 믿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지옥갑니다! 저는 여러분이 잘못된 교리를 학습했고, 여러분이 다니는 교회에서 잘못된 설교를 들었다는 것을, 여러분 스스로 지금은 인식을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제 알 수 있습니까? 죽을 때에, 비로소 알게 됩니다.
여러분 목사님들이 지옥 가는 사실을 아십니까? 저는 목사님들 가운데 대부분이 지옥에 들어가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고 신뢰하는 많은 이런 좋은 책들의 저자들이 대부분 지옥에 들어갑니다. 여러분이 믿고 신뢰했던 신학 박사들이 대부분 지옥에 들어갑니다. 왜냐하면 그 성경 말씀을 잘못 해석하게 만드는 마귀의 영향 때문입니다. 아마 여러분은 저에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당신만 옳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이 죽는 순간에 증명이 될 것입니다.
제가 이 강해를 하는 이유는 여러분이 지옥 가기 전에 미리 제 말을 한 번 들어 보시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어차피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지금 그대로라면 지옥에 갑니다. 이유는 여러분이 믿는 그 믿음이 잘못된 믿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구약 때에도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신약 때에도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신약 때에는 행함이 쉽습니다. 예수님이 그 분의 백성, 바로 우리들의 메시야가 되어 주셔서 성령님을 통하여서 우리들의 적들에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 '죄가 복수로 쓰여 졌습니다. 성경에서 죄가 단수로 쓰일 때가 있고 복수로 쓰일 때가 있습니다. 복수로 쓰인 것은 땅에 살면서 짓는 죄를 말합니다. 이 죄들은 자범죄들을 말합니다. 원래 원죄는 없습니다. 원죄는 사람들이 학설로 만든 것입니다.
죄는 우리가 짓는 죄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지은 죄들에 대해서 지옥에서 영원히 형벌받게 하시지 우리 부모의 죄가 유전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잘못된 이론들입니다. 우리가 각각 자기가 지은 죄들에 대한 대가를 영원히 받습니다. 이 땅에서의 짓는 죄들에서 구원받지 못하면 지옥 간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아주 이상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어떻게 죄를 안 지을 수 있느냐?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죄를 안 지을 수 없지요. 죄를 짓습니다. 그러면 이제 이런 이원론이 생깁니다. 죄를 안 지을 수 없기 때문에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 받는데 어떻게 죄들에서 구원을 받느냐고 하는가?
회개의 개념을 설명할 때에 죄를 짓는 우리 죄인에 대해서 죄를 짓지 않는 회개를 통해서 우리가 의인이 되는 것이라고 10절에서 설명을 드렸습니다. 죄에서의 구원 2가지를 설명합니다. 중요합니다! 드디어 우리가 죄에서 해방 되는데, 첫 번째로는 성령의 내주하심을 통하여서 능력을 통하여서 우리가 상당수의 많은 죄들을 짓지 않게 됩니다. 상당수의 많은 죄들에서 해방되게 됩니다. 우리의 죄들입니다. 어떤 죄들입니까? 십계명을 어기는 죄들입니다. 구약 때에 십계명을 주셨고 지키라고 했는데 많이 못 지켰습니다. 그리고 지옥에 들어갔습니다.
신약 때에는 예수를 믿으면 성령님이 오셔서 그 도움으로 우리가 살인 죄, 자살 죄, 간음 죄 그리고 미움 죄, 탐심 죄, 속이는 죄, 사기 죄, 도둑질 하는 죄, 이런 죄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힌두교에 있는 도 닦는 많은 사람들, 고행하는 사람들 또는 불교에서도 도를 닦아서 참신을 하는 일들을 합니다. 그래도 죄를 이기기가 어렵습니다. 죄를 못 이긴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님의 내주를 통해서 죄를 이기는 능력 외에는 우리가 십계명을 지키기 어려운 것입니다. 성령의 내주하심이 없이는 절대로 죄를 못 이깁니다.
어떻게 탐심 죄를 이깁니까? 큰 교회 목사님들 중에 횡령 하신 분들 계시죠. 지옥입니다. 왜냐하면 탐심 죄를 못 이긴다는 얘기는 본질적인 성령님의 내주하심이 없거나 그 안의 귀신에게 영적으로 패배했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신 이유는 우리의 연약함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우리는 죄를 짓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성령님의 내주하심으로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연약함은 죄를 짓는 연약함입니다. 정말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는 성령님의 내주하심을 통하여 연약하지만 죄를 이깁니다. 이것이 첫 번째 입니다.
두 번째는 죄들에서의 구원은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우리 영혼의 옷은 죄로 말미암아 더러워집니다. 이것을 언제 느낄 수 있느냐 하면 성령님의 조명 가운데 성막 안을 보면, 일곱 금 촛대가 있습니다. 금 촛대는 교회를 상징하며 또한 구원 받는 성도, 이 땅에서 구원 받는 성도들의 상징입니다. 일곱 금 촛대에 불이 타오르죠. 그 때 기름을 붓습니다. 그 일곱 금 촛대의 램프의 불 하단에 램프스탠드가 있고 그 위에 일곱 금 촛대가 있고 맨 위에 불꽃이 있는데 이 불꽃이 조명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있으면 성령님의 조명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 조명은 무엇을 비춥니까? 예수님을 비춥니다. 동시에 그 조명은 우리 죄를 조명합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죄가 조명되지 않습니다. 전에 말씀 드렸듯이 조명이 되면 항상 죄인임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우리 죄가 항상 인식이 됩니다. 그리고 죄에 대하여 성결의 회개가 이루어집니다. 죄를 사함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렸습니다. 그 보혈을 흘리신 목적은 바로 그 보혈로 말미암아 내 죄가 씻겨지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기 위한 것이고 그 보혈로 나는 죄로부터 성결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내 영의 세마포 옷이 깨끗하고 거룩하게 되어야만 우리는 그 거룩한 옷으로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더러운 옷으로는 천국에 들어 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죄들에서의 구원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죄들에서의 구원을 한 마디로 말하면 내가 십계명을 준수하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계명을 어기는 죄에 대해서 주의 보혈로 사함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죄를 씻은 영의 옷을 입는 사람에 한해서 하나님께서는 속죄를 적용해 주시고 천국으로 인도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에게 옷이 입혀집니다. 이 옷은 깨끗해야 합니다. 이 옷은 거룩해야 합니다. 이 옷이 거룩할 때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입었던 옷이 변형 되면서 천국에 올라갑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면, 이 옷과 비례하는 또 다른 옷을 입게 됩니다. 그리고 그 옷을 가지고 천국의 삶을 살다가 주님의 재림 시 신령한 몸을 입고 영원히 살게 됩니다.
여러분들 중에도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룩한 옷을 입고 계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 분은 천국에 들어갈 것이며 그 옷을 입지 못하였다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 두루마리 옷을 빨아야 합니다. 만약 그 옷이 빨려지지 않으면 우리 양심이 더러워지고 옷이 더러워져서 그 결과로써 발가벗겨집니다. 그러면 우리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저의 설교가 다 이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면 그 공로로 그냥 우리가 죄를 지어도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여호수아처럼 가나안에 진격시켜 주시는데 성령님을 통해서 계명을 지킬 수 있게 해주시고 죄를 지을 때 그 죄를 용서받고 사함 받아서 거룩한 옷을 유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옷이 벗겨지지 말아야 합니다. 옷이 벗겨지면 지옥에 들어갑니다.
목사님들이 처음에는 작은 교회를 성장시키고 부흥시킵니다. 그리고 큰 교회 목사가 됩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죄로 많이 오염이 됩니다. 결국에는 옷이 더러워져서 벌거벗겨집니다. 나중에는 영의 눈까지 뽑혀집니다. 그리고 지옥에 갑니다. 이 땅에 살면서 그 목사님은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지금은 지옥에서 고통가운데 있고, 지옥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그게 누구냐고요? 여러분들이 많이 믿고 신뢰했던 목사님들의 이야기 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믿고 존경했던 목사님과 성인들이 지옥에 있습니다. 이유는 그 옷이 벗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제 설교를 가볍게 듣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는 이유는 바로 죄들에서 구원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왜 예수라고 부르느냐? '너희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느냐? 왜 예수라고 불러야 하느냐? 그 예수님이 우리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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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장(거듭남, 성령세례, 마귀시험) 51절
51. 그리고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에 해변, 가버나움으로 가서 사셨는데,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 요단 건너 바다 길, 이방의 갈릴리, 어두움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으며, 죽음의 나라와 그늘에 앉은, 그들에게 빛이 비취었다”라고 말하며 선포된 것이 성취되기 위함입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51절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으신 다음에 유대 광야에 가셔서 마귀의 세 가지 시험을 이기시고, 유대 예루살렘에 가지 않으시고, 갈릴리로 가셨는데, 나사렛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떠나신 것입니다. 떠나서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의 해변’ 갈릴리 호수 좌편이 납달리고, 납달리 바로 아래 지역이 스불론입니다. ‘가버나움으로 가서 사셨는데’ 가버나움은 갈릴리 호수 인접 지역, 바로 옆에 있는 동네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이사야가 예수님을 가장 많이 묘사했다고 말씀 드렸었죠.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 요단 건너 바다 길, 이방의 갈릴리’ 이방의 갈릴리, 지금 여기서 갈릴리를 이방이라 부릅니다. 누가? ‘이사야’가, 굉장히 심각한 것입니다. 지금 ‘갈릴리’를 ‘이방이다’라고 부르는 것은 굉장히 심각함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범죄할 때, 그들을 쫓아내시고, 여전히 구전된 말씀을 통해서, 말씀이 증거 되는데, 아벨은 대표적인 사람이죠. 제사를 드린 사람이고, 아벨이 가인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다시, 셋을 통해서 하나님 백성이 이어지는데, 그 때는 1,000살을 한계로 해서 900세 이상을 다 산 사람들이죠. 근데 하나님의 백성의 수가 자꾸 줄어 드는 것이예요. 사람 숫자는 늘어나는데, 하나님의 백성은 줄어드는 거예요. 심지어 노아 때에 와서는 아무도 없어요. 하나님께서 이제 방법을 쓰셨는데, 노아 가족만 남겨두고 자기 백성이 아닌 사람들을 다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 홍수가 일어 납니다. 노아 가족만 살아남고 전 지구의 모든 것이 다 죽었습니다. 만
마태복음 1장( 거듭남, 성령세례, 마귀시험) 6절
6. 그런즉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의 세대가 모두 14세대이며, 다윗부터 바벨론 이주까지 14세대이며, 바벨론 이주부터 그리스도까지 14세대입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6절입니다. 이 14세대가 세 번 반복되는데 이것은 다윗의 숫자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로 오셨는데 이 그리스도를 묘사한 가장 완벽한 사람이 다윗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히브리어로 '메시아'인데, 메시아 통치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다윗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약은 계속 메시아를 기다리죠. '나중에 여자의 후손이 올거야! 나중에 그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는 그 누군가가 올거야! 나중에 어떤 아들이 태어나서 우리를 다스리는데, 우리는 꿈같은 삶을 살거야' 하고 구약 내내 기다립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다윗에 대한 그리움과 갈망이 항상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출생 하셨을 때 다윗의 후손이라고 부르죠. 이 다윗의 후손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이것은 왕의 출생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기다립니다. '메시아가 오면 우리를 잘 통치해 잘 먹고 잘 살거야! 우리는 행복할 거야!'라는 기다림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이해 못합니다. 왜냐하면 기존 관념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이 오면, 정치적으로 왕이 되어서 로마에서 해방시켜 주고 우리는 한 자리 할거야!' 그래서 다툼도 일어납니다. 자기들끼리 '자. 너는 오른편에 앉아 왼편에 앉아!'라고 자리다툼이 일어납니다. 메시아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 때문이었습니다. 자, 이제 중요합니다. '그리스도가 누구냐? 메시아가 누구냐?'에 대한 그 이해와 사고가 중요한데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다음에 모든 수난과 고난을 겪으시고 십자가에서 값을 치루시고 부활 하시죠. 그리고 40일 동안 신령한 몸을 입고 부활체로써 이 땅에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10일 뒤에 승천하시고 10일 뒤에 오순절
마태복음 1장(거듭남, 성령세례, 마귀시험) 1절
1.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의 책입니다. 이 4복음서 가운데 마태복음을 먼저 시작하게 된 이유는 마태가 주로 쓰고 싶어 하는 내용이 천국과 지옥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4복음서가 다 천국과 지옥이며 다 천국으로 인도하는 그런 내용들이지만 천국과 지옥을 알지 못하고서는 우리는 복음을 말할 수가 없습니다. 원래 복음이란 것 자체가 왕국으로, 천국으로 인도하는 천국의 복음, 왕국의 복음이며 천국과 지옥이 논해지지 않는 복음은 사상누각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이 4복음서 중에서 제일 앞에 온 것입니다. 신기하게도 마태복음이 제일 앞에 와야 되는 이유가 1절에 정확하게 나옵니다. 오늘은 1절만 같이 강해를 나누려 합니다. 1절의 첫 단어가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구약 창세기의 첫 번째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매우 중요합니다. 마태복음이 앞에 와야 되는 이유는 창세기의 주인공인 아브라함이 먼저 나왔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것은 마태복음이 구약에서 신약으로 이어지는 첫 번째 책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마태복음에서 첫 시작이 '아브라함'이라고 안 나오고 요한복음처럼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런 식으로 썼다면 우리는 구약과 신약에 연결점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마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란 말을 씀으로써 '내가 지금 기술하는 이 마태복음은 구약의 연결선 상에 있는 책입니다'라는 의도로 쓴 겁니다. 마태는 '구약은 끝난 것이 아니며, 신약의 첫 번째 책인 마태복음은 구약의 연장선상에 있는 책이다'라는 의미에서 아브라함을 등장시킨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이 한마디는 매우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이 무엇인가를 가장 자세하게 보여준 사람입니다. 우리는 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무엇이냐?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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